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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진 서울시무용단의 신작 '놋'...말이 필요 없어야 좋은 춤이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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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6호 면

서울시무용단 신작 '놋' [사진 서울시무용단]

서울시무용단 신작 '놋' [사진 서울시무용단]

[리뷰] 서울시무용단 신작 '놋' #5월 23~24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시대, 세대, 성, 이념...이 시대 불통의 조각을 우리 춤으로’. 서울시무용단의 신작 ‘놋’의 테마다. ‘놋’은 지난 1월 서울시무용단에 부임한 정혜진 단장이 선보이는 첫 작품이다. 서울예술단의 ‘윤동주 달을 쏘다’‘잃어버린 얼굴 1895’, 정동극장의 ‘궁:장녹수전’ 등에서 전통의 선을 살리면서도 빠른 춤사위로 현대적인 미장센을 만들어내는 특유의 스타일을 선보여온 안무가 정혜진이 직접 창작에 나선 만큼 무용계의 눈길이 쏠렸다.

그간 서울시무용단이 발레와의 콜라보(‘카르멘’), 셰익스피어와의 만남(‘로미오와 줄리엣’) 등 굵직한 기획을 하면서도 일관된 방향성을 보여주지 못했던 터라 더욱 그랬다. 사실 서울시무용단은 16개월간 단장이 없었다. 그간의 무대를 보며 ‘국공립 무용단체가 지금 추구해야 할 한국춤이란 어떤 것인가’라는 질문을 떨쳐낼 수 없었던 이유다. 선장이 키를 잡은 이번 무대에선 그 대답을 찾을 수 있을까.

서울시무용단 신작 '놋' [사진 서울시무용단]

서울시무용단 신작 '놋' [사진 서울시무용단]

우선 옛날 이야기에 기대던 기존의 대극장 스타일을 벗고 우리 사회상에 확대경을 댄 것이 새로운 변화다. 정혜진 단장이 “이 시대의 이야기를 한국적 창작춤으로 이야기하고자 한다”고 밝혔듯, ‘불통의 조각’이라는 신작의 테마부터 서울시무용단이 동시대적인 주제의식으로 관객과 소통해 나가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하지만 너무 많은 것을 담으려는 욕심이 앞섰달까.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를 제외하고 총 13장에 이르는 장면에 다양한 의상과 소품, 수직 수평으로 움직이는 세트까지 무대를 꽉꽉 채웠다. ‘놋’이라는 제목도 중의적이다. ‘거기 아무도 없어요(N.O.T-No One There)?’라는 소통부재의 의미이자 제주방언에서 얼굴을 의미하는 ‘낯(面)’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장황한 부연설명을 더했지만 오히려 알쏭달쏭하다.

서울시무용단 신작 '놋' [사진 서울시무용단]

서울시무용단 신작 '놋' [사진 서울시무용단]

무대를 열고 닫는 건 어린 소녀인데, 알고 보면 소녀는 할머니다. 알츠하이머에 걸린 할머니가 가족의 무관심 속에 70년전 소녀시절로 돌아가 한국전쟁 때 잃어버린 아빠를 찾아나서는 컨셉이다. 소녀가 된 할머니가 군중 속에서 아빠를 찾아 헤매고, 가족들도 집나간 할머니를 찾아 헤매며 현대인의 삶의 다양한 면면을 맞닥뜨리는 구도는 ‘소녀=할머니’라는 정보가 없다면 직관적이지 않다. 노인 또는 소녀인 주인공이 아빠를 찾아 헤매는 시선에 미투와 갑질을 비롯해 우리 사회의 세대, 남녀, 노사, 이념 등 온갖 갈등이 복잡하게 투영된다.

무용극의 ‘스토리’와 현대무용의 ‘개념’을 모두 잡으려다보니 의미적으로는 소화불량 상태가 됐다. 하지만 스토리와 개념을 모두 떨쳐내고 한국춤의 매력에 집중한 몇몇 장면의 안무적 성과는 괄목할 만 했다. 삼고무와 오고무의 스펙터클을 북 하나 없이 음향과 동작만으로 고스란히 살린 ‘에어 북춤’의 에너지, 승무 고깔을 현대화한 의상을 걸친 장엄한 군무엔 감탄이 터져나왔고, 세대 갈등을 유머와 위트 넘치는 춤사위로 표현한 두 남자의 듀엣도 맛깔스러웠다.

서울시무용단 신작 '놋' [사진 서울시무용단]

서울시무용단 신작 '놋' [사진 서울시무용단]

수십명의 단원을 거느린 공공 무용단체의 무대에서 보고 싶었던 것은 바로 이런 장면들이 아니었을까. 군무의 스펙터클과 단원들의 일치된 호흡, 오랜 기간 숙련된 고난도 기량으로 빚어내는 최고 수준의 예술 말이다. 80분간의 휘몰아침이 잦아드니, 소통 부재와 사회적 갈등이라는 개념도, 70년의 세월을 넘나드는 어떤 개인의 사연도 남지 않았다. 춤 그 자체가 만들어낸 최고의 순간들만 남았다. 말이 필요 없어야 춤이다.

유주현 기자 yjj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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