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연심사 뒷돈 덜미 비리수사 확대 할듯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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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곪았던 부위가 결국 터졌다." "올들어 내심 조심하며 깨끗하게 가자는 움직임이 이는 중에 사건이 터져 씁쓸하다." 최근 국립국악원장 선임과 관련한 심사위원 교체 파문으로 내홍을 겪었던 국악계가 원로 국악인 조상현(64)씨의 구속으로 다시 들썩이고 있다.

국악 경연대회 참가자들로부터 금품을 받은 혐의인데 수사가 국악계 전반으로 확대될 움직이어서 긴장감이 높다. 물론 본인은 아직 이 사실을 부인하고 있어 최종 결론은 유보해야 할 처지다.

이는 지난 7월 서예공모전 심사 비리에 이어진 것이어서 의혹의 눈길은 예술계 전반으로 쏠릴 조짐이다. 문화계 한 관계자는 "수시로 터지는 사건이라 이제는 둔감하다"고 전제, "요즘 일고 있는 민예총 권력 이동의 논란을 벌이는 것은 소모적이다. 예총이든 민예총이든 이 같은 구조적 비리를 척결하는 데 힘을 모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국악 경연대회 입상자 선정 비리 의혹으로 경찰의 수사 선상에 오른 심사위원은 5~6명으로 알려졌다. 조씨의 경우 1998년 11월 광주시가 주최한 국악대전에서 운영위원으로 활동하면서 대회가 끝난 뒤 대통령상 수상자에게서 2천만원을 받았다는 것.

국악계의 한 관계자는 "국악대회 수상자들이 심사위원들에게 입상을 대가로 '인사 치레'를 하는 건 관행"이라며 "이를 뇌물이나 검은 돈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고 털어놨다.

올해 초 일부 국악인이 정부에 부정심사 방지 등을 위한 '암행감사'를 실시해 줄 것을 요청한 사실은 각종 국악대회의 부정심사 뇌물청탁이 도를 넘어섰음을 방증하는 사건 같은 것이었다. 문화관광부가 각종 대회마다 암행감사를 벌이고 있음에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전문가들은 국악대회에서 입상하는 일을 단순히 예술의 기량을 인정받는 것이 아니라 국악인으로서 '상품가치'를 높이고 특정 계파의 세를 넓히는 수단으로 간주하기 일쑤다.

한 전통문화인은 "국악대회에서 대상만 타면 이름 나고 학원에 문하생이 몰리기 때문에 참가자들이 돈을 써서라도 상을 타려고 머리를 싸매고 덤벼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서예계도 예외는 아니다. 입상을 위해 심사위원에게 미리 금품을 상납하거나 아예 심사위원이나 스승에게 돈을 주고 글씨를 받아 출품하는 일이 '공공연한 비밀'로 알려져 있다.

'뇌물'이나 '검은 돈'에 대한 죄의식이 상대적으로 떨어지기는 국악계나 마찬가지다. 서예계 한 관계자는 "다른 분야에 비해 활동 영역이 협소한 국악계나 서예계의 경우 이 같은 '내부 순환'으로 스스로의 시장을 지켜간다"고 지적했다.

문제는 재정이 열악한 국악 경연대회나 서예공모전이 난립해 있다는 점이다. 현재 문화관광부의 시상 지원 대상 국악대회만 79개나 된다. 문화부의 한 관계자는 "컴퓨터 채점 및 심사위원의 채점표 공개 등 심사의 공정성을 위한 대책 마련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심사위원들 스스로 도덕성을 세우는 일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또 국악경연대회가 이른바 '명창(名唱)' 또는 '명인(名人)'이 되기 위한 유일한 등용문 구실을 하고 있는 현실도 개선해 나가야 한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정재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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