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즐겨읽기] 발가벗은 록의 대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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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내 기타는 잠들지 않는다

신중현 지음, 해토, 256쪽, 9500원

"아버지는 이발사, 어머니는 미용사였다. 그 시절에는 미용사나 이발사 면허를 따기가 무척 힘들었다고 한다. 부모님은 4층짜리 큰 건물을 소유할 정도로 여유로왔다. 나는 그 시절 유치원에 다니며 부잣집 아들의 풍족함을 실컷 누렸다. 제일 좋아하는 놀잇감은 커다란 축음기였다. 태엽이 네 개 달려 있던 놈이었다."

짧게 쳐 올린 스포츠형 머리, 허름한 청바지와 티셔츠. 언젠가부터 신중현(68)씨는 나이를 잊은 듯 보였다. 외모만큼, 아니 외모보다 더 늙지 않는 건 그의 마음이다. 감투와 돈에 연연 하지 않고, 외곬으로 기타를 퉁기는 건 흡사 구도자를 연상시킨다. 나이가 들수록 그의 욕심은 음악에만 쏠려 있는 듯 하다.

이 책은 '한국 록의 대부' 신중현의 자서전이다. 올 초 본지 '남기고 싶은 이야기들'에 연재된 내용을 엮어 책을 냈다. 자서전 하면 으레 볼 수 있는 개인에 대한 낯 간지러운 찬양이 여기엔 없다. 오히려 구질구질하고 때론 기억하기 싫은 상처들이 아무런 가감 없이 적나라하게 적혀 있다. 환각 상태에 빠진 채 무대에 섰던 일도, 낯선 여인과 동거에 들어간 뒤 돈을 뜯긴 일화도 소개된다. 그만큼 그는 자신의 음악만큼이나 삶에서도 솔직하다. 책을 집으면 한번에 쭉 읽게 되는 건 이 때문이다.

무엇보다 이 책의 미덕은 단순히 신중현 개인의 인생을 담았기 때문이 아니다. "대중음악을 연구하기 위해서는 그 시절을 살아온 당사자의 증언과 고백을 모아 사실과 흐름을 재구성하는 일이 유일한 방법"이라는 대중음악평론가 임진모씨의 말처럼 책은 해방 이후 한국 대중 문화의 현장이 꿈틀거리듯 생생히 기록돼 있다. 아니, 대중문화를 넘어 이 책을 읽다 보면 1960년대 미 8군 무대가 우리 대중문화에 끼친 영향, 70년대 청년 문화의 낭만성, 80년대 군부 독재, 90년대 개인주의 등 도도히 흐르는 역사와 우리네 평범한 일상이 떨어질 수 없었음을 새삼 깨닫게 된다. 신중현을 읽는다는 건 바로 굴곡과 정열로 뒤엉킨 한국의 반세기를 되짚어 보는 것과 동의어인 셈이다.

최민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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