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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삼성·SK 불러 “대미협조 땐 심각한 결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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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미국 뉴욕타임스(NYT)가 8일(현지시간) 중국 당국이 지난 3~4일 마이크로소프트(MS)·델을 비롯한 미국 기업, 영국의 반도체 설계업체 ARM, 삼성전자·SK하이닉스 관계자를 불러 압박 수위를 높였다고 보도했다. 특히 트럼프 행정부의 대(對) 중국 거래금지 조치에 협조하면 “심각한 결과(dire consequence)를 마주할 것”이라고 경고했다고 한다. 이번 면담엔 중국 국가개발개혁위원회와 중국 상무부·산업정보기술부 등 3개 부처 공무원이 참석했다. NYT는 “중국 정부의 3개 부처가 동시에 움직였다는 건 최고 지도부로부터의 승인을 거친 행위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NYT “화웨이 관련 압박수위 높여” #삼성 “확인해 줄 사항 없다” 신중 #중국이 가장 두려워하는 건 #트럼프의 ‘IT 세컨더리 보이콧’ #화웨이, 한국에 “부품 끊지 말라” #일부 “중국 위협 과장됐다” 해석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이에 대해 극도로 신중한 반응을 보였다. 이날 삼성전자의 한 관계자는 “언론에 확인해줄 수 있을 만한 사항이 없다”고 말을 아꼈다. 그러면서 “화웨이 제재에 따른 반사이익을 삼성이 얻을 것이라는 해석도 달갑지 않다”고 전했다. SK하이닉스 관계자도 “지금 단계에선 말씀드릴 수 있는 사항이 없다”고 말했다. NYT의 보도가 사실일 경우 미·중 무역 분쟁의 틈바구니에서 한국 기업이 샌드위치 신세가 될 것이란 우려가 현실화하는 것이다.

삼성과 SK하이닉스 모두 중국에 반도체 생산 시설을 갖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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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삼성전자는 중국 서부 시안(西安)에서 낸드플래시를, SK하이닉스는 중국 동부 우시(無錫)에서 D램을 각각 생산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부터 7조9000억원을 들여 시안에 낸드플래시 제2 공장을 짓고 있다. 시안 반도체 2공장이 2020년까지 완공되면 삼성 낸드플래시의 월간 최대 생산 규모는 지금보다 20만 장(43%) 늘어난 66만 장에 달한다.

SK하이닉스는 9500억원을 들여 지난 4월 D램 반도체를 만드는 우시 공장을 증설했다. 하이닉스의 D램 생산량 가운데 약 절반이 이곳에서 만들어진다.

삼성·SK하이닉스의 메모리 반도체 이외에도 삼성디스플레이는 스마트폰에 들어가는 디스플레이, LG이노텍은 카메라 모듈을 중국 기업에 공급하고 있다. 삼성전기는 회로 구성에 필수적인 적층세라믹콘덴서(MLCC)를 납품하고 있다. 이들 기업으로부터 각종 정보기술(IT) 부품·완제품을 공급받지 못한다면 시진핑(習近平·66) 국가주석이 희망하는 ‘중국 제조 2025(2015년 5월 중국이 발표한 산업 정책으로 2025년까지 전기차·반도체 등 10개 하이테크 분야에서 제조업 초강대국이 되겠다는 계획)’는 달성될 수 없다.

IT 업계 안팎에 따르면 중국 당국이 두려워하는 지점은 트럼프 행정부의 ‘IT판 세컨더리 보이콧’(제3자 제재)이다. 미국이 아닌 다른 나라 기업들이 화웨이와 거래할 경우 불이익을 주는 세컨더리 보이콧까지 시행되면 ‘IT 굴기’를 목표로 삼는 중국 입장에선 재앙이다. NYT는 이날 “중국 당국이 생산 시설을 국외로 이전하는 행위가 (생산시설) 다각화 차원을 넘어선 것으로 판단될 경우 해당 기업에 대해 처벌할 것이라고 경고했다”고 전했다.

화웨이는 최근 급히 한국에 임원진을 보내 부품 공급선을 유지해 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달 23~24일 화웨이 모바일사업부 소속 한 고위 임원은 삼성전자·SK하이닉스·LG디스플레이 등 국내 대기업 임원진과 만나 “기존 계약 조건대로 부품 공급을 이행해 달라”는 부탁을 했다고 한다. 최근에는 국내 중견기업에도 화웨이 임원진이 찾아왔다고 한다. 국내 중견기업들도 화웨이에 상당한 물량을 공급한다. 한 예로 이동통신용 트랜지스터·전력증폭기를 만드는 중견기업 RFHIC는 화웨이를 상대로 연간 매출액 700억원, 영업이익 약 105억원을 올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중의 가운데 낀 한국 기업이 화웨이에 대한 부품 공급을 중단할 경우 중국 정부가 롯데마트에 했던 보복 조치가 재연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롯데마트는 2년 전인 2017년 3월 중국의 사드 보복으로 전체 매장(99곳) 가운데 87곳이 영업정지를 당한 뒤 지난해 완전 철수 결정을 내렸다. 당시에도 중국 정부가 소방법·위생법 등 각종 행정력을 동원해 롯데마트에 장기간 영업정지를 내렸다. 반도체 라인 내 청결도, 화학물질 발생 등을 이유로 중국 당국이 향후 제재를 내린다면 한국 기업도 현지에서 어려움에 빠질 수 있다.

다만 일각에선 반 트럼프 기조가 강한 NYT의 보도가 다소 과장된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미 경제방송 CNBC에 따르면 중국 당국은 한국을 비롯한 제3국 기업엔 “정상적으로 거래를 계속하는 한 어떠한 불리한 결과에도 직면하지 않을 것”이라며 유화적인 메시지를 보냈다. NYT 보도와는 다소 결이 다르다.

김영민 기자, 워싱턴=정효식 특파원 brad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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