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이홍구칼럼

정말 중요한 9월 한·미 정상회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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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미사일 발사 뒤 있었던 정상 간의 전화통화에서 언급됐듯이 9월로 예정된 한.미 정상회담은 아마도 한.미 관계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회담이 되지 않을까 생각된다. 그동안 확실한 방향감각이나 상호이해 없이 표류했던 중대한 과제들, 즉 북한의 핵과 미사일 문제, 한.미 안보동맹의 조정 문제, 자유무역협정(FTA)을 위시한 경제통상 문제 등에 대한 두 대통령 간의 솔직한 대화는 당면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마련할 뿐 아니라 향후 10년이나 20년에 걸친 양국 관계 발전의 새로운 기틀을 놓을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정상회담에서는 우리 측이 보다 적극적인 자세로 한국과 미국이 함께 나아갈 방향과 방안을 제시하는 과감한 회담전략을 세워야 하며 이를 위한 우리의 입장을 조속히 정리해야만 한다.

우리 측은 한.미 관계가 왜 미.중 혹은 미.일 관계와 다른 특수성을 지녔는지를 새삼 지적할 필요가 있다. 노무현.부시 두 대통령이 태어나기 이전부터 시작됐던 한반도 60년 분단사에서 미국은 처음부터 오늘날까지 특별한 역할을 맡아 왔다. 그리고 양국의 동맹 관계를 바탕으로 성장한 대한민국은 이제 아시아의 평화와 번영을 위한 균형자 역할을 미국과 더불어 자임하겠다는 위치에까지 서게 됐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한.미 FTA의 중요성도 통상 자유화를 통한 양국 경제 신장의 촉진이란 일차적 목적에 더해 아시아.태평양지역의 평화와 번영에 기여하는 기폭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노 대통령은 지극히 불투명한 국내 정치 상황에서 FTA 추진이란 모험에 앞장서고 있음을 미국 측에 설명하고 부시 대통령이 대승적 차원에서 의회와 이익집단을 설득해 적절한 양보를 얻어냄으로써 한.미 관계는 물론 아태지역에서의 미국의 위치를 강화하는 데 크게 기여할 것임을 권유해야 할 것이다.

지난 5일 미사일 발사 이후 한.미 양국이 함께 대처해야 할 가장 시급한 과제는 물론 북한 문제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 프로그램이 한반도의 안전은 물론 동북아 전체의 평화를 위협하고 있는 점에 대해서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그러기에 1992년 김일성 주석이 합의한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을 준수해야 하는 의무를 북한 당국은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 북한 주민의 안전이나 복지보다도 그 체제의, 특히 지도자의 권력유지를 위한 수단으로 추진되는 핵과 미사일 개발은 반드시 저지돼야 한다는 것이 우리의 일관된 입장이다. 다만 처참한 전쟁을 경험한 한국으로서는 핵과 미사일 문제의 해결수단으로 무력 사용, 즉 전쟁이란 수단을 고려하는 데는 동조할 수 없을 뿐이다. 다른 한편, 북한 주민의 어려움은 수수방관할 수 없기에 인도주의 및 민족공동체정신에 입각한 남북협력 사업은 계속 추진해 나가자는 것이 우리 국민 대다수의 정서다.

이미 한.미 양국의 대통령이 북한의 도발행위를 외교적 노력으로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은 여간 다행한 일이 아니다. 앞으로 두 대통령이 북한 문제에 대해 함께 기획하고 추진해야 하는 외교적 노력의 시발점은 아마도 어떤 형식으로든 북.미 간 양자대화의 물꼬를 트는 데 있을 것이다. 한국은 그러한 양자대화가 시작되는 것을 반대하지 않으며 다만 핵이나 미사일을 포함한 북한 문제 해결에 직접적인 당사자로서 그 과정에 절대 무관할 수 없고 항시 최종 타결에 대한 결정적 영향력을 유보하고 있을 뿐이다. 따라서 북.미 대화의 성공과 한국의 입장이 함께 보장되기 위해서는 한.미 간의 긴밀한 공조체제가 원활하게 가동돼야 한다. 북한 미사일 발사에 이은 한.미 정상회담이 북한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마련해 주고 노무현.부시 두 대통령의 역사적 업적을 쌓는 계기가 된다면 그것이야말로 역사의 오묘한 회전이 아니겠는가.

이홍구 중앙일보 고문.전 국무총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