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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계 바꿔줄게, 이사비 대줄게” 단속 비웃는 재개발 수주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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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5면

2017년 11월 서울시 용산구의 한남3구역 재개발 사업장 전경. [연합뉴스]

2017년 11월 서울시 용산구의 한남3구역 재개발 사업장 전경. [연합뉴스]

“어제 대형건설사 5곳의 책임자를 다 불러서 ‘제발 불법 홍보 하지 말라’고 경고했어요.”

강북 최대 재개발 한남3구역 #건설업체들 '개별홍보' 극성 #금지된 '이사비 제안' 여전 #국토부 "제도개선·단속 강화"

지난 16일 서울시 용산구의 한남3구역 재개발(이하 한남3) 조합 사무실에서 만난 조합 관계자의 말이다. 최근 한남3의 시공권을 따내려는 대형건설사 관계자들이 몰래 조합원 집을 찾아다니며 ‘개별 홍보’를 하는 바람에 조합 집행부가 골치를 앓고 있다는 이야기다. 그는 “유독 심한 A사에는 ‘한 달간 조합 사무실에 들어오지 말라’고 했다”고 말했다.

현행 정비사업 계약업무 처리기준에 따르면 건설사의 개별 홍보(가구별 방문, 홍보관·쉼터 설치, 홍보 책자 배부, 인터넷 홍보 등)는 금지된다. 개별홍보를 허용하면 수주 경쟁이 과열되고 금품 로비 등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일부 건설사는 “현재 한남3은 시공권 입찰을 하기 전이라서 개별 홍보를 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국토교통부는 “법을 잘못 해석하는 것”이라며 “시기가 어떻든 개별 홍보는 무조건 금지된다”고 설명한다.

한남3 조합원들의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개별 홍보 경험 사례가 잇따라 올라오고 있다. 용산구청에도 민원이 이어지는 중이다.

서울 강북 지역의 재개발 최대어로 꼽히는 한남3(예상 시공비 1조5000억원)은 지난 3월 말 사업시행인가를 받으며 본궤도에 올랐다. 다음 단계인 시공사 선정을 앞두고 대형건설사 간 수주전이 본격화하면서 개별 홍보 문제가 불거진 것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건설사들은 국내 건설시장이 침체하는 상황에서 한남3을 수주하면 단번에 2조원 가까운 수주고를 올리는 것과 더불어 추후 인근 사업장 수주전에서도 유리한 고지를 선점할 수 있어 무리하게 불법 홍보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가 2017년 말부터 고질적인 정비사업(재건축·재개발) 비리를 근절하기 위해 대대적으로 제도 개선과 단속을 진행하고 있지만, 건설사들의 불법 행위는 여전하다. 특히 가장 큰 '파이'인 시공권을 둘러싸고 잡음이 크다.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문제는 개별 홍보뿐만이 아니다. 지난달 서울 성북구의 장위6구역 재개발 사업장에선 대형건설사 B사가 조합원들에게 불법으로 규정된 이사비 지원을 약속해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실제 B사의 사업제안서를 보면 “가구당 이사비 2000만원을 무이자 대여하겠다”고 쓰여 있다.

‘플러스 아이디어’ 등 신종 불법 행위도 잇따른다. 플러스 아이디어란, 수백 페이지에 달하는 시공 제안서에 슬쩍 비현실적인 내용을 끼워 넣는 행위다. 가령 특별한 설명 없이 “동 수를 줄이고 층수를 늘리겠다”는 식이다. 설계를 바꾸려면 새롭게 인허가를 받아야 하고 추가 비용이 들어가지만, 일부 건설사는 이를 명확히 밝히지 않은 채 손쉽게 설계를 바꿀 수 있는 것처럼 제시하는 것이다.

국토부는 “대안 설계를 제시하려면 시공 내역(설계도서·공사비 명세서·물량산출 근거·시공방법·자재사용서 등)을 포함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플러스 아이디어로 몸살을 앓은 대표적 사업장은 서울시 강서구의 등촌1구역 재개발과 제주도의 이도주공1단지 재건축 등이다.

정부는 제도 개선과 단속을 더욱 강화하겠다는 방침이다. 이재평 국토부 주택정비과장은 “불법 행위를 금지하는 조항을 지금보다 명확히 하고 벌칙 조항을 강화하는 등의 법령 개선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정비사업 비리 전문가인 김상윤 저스티스파트너스 대표(전직 검찰 수사관)는 “점검도 강화해야 하는데, 기존처럼 소수 국토부 공무원 중심의 점검으로는 한계가 있다”며 “지방자치단체와 외부 전문가가 주축이 돼 더 적극적으로 점검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민중 기자 kim.minjoo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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