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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만에 올라온 허블레아니···갑판엔 구명조끼만 둥둥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헝가리 유람선 허블레아니 호가 13일만에 처음 물 위로 드러난 순간. 흰 오각형은 조타실의 지붕이다. 김정연 기자

헝가리 유람선 허블레아니 호가 13일만에 처음 물 위로 드러난 순간. 흰 오각형은 조타실의 지붕이다. 김정연 기자

11일(현지시간) 오전 7시 12분, 다뉴브 강물 위로 흰색 오각형이 떠오르자 주변에선 카메라 셔터 소리가 쏟아졌다. 지난달 29일 사고로 침몰한 유람선 허블레아니가 13일 만에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이었다. 흰색 오각형은 허블레아니의 꼭대기에 위치한 조타실의 지붕이다.

13일만에 인양… 33분만에 'HABLEANY' 드러나

'HABLEANY'가 처음 물 위로 드러난 순간. 선수 갑판 난간에는 물풀이 잔뜩 끼어 있고, 난간에 장식됐던 천은 선체에 아무렇게나 걸쳐져 있다. 김정연 기자

'HABLEANY'가 처음 물 위로 드러난 순간. 선수 갑판 난간에는 물풀이 잔뜩 끼어 있고, 난간에 장식됐던 천은 선체에 아무렇게나 걸쳐져 있다. 김정연 기자

이날 헝가리 당국은 새벽부터 인양을 준비했다. 오전 6시 전일 모든 연결 작업을 끝내고 인양만을 남겨놓은 크레인 선박 클라크 아담과, 허블레아니가 있는 위치 양옆의 바지선에서는 수십 명의 헝가리 대테러청‧경찰‧인양 전문가 등 관계자들이 분주히 돌아다니며 마지막 점검을 하고 있었다. 지휘선 가림막 아래선 군, 외교부, 소방청 관계자가 뭔가를 끊임없이 이야기하고, 잠수사들과 소방대원 등 요원들이 속속 배를 타고 바지선에 도착했다.

헝가리 당국은 당초 오전 7시 30분부터 인양을 시작하려고 했으나, 준비가 일찍 진행돼 오전 6시 47분부터 허블레아니를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올리다 멈추다를 반복하며 느슨하던 인양 연결선이 점차 팽팽해졌다.

마침내 물 위로 올라온 허블레아니는 강바닥에 있던 그대로 좌현으로 약간 기울어진 상태였다. 클라크 아담은 조용히 허블레아니를 위로 끌어올렸고, 인양 시작 33분만에 ‘HABLEANY' 글자가 보이기 시작했다. 물 위로 올라온 선수 쪽 갑판에는 구명조끼가 떠다녔고, 갑판 난간과 선체에는 물풀이 잔뜩 끼어 있었다.

1시간 30분만에 4구 수습… 1구는 6세 여아 추정

그래픽=심정보 기자 shim.jeongbo@joongang.co.kr

그래픽=심정보 기자 shim.jeongbo@joongang.co.kr

인양 시작 1시간도 되기 전에 조타실에서 시신 한 구가 수습됐다. 헝가리인 선장으로 추정됐다. 구조대원들은 시신을 병원으로 옮겼다. 현장에는 약간의 적막이 감돌았다. 흐르는 강물소리와 지나가는 차 소리만 들렸다.

허블레아니가 조금 더 올라온 뒤인 오전 8시, 한국 구조대 4명이 곧장 배에 올라 지체없이 조타실 뒤 갑판으로 향했다. 3분 간격으로 시신 2구가 수습됐다. 당국은 “이중 1구는 실종됐던 6세 여아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10분 뒤 구조대는 갑판에서 선실로 내려가는 계단에서 1구를 추가로 발견했다. 시신을 수습해 병원으로 이송할 때마다, 현장에 있던 대원들은 눈으로 희생자를 마지막까지 배웅했다.

인양 6시간 43분만에 완료, 4구 못 찾고 끝나

우리 측 구조대원들이 바지선에 쪼그려 앉아 선실 내를 들여다보고 있다. 김정연 기자

우리 측 구조대원들이 바지선에 쪼그려 앉아 선실 내를 들여다보고 있다. 김정연 기자

연달아 4구를 이송한 뒤 당국은 허블레아니의 선체 후미 파손을 우려해 추가 와이어를 걸기로 했다. 1시간에 걸친 와이어 작업 끝에 오전 9시 50분, 허블레아니의 선실이 모두 드러났다. 방역복을 입은 구조대원들은 바지선 가장자리에 쪼그려 앉아 선실 내를 유심히 관찰했다.

그러나 초기 4명 수습 이후 추가 수습자는 없었다. 오전 11시 8분 잠수복과 보호장구를 착용한 구조대 3명이 착용해 선실 수색을 시작했지만, 아무도 찾지 못했다. 아직 배수작업이 끝나지 않아 물이 남은 선내에서 헤드랜턴과 손을 이용해 허리 숙여 물 밑을 저었지만, 옷과 철사 등을 건져 올릴 뿐이었다. 배 밖에서 잠수복과 방역복을 입은 동료 십수 명이 애타게 배 안을 지켜봤지만 들려오는 소식은 없었다.

선실 수색을 마친 뒤, 당국은 허블레아니를 완전히 들어 올려 바지선 위로 올렸다. 오후 1시 30분, 인양 시작 6시간 43분만에 허블레아니는 완전히 인양됐다. 헝가리 당국은 허블레아니 호를 다뉴브강 하류에 있는 체펠 (Csepel) 섬으로 이동해 정밀 감식을 할 예정이다.

타는 듯한 더위에도 엄숙했던 인양현장… 가족들은 영상으로 참관

 헝가리 부다페스트 다뉴브강 머르기트 다리 아래 인양현장에서 대원들이 희생자를 수습하기 전 경례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헝가리 부다페스트 다뉴브강 머르기트 다리 아래 인양현장에서 대원들이 희생자를 수습하기 전 경례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헝가리 대테러청 관계자는 “최대한 빨리 인양을 마치고 실종자를 가족 품으로 돌려보내기 위해 이른 시간에 작업을 시작했다”며 “온도가 올라가면 작업자들 건강이 우려돼 일찍 시작한 면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날 오전 6시 40분 20도였던 기온은 오전 10시 26도로 올랐다. 햇살이 뜨겁게 느껴질 정도로 강하게 내리쬐는 탓에 허블레아니에 걸려 있던 초록색 물풀은 낮 12시쯤엔 검게 바싹 말랐다. 그늘이 없는 바지선 위에서 일하는 대원들은 포크레인 그늘이나 머르기트 다리 그늘로 햇빛을 피했다. 그럼에도 누구 하나 불편한 기색 없이 묵묵히 수색에 전념하는 모습이었다.

이날 현장을 참관할 예정이었던 가족들은 현장에 오지 못했다. 이들은 노출 우려 때문에 헝가리 측 본부에서 영상을 통해 인양 과정을 지켜봤다. 이날 발견된 3구의 시신 신원 확인이 끝난 뒤 가족들은 심리치료사와 함께 병원으로 이동해 잃었던 가족을 확인하는 시간을 가졌다.

헝가리 유람선 사고 13일 만에 허블레아니호 인양이 끝나고 현재 생사가 확인되지 않은 실종자는 4명이다. 헝가리 경찰 당국은 "남은 실종자 4명을 수상 수색을 통해 끝까지 찾겠다"고 밝혔다. 현지시간 11일 오후 3시 기준 총 33명의 한국인 탑승객 중 생존자는 7명, 사망 22명, 실종 4명이다.

부다페스트=김정연 기자 kim.jeongy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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