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긴스 중령 처형|미 보복 "할까말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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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부시대통령 분노했지만…>
친 이란 테러단체가 인질로 잡고 있던 히긴스 미 해병중령을 교수형에 처했다고 주장하는 충격적 사건이 발생한지 이틀이 지난 1일까지 미국은 아직 대응조치를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 부시 미 대통령은 이날도 백악관에 최고 군사·안보참모들을 소집, 대책을 숙의했으나 피츠워터 백악관대변인의 발표는 첫날 회의결과와 대동소이했다.
상황파악에 관한 회의였고 대통령이 분노를 표명했다는 내용들이 반복됐다. 『군사적 보복조치는 논의되지 않았다』고 피츠워터 대변인은 연막을 치기도 했다.
그렇지만 내용이 무엇이 되건 부시대통령으로서는 이번 사건에 대응조치를 취하지 않을 수 없는 입장에 몰려있다. 무반응일 경우 출범 6개월의 부시는 「허약한 대통령」이란 낙인이 불가피하다.
80년 테헤란의 미 대사관내 인질문제를 잘못 처리해 카터 당시 대통령이 불명예속에 단임으로 백악관을 물러난 일이 있었던 것처럼, 미 인질사건은 미 대통령들에게 난감한 외교정책위기로 작용해 왔다.
히긴스 해병중령의 처형이 사실로 공식 판명되는 경우 부시에게 가해질 보복조치압력은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대응조치는 외교적 처리보다는 군사적 조치의 가능성이 더 큰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의회를 비롯한 일반국민의 분노가 크긴 하지만 외교적 조치를 하려해도 상대가 없는 셈이다. 레바논정부는 무력하고 테러배후로 보이는 이란과는 외교관계가 없다.
나머지 대안인 군사적 보복의 경우 취할 수 있는 조치가 매우 제한적이고 그나마 많은 위험이 따른다.
미 정부가 군사적 보복을 검토하면서 가장 큰 부담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 미국인 8명을 비롯한 다른 인질들의 생명에 대한 위협이다. 또 다른 테러단체 「혁명정의조직」은 86년부터 납치해놓은 베이루트소재 아메리칸대 직원 시시피오씨를 처형하겠다고 위협하고 있다.
보복실천에는 구체적 난점이 허다하다. 테러분자의 신원과 소재파악이 우선 어렵다는 점이 지적되고 있다. 테러세포조직에 대한 침투가 어려워 사실상 미국은 이들에 대한 정보가 충분치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양민들 속에 섞여있는 이들을 응징하기 위해 어떤 형태로든 군사적 보복을 가할 경우 일반인의 피해가 불가피하며 아랍을 포함한 세계여론의 악화가 예상된다.
86년 부통령 재직시 테러대책작성팀을 지휘한바 있는 부시는 당시 작업결과를 보고하면서 『보복공격은 무고한 백성을 해치는 위험이 크다』고 지적하고 『보복은 반드시 「외과수술적」으로 수행될 수 있을 때에 한해 정당화된다』고 건의했다.
그러나 과연 외과수술같은 포격이 가능하겠느냐는 의문들이 제기되고 있다.
군사기술적 문제와 별도로 외교적 고려도 병행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호메이니 사망 후 라프산자니가 새 대통령으로 선출되면서 이란이 극렬노선을 수정할 지도 모르는 가능성을 미 정부는 관찰해왔다. 이란에 대해 보복조치를 가할 경우 그렇지 않아도 이미 나타나고 있는 이란의 대소접근을 부채질하지 않을까 하는 고려도 없지 않다.
이런 점등까지 감안할 때 보복조치를 취한다면 테러조직 헤즈볼라가 위치한 레바논을 공격할 것인지 배후혐의인 이란을 가격할 것인지도 문제다.
한마디로 사태의 민감성과 복잡성을 감안할 때 미 반응은 아직 초동단계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군사조치를 위한 준비는 만전의 상태라고 미 관계자들은 설명하고 있다.
최근 이집트항구에 들른 항공모함 코럴시호가 2일 지중해 초계에 다시 들어가고 2천4백명의 병력을 갖춘 3척의 해병수륙양용함정이 근해에 기동중인가 하면 크루즈미사일을 장비한 전함 아이오와호 등 공격대상지역 연안에 24척의 미 전함이 배치돼 있다는 것이다.
필요하면 특수공작수행을 위해 신설된 플로리다주의 특수작전사령부를 불러들일 수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군사조치를 취한다면 시리아 군이 점령하고 있는 레바논의 베카지역 중 헤즈볼라 테러조직의 기지를 공격할 가능성이 미 언론에 오르내리고 있다. 이란을 겨냥한다면 석유생산시설, 통신시설 등 경제적 목표를 검토할지도 모른다고 전해지고 있다.
테러에 대한 응징은 대통령으로서 결정에 항상 어려움을 겪는 난제였다. 68년 1월 북한에 의한 미 프에블로 납치사건이 발생했을 때 닉슨은 존슨 당시 대통령의 속수무책을 비난했지만 막상 닉슨도 집권 때인 69년 4월 북한에 의한 미EC121 정찰기 격추사건 때는 보복을 하지 않았다.
86년 서독 나이트클럽에 대한 테러로 미 병사들의 대량참사가 발생했을 때 레이건 대통령은 혐의대상인 리비아에 대해 공습을 강행함으로써 인기를 즐겼지만 카터 대통령은 테헤란 미 인질구출 실패로 인한 정치적 대가를 치러야 했다.【워싱턴=한남규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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