ADVERTISEMENT
오피니언 내생각은

노들섬에 오페라하우스를 짓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9면

호주여행 중 큰 녀석이 덜컥 예약하는 바람에 시드니 오페라하우스의 'Starry Night'(별이 빛나는 밤)이라는 프로그램을 경험한 적이 있다. 가이드가 한 시간 동안 오페라하우스의 구석구석을 보여주면서 이 건축물의 어제와 오늘을 설명했다. 조개 껍데기 모양의 이 건축물은 1956년 덴마크 건축가가 설계한 것인데, 오렌지를 자르다가 착안했다고 한다. 오페라하우스 자리는 영국 죄수들이 최초로 상륙한 곳이다. 이날 오페라하우스에서 고급스러운 식사를 한 후 '남 몰래 흐르는 눈물'이란 아리아로 유명한 도니제티의 오페라 '사랑의 묘약'을 기분 좋게 감상했다. 어둑어둑해진 휴식시간, 창 아래로 보이는 아름다운 시드니항의 야경은 오페라 못지않은 감동을 주었다.

오페라하우스 투어, 식사, 공연관람을 패키지로 묶은 'Starry Night' 문화상품은 1인당 300호주달러(약 21만원)였다. 국내에서도 외국 유명 오페라단 관람료가 20만~30만원인 점을 감안하면 결코 비싼 금액은 아니었다. 그런데 이 상품을 잘 살펴보면 온통 저작물로 이뤄져 있다. 많은 사람을 유인한 오페라하우스는 건축 저작물이고, 오페라는 음악.미술.연기 등 저작물의 총화였다.

이명박 시장 재임 중 서울시는 한강대교 중간에 있는 노들섬에 오페라하우스를 건립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런데 수천억원의 예산이 든다는 이유로 여러 시민단체로부터 "지금이 오페라하우스를 건립할 때냐"는 뭇매를 맞았다.

한국전쟁 때 폭격을 맞은 난간에 많은 피란민이 매달렸던 사진으로 유명한 인도교가 한강대교의 전신이다. 그곳에 우리나라를 상징할 만한 조형물로서 오페라하우스가 건축됐다고 상상해 보자. 세계적인 성악가 조수미가 나오고 정명훈이 지휘하는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오페라를 감상한 후 계단을 따라 선착장에 내려오면 아름다운 유람선이 기다리고 있다. 건너편 북쪽으론 남산 타워(N타워)가 보인다. 멀리 동쪽으론 무역센터 등 고층빌딩의 스카이라인이 현대적이고 세련된 도시의 모습을 한껏 자랑한다. 한강을 따라 서쪽을 향하면 붉게 물든 노을로 인해 63빌딩은 온통 황금빛으로 변해 눈이 부시다. 유람선에선 편안한 음악이 흘러나오고, 우리 한식이 정성스럽게 제공된다. 인도교에 얽힌 세계사적 비극에서 반세기 만에 일궈낸 '한강의 기적'이 만들어낸 문화상품의 이름을 '한강의 밤'이라고 부르면 어떨까.

우리에게는 미국 그랜드캐년과 같은 거대한 자연은 없다. 그러나 조수미와 정명훈, 판소리, 세계인의 입맛을 돋우는 김치와 비빔밥이 있다. 자연환경이 열악한 나라에서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데는 거대한 조형물이나 건축물만한 것이 없다. 그 건축물 안에 담아 넣을 음악.미술.음식 등 문화가 풍성한 나라라면 더 말할 것이 없다.

오페라하우스라고 하는 건축 저작물이 호주라는 나라의 이미지를 바꾸고, 자자손손 삶의 터전이 된 것은 창작물과 창작행위를 소중히 여기는 의식 때문에 가능했다고 본다.

남형두 연세대 법대 교수·저작권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