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영화, 과학은 안다]중국 SF ‘유랑지구’, 지구는 어떻게 태양계를 탈출할까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유랑지구

유랑지구

인류는, 아니 지구는 결국 멸망한다. 인간이 극복할 수 없는 나이가 있듯, 지구와 지구가 속한 태양계도 수명이 있다. 태양이 식어 그 수명을 다하면 지구를 비롯한 모든 행성도 멸망에 이를 수밖에 없다. 천문학계에서 말하는 태양의 나이는 약 50억 년. 앞으로 그 곱절을 살아 100억 년이 되면 태양의 중심에서 핵융합을 일으키는 수소가 다 타버린다. 그래도 끝은 아니다. 태양과 비슷한 크기의 별은 수명을 다하기 전 수축했다가 다시 핵융합을 일으키며 부풀어 오른다. 이른바 ‘적색거성’이다. 이렇게 수축과 팽창을 거듭하면서 결국 백색왜성의 형태로 수명을 다한다.

지구와 관련해 주목해야 할 부분이 적색거성 단계다. 태양은 이때쯤 원래 크기의 300~300배 커진다. 작더라도 금성 정도는 삼키고도 남고, 크면 지구를 넘어 화성 궤도까지 번진다. 그러면 지구는 어떻게 될까. 당연히 멸망이다. 최소 섭씨 3000도 이상의 화염이 지구를 덮쳐, 모든 것을 태워버리게 된다. 화산에서 흘러나오는 용암의 온도가 최대 1200도라고 하니, 3000도는 온도는 상상하기 어려운 정도다.

포스터

포스터

너무도 먼 미래의 얘기지만, 과학소설(SF) 작가ㆍ감독들이 이런 멸망 스토리를 가만둘 리 없다. 지난 4월 개봉한 중국 SF영화 ‘유랑지구’는 태양의 일생 중 적색거성 부문을 소재로 풀어낸 영화다. SF계의 노벨 문학상이라 불리는 휴고상을 수상한 중국 작가 ‘류츠신(劉慈欣)’이 2000년 발표한 동명 소설이 원작이다.

약 550억 원이 투입된 대형 SF영화 유랑지구는 중국에서 춘절(설날)에 개봉돼 7억 달러에 가까운 수익을 내, 역대 2위의 흥행 기록을 세웠다고 한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폭망 ’했다. 개봉 3주간 1만7000명의 관객을 끌어들이는 데 그쳐 조기에 종영됐다. 그럼에도 뛰어난 상상력과 화려한 컴퓨터그래픽 등으로 급성장한 중국 SF 영화의 저력을 아낌없이 보여줬다는 데는 별다른 이견이 없다.

인류는 적색거성으로 변신해 지구를 덮쳐오는 태양을 피하기 위해 전 세계적으로 힘을 합친다. 지구 전체를 움직여 태양계에서 4.2광년 떨어진 항성계에 새로 정착한다는 목표를 세운다. 이를 위해 1만 개의 ‘행성 추진기’을 만들어 지구를 현재의 공전궤도에서 탈출시킨다. 지구가 하나의 거대한 우주선이 되는 셈이다. 인류는 지하도시를 건설해 갑자기 바뀐 재앙으로부터 일단 피신한다. 이 와중에 절체절명의 위기가 또 다가온다. 태양계를 벗어나기 위해 전진하던 중 목성의 중력에 지구가 빨려들기 시작한다. 처음엔 지구의 대기가 먼저 목성으로 빠져나가지만, 결국 놔두면 목성과 충돌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인다.

유랑지구

유랑지구

SF 작가는 또 한 번 상상력을 발휘한다. 목성은 구성 성분의 90%가 수소로 이뤄진 기체 행성이다. 영화는 연료를 가득 실은 우주정거장을 충돌시켜 목성에 불을 붙이고, 이 폭발에서 나오는 추진력을 이용해 지구가 충돌을 피한다는 스토리를 담고 있다. 러닝타임 2시간이 조금 넘는 영화는 여기서 숨 막히는 질주를 멈춘다. 하지만 막을 내리기 전, 이후 2500년의 기나긴 우주여행을 통해 새로운 항성계로 간다는 설명을 해준다. 영화 제목 '유랑지구'(流浪地球)는 지구가 이렇게 새로운 별을 찾아 떠난다는 의미에서 지은 이름이다.

태양의 일생에 힌트를 얻어 지구가 위기 속 태양계를 탈출한다는 내용의 SF는 중국의 유랑지구뿐 아니다. 미국 SF 작가 스탠리 슈미트 소설 『아버지의 죄』(The sins of the Fathers, 1976)에서는 외계인이 남극에 거대 로켓엔진을 건설해서 지구를 궤도에서 벗어나게 한다는 내용이 나온다. 이외에도 태양열을 이용해서 달과 금성을 지구 궤도 옮기거나, 태양을 태양계에서 빼내는 등의 비슷한 얘기를 담은 SF소설이 적지 않다.

그렇다면 과연, 적색거성의 시대에 지구가 영화에서처럼 ‘지구 엔진’을 이용해 공전궤도를 탈출할 수 있을까. 사실 이 부분은 과학을 넘어 공상(空想)이나 판타지 단계로 넘어갔다고 할 수 있다. 한국천문연구원에 물어봤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영화처럼 공학기술이 발달해 그런 엄청난 엔진을 만들었다 하더라도 지구를 궤도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은 과학적으로 불가능하다.

조중현 한국천문연구원 우주위험감시센터장은 “SF 작가들이 상상력을 동원해 이런 소설들을 펴내면, 과학자들도 그 주장을 검증하기 위해 계산을 해본다”며 “지금까지 알려진 가장 강한 핵폭탄인 러시아의‘차르 봄바’(약 50메가톤)도 지구 자전 에너지의 1조 분의 1에 불과하다는 계산이 나온다”고 말했다. 그는 “결국 인류가 물리학에서 가능한 모든 에너지를 동원하다 해도 공전궤도 탈출은커녕 지구 축조차 움직일 수 없다”며 “핵폭탄이 지구 생물에 어마어마한 피해를 주고 지형을 조금 바꿀 수는 있겠지만, 지축에 영향을 주기에는 초대형 지진만도 못하다”고 덧붙였다.

사실 공상이라 하더라도 굳이 50억 년 뒤 적색거성으로 변한 태양 시대까지 갈 필요조차도 없다. 그 전에 어떻게든 인류는 여러 가지 모습으로 멸망을 맞을 수밖에 없다. 김상철 천문연구원 광학천문본부 박사는 “앞으로 20억 년 뒤 안드로메다은하가 우리 은하와 충돌하게 돼 있다”며 “그렇게 되면 수많은 별이 중력에 의해 서로 끌어 당겨지면서 지구가 멸망의 위기를 맞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긴 가깝게는 수많은 소행성과 혜성도 지구 멸망은 아니더라도 인류 멸망은 충분히 일으킬 수 있다. 아니, 온실가스로 인한 지구 온난화, 지각변동으로 인한 화산 대폭발…. 인류 멸망의 시나리오는 넘친다.

최준호 기자 joonho@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