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남자분, 빨리 나오시라고요" 대림동 여경, 더 커지는 논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난 13일 서울 구로동 일대에서 술 취한 피의자를 검거하는 여성 경찰관 모습. [사진 구로경찰서]

지난 13일 서울 구로동 일대에서 술 취한 피의자를 검거하는 여성 경찰관 모습. [사진 구로경찰서]

경찰이 인터넷상에서 논란이 불거진 '대림동 여경' 영상 전체(1분59초)를 공개했지만 경찰에 대한 비판은 오히려 더 가중되는 양상이다. 영상에 찍힌 사건은 지난 13일 서울 구로구 구로동 인근 술집에서 중국동포 50대 남성 A씨와 40대 남성 B씨가 만취해 소란을 피운 사건으로, 남성과 여성 경찰관 두 명이 출동해 체포하는 과정이 담겨 있다. 앞서 공개된 편집된 짧은 영상에서는 여성 경찰관이 피의자를 제대로 제압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논란이 됐다.

이번에 전체 공개된 영상에서는 여성 경찰관이 일반 남성시민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부분이 화근이 됐다. 공개된 영상에서 여성 경찰관은 술에 취해 난동을 부리는 피의자를 제압하며 일반 시민에게 "남자 분, 나오시라고요. 빨리 빨리"라며 도움을 구했고, "(수갑을)채워요?"라는 질문에 "네" 라고 말했다.

온라인 상에서는 일반 시민에게 명령조로 도움을 요청한 것을 두고 해당 여성 경찰관을 향한 비판이 커지고 있다. 이에 대해 경찰 측은 "동영상은 식당 여주인이 촬영한 것이고, 그 옆에 남주인이 같이 있어 여성 경찰관이 도움을 청한 것"이라며 "마침 근무 중이던 교통순찰차 직원이 상황을 보고 내려서 "(수갑) 채워요?"라고 물었고, 교통직원과 여경이 함께 수갑을 채웠다"고 설명했다. 또 동영상 안에서 "(수갑) 채우세요"라고 외친 사람은 영상을 촬영한 식당 여주인이라고 밝혔다.

"상황 따라 시민 협조 구할 수 있어" 

전문가들은 다급한 상황에서 시민의 협조는 받을 수 있다고 밝혔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현행범의 경우 민간 경비원 등 일반 시민이 현장에서 일단 범인을 제압해 경찰관에게 인계할 수 있다"며 "큰 틀에서 볼 때 경찰관이 필요하고 가능하다고 판단한 경우 시민 협조를 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장철영 대경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도 "경찰관이 혼자 무리하게 사건을 해결하려다가 피의자가 도주하면 제2, 제3의 피해자가 양산될 수도 있다"며 "필요시 시민들로 구성된 지역사회 경찰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도 있도록 하고 있다"고 밝혔다.

서울의 한 현직 경찰관도 "피의자 체포 과정에서 시민들에게 '도주로를 막아달라'고 요청할 수도 있고, 혼자 힘으로 제압할 수 없을 때 시민들에게 '잡아달라'고 부탁하기도 한다"며 "다급한 상황이었던 만큼 경찰관 입장에서는 의미를 더 분명하게 전달하기 위해 다소 명령조의 말투를 썼을 것"이라고 말했다.

"수갑 사용은 경찰관에게만 부여된 권한" 

하지만 동영상을 통해 온라인 상에서는 '수갑까지 시민이 채우도록 요청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경찰 측은 "여성 경찰관이 수갑을 채우라고 시민에게 지시한 적 없고, 최종적으로는 출동한 교통경찰과 여성 경찰관이 함께 수갑을 채웠다"고 해명했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장비·장구 사용은 전문가인 경찰관에게 부여된 권한"이라며 "수갑을 제때 채우지 못한다는 것은 장비·장구 사용 능력이 부족하다는 것인데, 시민이 이 부분을 도와줬다면 경찰관의 전문성에 흠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직 경찰관 역시 "수갑까지 일반 시민에게 채우도록 지시했다면 잘못된 일"이라며 "보통 현장에서 시민 도움을 받아 제압할 수는 있어도 수갑 등의 장비는 경찰관만이 사용한다"고 밝혔다.

'여성 경찰관 무용론' 논란까지 

논란은 결국 경찰관의 성별에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 '여성 경찰관이라 힘이 약하다', '피의자 하나 제압 못 하는 여성 경찰관이 왜 필요하느냐'는 등의 비판이다. 하태경 바른미래당 최고위원은 19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여경 불신을 해소하려면 부실 체력검사 기준부터 바꿔야 한다"며 "최근 대림동 여경 논란이 여경 무용론으로 확산되는 것은 여경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기저에 깔려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여러 의견이 있을 수 있지만 이번 논란이 '여성 혐오, 여성 경찰관 무용론'으로 가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장철영 교수는 "여성·청소년 사건 등 남성 경찰관에 비해 여성 경찰관이 맡기에 더 적합한 사건들이 늘어나고 있다"며 "기존에 형사과나 수사과, 지구대 등 남성 경찰관의 영역이라고만 치부했던 곳에서도 능력을 발휘하는 여성들이 많다"고 말했다. 곽대경 교수도 "평균으로 놓고 봤을 때 남녀 경찰관 사이 신체적 차이는 인정해야겠지만 많은 여성 경찰관들이 수사, 형사 분야에 도전하고 있고 그 노력과 성과를 인정받고 있다"며 "점차 여성 경찰관들의 역할이 확대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경찰관 스스로가 현장 출동 시 전문성을 더 갖추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웅혁 교수는 "경찰관이 꼭 물리력을 행사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기 때문에 대화의 기술이나 갈등 조정 능력 등 21세기 경찰 활동에 필요한 자질들을 갖추도록 노력해야 한다"며 "경찰 조직적으로도 현장 출동에 대해 좀 더 꼼꼼히 교육하고, 현장보다 내근직을 선호하는 내부 분위기 등을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후연 기자 lee.hooyeon@joongang.co.kr

◇수정:5월19일 오후 3시40분
애초 기사에는 출동한 여성 경찰관이 시민에게 “(수갑)채우세요”라고 외쳤다고 보도했지만, 경찰청 확인 결과 영상을 촬영한 식당 여주인이 외친 것이고 “채워요?”라고 물은 것은 시민이 아니라 교통순찰직원이어서 수정했습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