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아버지가 나의 역도 스승" 나란히 '소년체전 3관왕' 키운 父子

중앙일보

입력

지난달 29일 전북 순창군 순창고 역도장에서 순창북중·순창고 역도부 윤상윤(59·오른쪽) 감독과 그의 장남 전주용소중 윤범석(32) 코치가 나란히 섰다. 두 사람이 지도한 제자 2명이 올해 소년체전에서 동시에 3관왕에 올랐다. [사진 전북역도연맹]

지난달 29일 전북 순창군 순창고 역도장에서 순창북중·순창고 역도부 윤상윤(59·오른쪽) 감독과 그의 장남 전주용소중 윤범석(32) 코치가 나란히 섰다. 두 사람이 지도한 제자 2명이 올해 소년체전에서 동시에 3관왕에 올랐다. [사진 전북역도연맹]

평생 역도 지도자 외길을 걸어온 아버지와 그 아버지에게 바벨 드는 법을 배운 국가대표 출신 아들이 키운 중학생 제자 2명이 나란히 소년체전 3관왕에 올랐다. 전북 순창북중·순창고 역도부 윤상윤(59) 감독과 그의 장남 전주용소중 윤범석(32) 코치가 주인공이다. 순창고를 나온 윤 코치는 윤 감독의 제자이기도 하다. 두 사람은 부자(父子)이자 사제(師弟) 사이인 셈이다.

'28년 지도자 외길' 순창북중 윤상윤 감독 #장남 전주용소중 범석 코치와 금 6개 합작 #윤 감독, 영화 '킹콩을 들다' 실화 주인공 #국가대표 출신 아들 "아버지가 역할모델"

윤 감독 부자가 지도하는 두 학생은 지난달 28일 전북에서 막을 내린 '제48회 전국소년체육대회'에서 동시에 '금빛 바벨'을 들어올렸다. 순창북중 3학년 유동현(15)군은 남중부 77㎏급에서 인상(124㎏)·용상(141㎏)·합계(265㎏) 3관왕에 올랐다. 유군은 지난해 대회에서도 62㎏급 3관왕을 차지해 대회 2연패를 기록했다. 전주용소중 3학년 권민구(15)군은 94㎏급에서 인상(121㎏)·용상(152㎏)·합계(273㎏) 3관왕을 차지했다. 소년체전 역사상 부자가 같은 종목 지도자로 참가해 3관왕을 함께 배출한 건 처음이다.

올해 소년체전은 윤 감독에게 여러모로 뜻깊은 대회다. 전북 역도 선수단이 금메달 9개와 은메달 4개를 땄는데, 모두 윤 감독 부자와 윤 감독 제자들이 가르친 선수들이 거둔 성적이어서다.

전주용소중 윤범석(32) 코치가 올해 소년체전 3관왕에 오른 제자 권민구(15·용소중 3학년)군의 바벨 드는 자세를 교정해 주고 있다. [사진 전북역도연맹]

올해 소년체전 남중부 77kg급 3관왕인 순창북중 3학년 유동현(15)군이 바벨을 들어올리고 있다. 유군은 지난해에도 3관왕을 차지해 대회 2연패를 기록했다. [사진 전북역도연맹]
올해 소년체전 남중부 94kg급 3관왕을 차지한 전주용소중 3학년 권민구(15)군이 바벨을 들어올리고 있다. [사진 전북역도연맹]

각각 남중부 62㎏급에서 금 1개(합계)와 은 2개(인상·용상), 50㎏급 금 2개(용상·합계), 은 1개(인상)를 딴 배민호(15·전주우아중 3학년)군과 김건우(15·전북체중 3학년)군을 지도한 전주우아중 최혜진(37·여) 코치와 전북체중 이현정(36·여) 코치가 윤 감독의 순창고 제자들이다. 윤 감독은 "국가대표 출신인 이 코치는 영화 '킹콩을 들다'의 모티브가 된 부산 전국체전 종합우승을 이끈 주역(당시 순창고 2학년)이고, 1년 선배인 최 코치도 당시 출전했으면 3관왕은 했을 재목"이라고 했다.

2009년 개봉한 영화 '킹콩을 들다'는 시골 중학교에 부임한 올림픽 역도 동메달리스트 이지봉 코치가 어려운 환경의 소녀들을 모아 역도부를 만든 뒤 좌충우돌하는 모습을 그렸다. 관객 126만 명의 심금을 울린 이 영화는 순창고가 2000년 '제81회 부산 전국체전' 여고부 역도 경기에서 총 15개의 금메달 중 14개를 휩쓴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됐다.

올해 소년체전 남중부 77kg급 3관왕 순창북중 3학년 유동현(15·왼쪽)군과 94kg급 3관왕 전주용소중 3학년 권민구(15)군이 금메달을 목에 걸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 전북역도연맹]

순창북중·순창고 역도부 윤상윤(59) 감독(오른쪽)과 올해 소년체전 3관왕을 차지한 제자 유동현(15·순창북중 3학년)군. [사진 전북역도연맹]
전주용소중 윤범석(32·오른쪽) 코치와 올해 소년체전 3관왕에 오른 제자 권민구(15·용소중 3학년)군. [사진 전북역도연맹]

배우 이범수가 열연한 이지봉 코치는 고인이 된 정인영 교사와 윤 감독, 김용철(현 전남 보성군청 역도팀 감독) 코치 등 세 지도자를 합친 캐릭터다. 당시 순창여중에서 체육을 가르치던 정 교사가 '될성부른 떡잎'들을 뽑아 순창고로 보냈고, 윤 감독과 김 코치가 재목으로 키워내 '전국체전 사상 단일 팀 최다 금메달'이라는 전설을 만들었다.

당시 영화가 흥행하면서 역도도 '반짝 관심'을 모았지만, 여전히 비인기 종목 신세다. 전성기엔 순창북중·순창고 통틀어 역도부원이 30명이 넘었지만, 현재는 중학교 5명, 고등학교 5명뿐이다. 여자 선수는 2017년 이후 명맥이 끊겼다.

이런 척박한 환경 속에서 시골 학교가 수십년간 '역도 명문'으로 이름을 날린 배경에는 윤 감독의 공이 크다고 역도인들은 입을 모은다. 1992년 순창북중 역도부를 창단한 윤 감독은 올해까지 28년째 순창북중·순창고 역도부를 이끌고 있다. 역도 선수 출신인 그는 베이징올림픽 은메달리스트 이배영과 세계선수권 우승자 서희엽 등 수백 명의 선수와 지도자를 배출했다. 현재 순창북중 역도부 이시열(39) 코치와 순창고 박성무(39) 코치도 윤 감독의 제자들이다.

윤 감독은 "역도도 기초가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바벨 드는 자세 등 기본기를 잘못 가르치면 선수가 아무리 기능이 좋아도 좋은 선수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는 "어릴 때 체중을 억지로 빼면 다치기 쉽고 선수 생명도 짧다"며 "잘 먹이면서 근력을 키우고 몸을 크게 만들어서 기록을 늘려야 한다"고 했다.

순창북중·순창고 윤상윤 감독과 그의 장남 전주용소중 윤범석 코치, 올해 소년체전 3관왕에 오른 순창북중 3학년 유동현군과 전주용소중 3학년 권민구군이 순창고 역도장 앞에서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전북역도연맹]

순창북중·순창고 윤상윤 감독과 그의 장남 전주용소중 윤범석 코치, 올해 소년체전 3관왕에 오른 순창북중 3학년 유동현군과 전주용소중 3학년 권민구군이 순창고 역도장 앞에서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전북역도연맹]

현재 전북역도연맹 전무도 맡고 있는 아들 윤 코치는 "안방에서 열린 대회에서 아버지와 함께 3관왕을 만들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고 했다. 경북개발공사와 안양시청에서 선수 생활을 한 윤 코치는 2016년 역도부가 창단된 진안한방고에서 코치로 변신했다. 지난해 3월 용소중으로 옮긴 그는 지도자 입문 4년 만에 소년체전 3관왕을 만들었다.

하지만 아직 윤 코치에게 아버지는 '넘사벽(넘을 수 없는 사차원의 벽)'이자 지도자로서 본받아야 할 '역할 모델'이다. 그는 "초보 지도자이다 보니 연습 때는 (선수) 기록이 좋은데 막상 대회에 나가면 실수가 잦았다. 그때마다 아버지에게 조언을 구해 시행착오를 극복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아버지는 '잘될수록 고개를 숙이라'고 하신다"며 "아버지만큼은 안 되겠지만, 대한민국 역도 역사에 이름이 남을 만한 지도자가 되고 싶다"고 했다.

순창북중·순창고 윤상윤 감독과 그의 장남 전주용소중 윤범석 코치, 올해 소년체전 3관왕 순창북중 3학년 유동현군과 전주용소중 3학년 권민구군이 순창고 역도장에 나란히 섰다. [전북역도연맹]

순창북중·순창고 윤상윤 감독과 그의 장남 전주용소중 윤범석 코치, 올해 소년체전 3관왕 순창북중 3학년 유동현군과 전주용소중 3학년 권민구군이 순창고 역도장에 나란히 섰다. [전북역도연맹]

순창·전주=김준희 기자 kim.junhee@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