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중고에 고통받는 제조기업...신흥국 추월에 미래 안 보이고 신기술은 어려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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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상의 제조 기업 설문 조사를 통해 뽑은 한국경제를 위협하는 3가지 키워드. [사진 대한상의]

대한상의 제조 기업 설문 조사를 통해 뽑은 한국경제를 위협하는 3가지 키워드. [사진 대한상의]

“몇 년 전만 해도 해외 바이어들이 '그래도 메이드 인 코리아'라며 우리 제품을 사줬는데 요즘엔 중국산과 별다를 게 없다며 외면하는 경우가 많아요.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막막합니다.”
경기 소재 건설 기자재 기업 A사 대표의 토로다. 그는 “최근 2~3년 사이 중국산 제품의 품질이 몰라보게 좋아져 수출길이 말라가는 상황”이라고 하소연했다.

기업 66.9% 미래 수익원 확보 못해 #4차 혁명 기술 활용 못해 답변 '48%' #"정부가 나서 새로운 시장 열어줘야"

국내 제조 기업이 신흥국의 위협, 미래수익원 부재, 낮은 신기술 활용도라는 삼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가 18일 발표한 ‘우리 기업의 미래준비실태’ 설문조사엔 이런 내용이 담겼다. 이번 조사는 국내 제조업체 500곳을 대상으로 했다.

박용만(왼쪽)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 17일 국회를 찾아 더불어민주당 이인영 원내대표에게 '경제활성화를 위한 조속입법 과제' 리포트를 전달하고 있다. [사진 대한상공회의소]

박용만(왼쪽)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 17일 국회를 찾아 더불어민주당 이인영 원내대표에게 '경제활성화를 위한 조속입법 과제' 리포트를 전달하고 있다. [사진 대한상공회의소]

기업 10곳 중 4곳은 중국 등 신흥국의 위협으로 신흥국과 선진국 사이에 낀 샌드위치 현상이 심화하고 있다고 답했다. 신흥국 기업과의 경쟁력 격차 관련 질문에 비슷한 수준(35.9%)이거나 오히려 뒤처진다(5.4%)고 답한 기업은 전체의 41.3%에 달했다. 이는 2010년 설문조사와 비교해 4배 늘어난 수치다. 당시 조사에선 신흥국 추격에 위협감을 느낀다고 답한 비율은 전체 응답 기업의 10.4%로 조사됐다. 신흥국보다 얼마나 앞선 것으로 보느냐는 질문에는 3년 이내(31.6%)라는 응답이 5년 이내(18.5%)와 5년 이상(8.6%)을 합한 응답(27.1%)보다 많았다. 그만큼 제조 기업의 위기감이 크다는 방증이다.

4차 산업혁명과 연관된 기술 활용도 역시 저조한 것으로 조사됐다. 경북 소재 자동차 부품 생산 기업 B사가 대표적이다. B사 대표는 “4차 산업혁명과 관련된 인공지능 기술 도입을 검토한 적은 있지만, 주위에서 적용해 효과를 봤다는 얘기는 못 들어봤다”며 “검증된 사례가 없는 상황에서 무턱대고 기술부터 도입하는 게 부담스러운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번 조사에서 4차 산업혁명 기술 활용도를 묻는 말에는 응답 기업의 48%가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고 답했다. 적극 활용 중이라는 응답은 전체의 6%에 불과했다.

박용만(오른쪽)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 17일 국회를 찾아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에게 '경제활성화를 위한 조속입법 과제' 리포트를 전달하고 있다. [사진 대한상공회의소]

박용만(오른쪽)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 17일 국회를 찾아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에게 '경제활성화를 위한 조속입법 과제' 리포트를 전달하고 있다. [사진 대한상공회의소]

 “주문은 줄고 경쟁은 치열해 지금 생산하는 거로는 길어야 3~4년 정도밖에는 못 갈 것으로 보고 있다.”
경남 소재 정밀 기기제조 기업 C사 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C사는 생산품목 전환도 고려하고 있지만 여의치 않다. C사 대표는 “새로운 먹거리를 찾으려 노력은 하지만 기술 변화가 워낙 빠르고 시장이 언제 열릴지 몰라 새로운 설비를 깔기도 부담스러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대한상의 설문조사에서 응답 기업 3곳 중 2곳(66.9%)은 미래 수익원이 될 수 있는 신사업을 확보하지 못했다고 답했다. 이렇게 답변한 기업 중 상당수(62%)는 대책도 마련하지 못한 상황이라고 답변했다. 미래 수익원 발굴 과정에서 기업들이 겪는 애로사항으로는 시장 형성 불투명(41.0%)을 가장 많이 꼽았다. 이어 자금 부족(21.7%), 기술력 부족(17.3%), 규제 장벽(16.3%) 순이었다.

대한상의는 국회와 정부가 나서야 미래 수익원이 되는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지난 17일 국회를 찾아 핀테크 육성법 등 입법과제 17개를 전달한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은 “올해 국회가 처리한 법안 126건 가운데 기업 지원 법안은 9건에 불과하다”며 “기업들은 누구에게 하소연해야 하나 정말 참담하기 짝이 없다”고 말했다.

강기헌 기자 emck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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