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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에서도 벌어진 페미니즘 갈등…관악구 A고에선 무슨 일이

중앙일보

입력

서울의 한 고등학교에서 '성평화'를 추구하는 동아리가 해체될 상황에 놓이며 갈등을 겪고 있다. [사진 픽사베이]

서울의 한 고등학교에서 '성평화'를 추구하는 동아리가 해체될 상황에 놓이며 갈등을 겪고 있다. [사진 픽사베이]

서울 관악구의 한 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이 성(性)평등이 아닌 '성평화'를 추구하는 동아리를 만들었지만 지도교사가 없어 해체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성평화는 기존 페미니즘에서 주장하는 성평등은 한계가 있다는 주장이다.

지난 3월 이 고등학교에 다니는 3학년 A군은 학생 자율동아리를 만들기 위해 한국성평화연대의 도움을 받아 홍보를 시작했다. 한국성평화연대는 남녀의 무조건적 성평등을 추구하는 것은 남녀 갈등을 해결할 수 없기 때문에 각자의 차이를 존중하며 조화를 이루는 성평화를 지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전 학년에 홍보한 끝에 남학생 3명과 여학생 3명을 모은 A군은 성평화 동아리를 만든 뒤 활동을 시작했다. 매달 모여 토론하고 '남성성과 여성성' '가부장제도와 가분담제도' 등에 대한 칼럼도 작성했다.

'성평등' 아닌 '성평화' 주장

하지만 4월쯤 이들이 쓴 칼럼이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라가며 성차별 논란이 일자 동아리 활동에 제동이 걸렸다. 논란이 커지자 서울시교육청은 5월10일 공문을 내려보내 실태 파악에 나섰다.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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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교육청 확인 결과, 지도교사를 맡았던 B교사는 3~4월 동아리에서 활동한 내용을 본 뒤 학생들이 주장하는 '성평화' 담론과 양성평등의 개념이 자기 생각과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B교사가 학생들이 토의·토론한 내용을 보니 '가분담제'라는 말을 쓰는 등 전통적 가부장제를 옹호하거나 여성 모성애 강조하는 등 기존 생각했던 성 평등의 가치와 맞지 않는다고 판단했다는 의견을 전했다"고 말했다.

가분담제란 바깥 노동에 남성이 투입되고, 육아와 가사를 여성이 맡는 역할 분담은 생물학적 요인과 사회적 배경에 기반을 둔 효율적인 분담 방식이었다는 주장으로 여성이 가부장제의 피해자라는 논리와 상반된다.

A군은 서울시교육청이 실태를 파악하는 과정에서 "학교 측이 학생들의 의견을 구하지 않고 자의적 해석으로 우리를 양성평등을 해치는 집단으로 낙인 찍었다"며 반발했다.

지도교사 없어 해체 위기 

학생들은 5월 중간고사가 끝난 뒤 B교사와 두 차례 대화를 나눴지만 입장 차이를 좁히지 못했고 결국 B교사가 지도교사를 그만두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교육부 지침에 따르면 학생 자율동아리는 지도교사가 없이는 운영할 수 없다. 이에 학생들은 다른 교사에게 이 역할을 부탁했지만, 아직 지도교사를 구하지 못해 해체 위기에 놓여있는 상태다.

새로운 지도교사를 구하는 사안에 대해서도 학생과 학교 측의 의견이 갈렸다. A군은 B교사가 지도교사를 그만둔 후 다른 사회 과목 교사에게 지도교사를 부탁했고, 그 역시 맡기로 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B교사가 새로 지도교사를 맡아주기로 했던 교사에게 동아리에 대해 부정적인 내용을 전했고, 이후 새 지도교사가 '못 맡겠다'고 했다"고 말했다.

학생들은 "성평화 동아리는 죽었다"며 지난 18일 서울 낙성대역 2번 출구 앞에서 "성평화 추모집회"를 열며 동아리 존속을 위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학교 관계자는 학생들이 지도교사를 부탁했을 때 "다른 교사가 '생각해보겠다'는 취지로 말을 한 것을 오해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지도교사가 없다면 자율동아리를 운영할 수 없기 때문에 학교 측에서 도와줄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하고 있다"며 "아직 동아리 폐쇄가 결정된 것은 아니다"고 덧붙였다.

이태윤 기자 lee.tae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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