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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정부, 헝가리에 "선장 뺑소니·부실구조도 수사해달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헝가리 부다페스트 다뉴브 강에서 29일(현지시간) 한국인 33명이 탄 유람선 허블레아니호(왼쪽)가 침몰 했다. 큰 사진은 허블레아니호가 바이킹 시긴호(오른쪽)에 들이받혀 침몰하기 직전의 장면 . 작은 사진은 추돌 바로 전 장면 . [헝가리 경찰청 유튜브 캡처]

헝가리 부다페스트 다뉴브 강에서 29일(현지시간) 한국인 33명이 탄 유람선 허블레아니호(왼쪽)가 침몰 했다. 큰 사진은 허블레아니호가 바이킹 시긴호(오른쪽)에 들이받혀 침몰하기 직전의 장면 . 작은 사진은 추돌 바로 전 장면 . [헝가리 경찰청 유튜브 캡처]

정부 "크루즈 선장 혐의 2개 아닌 4개" 

정부가 헝가리 당국에 유람선 허블레아니호를 침몰시킨 크루즈 선장 유리.C(64)의 뺑소니 혐의와 사고 직후 크루즈 선원들의 구조 미흡 여부에 대한 수사를 요청한 것으로 9일(현지시간) 확인됐다.

현재 과실치사와 항해법 위반 혐의를 받고있는 유리 선장과 그 선사에 대한 사실상 추가 수사를 요청한 것이다. 정부는 사고 뒤 운행을 재개한 크루즈선 바이킹 시긴호와 그 선원들에 대한 보완 수사도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복수의 정부 당국자는 "현재 유리 선장에게 2개의 혐의만 적용된 상태"라며 "우리 측에선 사고 후 도주(뺑소니)와 구조미흡을 더해 총 4개의 혐의를 살펴봐야 한다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현지에 파견된 법무부 검찰 파견관 등을 통해 부다페스트 검찰청 검사장과 헝가리 대검 차장에게 이와 같은 입장을 전달한 상태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도 7일 페테르 시야르토 헝가리 외무부 장관과 일주일만에 다시 만나 철저한 진상규명의 필요성을 재차 강조한 것으로 전해졌다.

헝가리 당국 "현재로선 2개 혐의만 적용"

헝가리 부다페스트 검찰청은 정부의 요청과 달리 아직 유리 선장에게 2개의 혐의(과실치사·항해법 위반)만 적용하고 있다.

8일(현지시간) 이상진 정부합동신속대응팀장이 헝가리 부다페스트 다뉴브강 머르기트 섬에 마련된 우리측 CP에서 정례브리핑을 하고 있다. 오른쪽은 송순근 주 헝가리 한국대사관 국방무관. [연합뉴스]

8일(현지시간) 이상진 정부합동신속대응팀장이 헝가리 부다페스트 다뉴브강 머르기트 섬에 마련된 우리측 CP에서 정례브리핑을 하고 있다. 오른쪽은 송순근 주 헝가리 한국대사관 국방무관. [연합뉴스]

랍 페렌츠 부다페스트 검찰청 부대변인은 지난 6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도주 의심 관련) 영상은 확보한 상태"라면서도 "현재로선 2개의 혐의만 살펴보고 있다"고 말했다.

헝가리 측 주장대로라면 헝가리 법률상 유리 선장에겐 최대 징역 8년형까지 선고될 수 있다. 우리 측 요구대로 추가 혐의가 더해질 경우 형량은 징역 10년 이상으로 늘어나게 된다.

부다페스트 검찰청은 유리 선장이 사고 직후 자신의 휴대전화에서 사고 관련 증거를 인멸한 정황과 지난 4월에도 이와 비슷한 사고를 낸 이력을 확인한 상태다. 하지만 유리 선장은 보석 여부가 결정될 영장항고심사를 앞두고 관련 혐의를 모두 부인하고 있다.

사고 직후 20초간 후진 뒤 정지, 그리고 45분간 운행 

정부와 사고 가족 측에선 유리 선장의 뺑소니 혐의가 명백하다는 입장이다. 사고 당시 현장 영상에서 바이킹 시긴호는 허블레아니호를 침몰시킨 뒤 사고 현장으로 후진해 20초간 머물다가 다시 45분간 운행을 재개했다.

정부는 이를 유리 선장이 사고를 인지하고 도주한 주요 근거로 보고있다. 또한 크루즈선이 "사고 직후 후진하는 과정에서 승객들의 탈출을 더욱 어렵게 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허블레아니호를 추돌한 대형 크루즈 바이킹 시긴이 당시 사고를 인지했을 수 있다는 정황이 담긴 영상이 추가 공개됐다. 영상에는 헝가리 부다페스트의 미르기트 다리 부근에서 바이킹 시긴호가 허블레아니호를 침몰시킨 뒤 사고 현장으로 후진해 20초간 머물렀던 모습이 담겨있다.[유튜브 캡처, 뉴스1]

허블레아니호를 추돌한 대형 크루즈 바이킹 시긴이 당시 사고를 인지했을 수 있다는 정황이 담긴 영상이 추가 공개됐다. 영상에는 헝가리 부다페스트의 미르기트 다리 부근에서 바이킹 시긴호가 허블레아니호를 침몰시킨 뒤 사고 현장으로 후진해 20초간 머물렀던 모습이 담겨있다.[유튜브 캡처, 뉴스1]

한국 법무부는 이 과정에서 세월호 수사 검사 등을 투입해 해상 교통사고와 관련한 헝가리 법률 검토도 진행 중이다. 세월호 조사를 담당했던 해양안전심판원 조사관들도 현지에 파견된 상태다.

법무부 관계자는 "헝가리 검찰청과 이번 사고와 관련한 사법 공조를 이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부다페스트 검찰청은 허블레아니호가 인양된 뒤 사고 관련 추가 조사를 진행할 계획이다.

검사 입회해 진행된 이례적인 생존자 추가 조사 

부다페스트 검찰청은 이런 정부와 사고 가족의 요청에 지난 4일 사고 생존자 7명 중 6명에 대한 추가 조사를 진행했다. 남은 1명은 7일 병원에서 퇴원한 뒤 조사가 진행됐다.

사고 직후 현지 경찰청의 조사가 한 차례 있었음에도 검사 입회 하에 재조사가 진행된 것이다. 현지 신속대응팀 관계자는 "검사가 경찰 조사에 입회하는 것은 헝가리에서 매우 이례적인 일"이라고 했다.

생존자와 가족들이 첫 조사에서 부실통역 등에 대해 강력한 불만을 제기한 것도 재조사의 영향을 미친 것으로 전해졌다.

헝가리 검·경, 수사인력 70여명 투입 

헝가리 경찰과 검찰은 이번 사고에 수사인력 70여명을 투입한 것으로 전해졌다. 부다페스트 검찰청은 해상 교통사고와 특수수사 관련 전문검사 5명을 투입하고 한국과 사법공조를 담당할 검사도 추가로 배정한 상태다.

8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헝가리 유람선 침몰 희생자 애도 및 실종자 귀환 기원 촛불집회에서 4.16세월호참사 가족협의회와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8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헝가리 유람선 침몰 희생자 애도 및 실종자 귀환 기원 촛불집회에서 4.16세월호참사 가족협의회와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하지만 헝가리 사법당국이 정부의 요청대로 유리 선장의 추가 혐의에 대한 수사를 이어갈지는 확실치 않다. 관련 증거가 충분히 확보되지 않았을 가능성과 구조미흡 혐의의 경우 사고 직후 헝가리 경찰의 책임론도 일부 제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전직 외교부 고위 당국자는 "정부 측에선 확실한 법리와 논리를 바탕으로 헝가리 측에 우리 입장을 설득력 있게 전달하는 것이 관건"이라고 말했다.

부다페스트=박태인 기자 park.tae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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