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톨의 식량도 아쉬운 판에···北 “300t 안되면 받지 마라” 배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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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노동자들이 WFP가 지원한 쌀을 남포항에서 하역하고 있다. [사진 RFA 캡처]

북한의 노동자들이 WFP가 지원한 쌀을 남포항에서 하역하고 있다. [사진 RFA 캡처]

국제사회에 식량지원을 호소하고 있는 북한이 통큰 식량 지원이 아니면 받지 말라는 식으로 배짱을 부리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5일 자유아시아방송(RFA)은 함경북도의 한 소식통을 인용해 “지난달 하순 중앙에서 각 도·시·군 인민위원회 산하 ‘해외동포영접국’에 해외 민간단체의 지원 규칙이라는 것을 하달했다”며 “국제 민간단체가 식량지원을 제안해올 경우 300t 이상이 아니면 지원 받지 말라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같은 당 중앙의 지침에 주민들은 물론 지방 간부들도 당혹해 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소식통은 “이에 해당 기관 간부들이 무척 난감한 표정을 짓고 있다”며 “한 톨의 식량도 아쉬운 판에 공짜로 주겠다는데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인다”고 말했다.

소식통은 또 “과거에 외국의 민간단체로부터 식량지원을 받을 때는 100t이든 200t이든 주는 대로 다 받아들였다”면서 “하다못해 남한이 지원하는 식량도 ‘쌀에 사상이 있나. 공짜로 식량을 받는 것은 우리의 전략적 승리’라고 주민들에게 선전한 바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동안 외국의 민간단체들이 지원한 식량은 대개 값싼 옥수수·콩·밀가루였다”며 “현재 가격으로 환산해도 옥수수 300t이면 10만달러(약 1억1800만원)인데 소규모 민간단체들로서는 버거운 금액”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외국의 민간단체가 해외동포영접국에 식량지원 의사를 밝혀오면 즉시 평양에 보고해야 한다”면서 “해외 민간차원의 식량지원은 분배 확인 절차도 필요 없기 때문에 일반 주민들은 제외되고 중앙의 지시에 따라 경제협조국과 양정국을 통해 군, 당, 사법, 정무원 배급용으로 풀리게 된다”고 주장했다.

함경북도의 다른 소식통은 “지난 5월 중순 미국의 민간단체 ‘크리스’가 식량지원 의사를 밝혀왔다”며 “그러나 크리스가 지원하겠다는 식량이 25t에 불과하다는 이유로 바로 거절당했다”고 전했다.

소식통은 “지난 수년간 영양실조에 걸린 북한 어린이·노인들을 대상으로 계속 무상 지원해온 자선단체가 크리스였다”면서 “그러나 중앙에서 정한 식량지원 기준에 미달한다는 이유로 지원활동이 중단됐다”고 말했다.

그는 또 “중앙에서 해외 민간단체들이 적은 양의 식량지원으로 북한 내부에 침투해 주민들의 사상교란을 시도 중이라고 주장한다”면서 “도대체 무엇이 두려워 공짜로 주는 식량도 받지 못하느냐는 불만이 주민들 속에서 일고 있다”고 했다.

한편 러시아가 심각한 가뭄을 겪고 있는 북한에 3900여t의 밀을 지원했다고 북한 주재 러시아 대사관이 5일(현지시간) 밝혔다.

대사관에 따르면 이날 북한 남포항에서 러시아가 지원한 2895t의 밀 하역식이 거행됐다.

밀은 올해 심각한 가뭄으로 식량난을 겪고 있는 북한에 대한 인도주의 지원 차원에서 세계식량계획(WFP) 채널을 통해 지원되는 것이라고 대사관 측이 페이스북 계정에 올린 글을 통해 설명했다.

배재성 기자 hongdoy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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