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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할머니 귀국돕고 정부 지원금 빼돌린 혐의 70대 1년6개월 구형

중앙일보

입력

서울 마포구 공덕동 서울서부지방법원. [뉴스1]

서울 마포구 공덕동 서울서부지방법원. [뉴스1]

충북 청주에서 태어난 이모 할머니는 1943년 열일곱 어린 나이에 중국에 갔다. ‘중국에 가면 돈을 벌 수 있다’는 말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 할머니는 중국 위안소에 끌려가 2년간 고초를 겪었다.

해방 이후에도 60년간 이 할머니는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중국에 머물렀다. 중국에서 삶을 이어가던 어느 날 이 할머니는 중국에서 사업을 하는 김모(74)씨를 만났다. 김씨는 중국에서 위안부 피해자인 정모 할머니를 만났던 것을 계기로 위안부 피해자들의 국내 송환을 돕는 일을 해왔다.

김씨의 도움으로 이 할머니는 2011년 한국 땅을 밟았다. 할머니는 한국 국적도 회복했으며 2012년에는 여성가족부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로 등록했다. 몸이 안 좋아진 할머니는 2016년부터 요양병원에서 지내다 지난해 12월 향년 92세로 별세했다.

여가부에 위안부 피해자 등록이 되면 일정한 지원금이 매월 지급된다. 김씨는 이 할머니의 통장을 직접 관리했다. 김씨의 이같은 행동을 제보받은 여가부는 2017년 12월 말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으며 서울서부지검은 지난해 11월 김씨를 횡령 혐의로 기소했다. 할머니가 세상을 떠나기 한 달 전이다.

12일 서울서부지법에서 형사3단독 명선아 판사 심리로 열린 결심 공판에서 검찰은 김씨에게 징역 1년6개월을 구형했다. 김씨는 2012년부터 지난해 4월까지 이 할머니의 보조금 2억8000여만원을 빼돌린 혐의를 받는다. 검찰 측은 “혐의를 부인하고 반성하지 않는 등 죄질이 불량하고 피해 금액이 큰 점을 고려했다”고 말했다.

변호인 측은 “공소사실의 금액 중 어느 정도는 개인적으로 사용한 게 맞지만 개인적인 용도로 사용하지 않은 금액도 있다”며 “할머니의 승낙에 의한 것이고 추정된 승낙이 있었다고 볼 수 있다는 것이 피고인의 말”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중국에서 한국으로 모시고 온 할머니만 6명이다. 이를 위해 했던 노력이나 그 과정에서 짊어져야 했던 경제적 부담 등을 고려하면 이 할머니가 정부 보조금을 쓰라고 허락해줬다는 것이 납득할만하다”며 “할머니 아들도 사용을 허락했다고 진술했다. 무죄를 선고해달라”고 주장했다.

김씨는 최후진술에서 “(할머니들 송환 사업에) 25년이라는 사회 나온 이후 절반의 인생을 바쳤다”면서 “재산도 (남지 않고), 몸도 못 쓰고 있지만 모두 감사하는 마음으로 감당했다”고 말했다.
선고 공판은 28일 오전 10시에 열린다.

박해리 기자 park.hae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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