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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SUNDAY 편집국장 레터] 경상수지 적자보다 걱정되는 '자본의 파업'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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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8호 면

독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중앙SUNDAY 편집국장 김종윤입니다. 4월 경상수지가 6억6000만 달러 적자를 기록했습니다. 83개월 만에 흑자 행진이 멈췄습니다. 경상수지는 외국과 물건이나 서비스를 사고팔고, 자본ㆍ노동 등 생산 요소의 이동에 따라 대가를 주고받은 걸 종합한 것이죠. 가계와 마찬가지로 국가도 일정 기간에 생산 및 서비스 활동을 하고 돈을 얼마나 벌었는지를 따지게 됩니다. 일반적으로 흑자를 낸 게 적자를 낸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합니다. 돈이 내 주머니에 들어오면 든든해지는 이치입니다.

하지만 적자를 기록했다고 심각한 문제가 되는 것도 아닙니다. 기축통화국이 아닌 나라가 만성적인 적자에 허덕이면 위기에 빠질 수 있지만, 일시적으로 적자가 나는 건 크게 문제 될 게 없습니다. 4월에 경상수지가 적자로 돌아선 건 상품수지 흑자 폭이 예전보다 줄어든 데다 배당 지급이 4월에 집중됐기 때문입니다.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한국 주식 시장에 투자한 외국인에게 지급한 배당금은 해당국으로 대부분 빠져나갑니다. 하지만 배당 지급이 4월에 집중된 건 올해만의 특이한 현상은 아닙니다. 지난해 4월 배당 지급액은 63억6000만 달러였고, 올 4월 배당 지급액은 49억8000만 달러였습니다. 결국 수출이 줄고 수입이 늘면서 상품수지 흑자 폭이 줄었기 때문에 경상수지 적자를 기록한 것입니다.

경상수지 흑자가 지나치게 많아지면 교역 상대국의 타깃이 됩니다. 미국이 매년 환율조작국을 지정할 때 조건의 하나가 경상수지 흑자 규모가 국내총생산(GDP)의 3% 이상을 넘겼느냐 여부입니다. 한국은 이 비율이 7% 수준을 넘나들었습니다. 미국이 매년 한국에 감시 눈길을 보내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일단 5월 경상수지는 흑자로 돌아설 것 같습니다. 배당 지급액이 확 줄 것이고, 상품수지는 흑자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하기 때문입니다. 이미 5월 무역수지가 발표됐는데 22억7000만 달러 흑자를 냈습니다.(무역수지는 관세청이, 상품수지는 한국은행이 집계합니다. 수입가격과 작성 시점을 어떤 기준으로 정하느냐에 따라 수치가 달라집니다만 큰 틀에서 무역수지와 상품수지 규모는 큰 차이가 없습니다.)

한 달 만에 다시 흑자로 돌아서더라도 우려스러운 건 수출액이 계속 줄어든다는 겁니다. 5월 수출액은 459억 달러로 집계됐습니다. 4월(488억 달러)보다 적고, 지난해 5월(506억 달러)보다 9.4%나 감소했습니다. 원인은 미ㆍ중 무역분쟁이 심화하는 데다 반도체 업황이 부진했기 때문입니다. 반도체 수출은 지난해 5월과 비교해서 올 5월에 30.5%나 줄었습니다. 반도체는 지난해 예상을 뛰어넘은 호황을 누렸습니다. 올해 들어서 정상 기조로 돌아선 것으로 봐야겠죠.

이를 종합하면 올해 수출이 예전처럼 활기를 띠기 힘들 것 같습니다. 소규모 개방국가인 한국 입장에서 수출 성장세가 꺾이면 비상등이 켜집니다. 이는 한국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미·중 분쟁으로 전 세계적인 교역 축소는 불가피합니다. 수출 주도 국가가 공통으로 겪는 위기입니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이 대목에서 필요한 건 내수입니다. 좌우 엔진이 돌아야 비행기가 이륙하듯 경제도 수출과 내수라는 두 엔진이 함께 불을 뿜어야 안정적인 이륙과 비행을 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내수의 한 축인 투자입니다.

올 상반기 설비투자가 10.1%나 감소(전년 대비)할 것으로 예상합니다(KDI). 연간으로도 4.8% 감소할 것으로 전망합니다. 대신 외국으로 투자는 늘어납니다. 기업이 자국에 투자를 안 한다는 건 돈을 벌기 어렵다고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투자 없이는 일자리를 만들기 어렵습니다. 성장도 기대할 수 없습니다.

언제부터인지 기업 투자를 끌어내기 위한 노력이 보이지 않습니다. 각종 규제와 반시장적 제도로 인해 많은 기업이  ‘자본의 파업’에 돌입했습니다. 경상수지 적자라는 빨간 등이 켜졌지만 정작 필요한 것은 기업의 투자를 이끌기 위한 환경 조성입니다. 자본의 파업이 계속되는 나라의 미래, 아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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