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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계속하면 죽을 것 같아 사표 냈다, 그런데 왜 더 힘들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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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강명주의 비긴어게인(6)

많이 지쳐 보이는 직장인이 이제 명퇴를 하겠다며 찾아왔다. 이제 좀 쉬고 싶다고 했다. [일러스트 강경남]

많이 지쳐 보이는 직장인이 이제 명퇴를 하겠다며 찾아왔다. 이제 좀 쉬고 싶다고 했다. [일러스트 강경남]

“이제 그만 두렵니다.”
명퇴를 앞두고 던진 말이다. 많이 지친 모습으로 찾아왔다. 퇴직할 것인가 말 것인가 하는 고민이 아니었다. 30년 넘게 열심히 일한 직장이었다. 여한 없이 최선을 다했다고 한다. 탁월한 영업력으로 여러 차례 최우수영업점장 표창도 받았다. 늘 최고의 성과를 올리면서 치열하게 살아왔다. 이번에 명퇴 조건도 좋아 미련 없이 그만두겠다고 한다. 이제 좀 쉬고 싶다고 한다.

문득 나의 지난 모습이 떠올랐다. 일과 함께 일을 위해 일만을 생각하며 살아온 세월 속에 점점 나 자신의 모습을 잃어가고 있었다. 일할 시간이 적은 것이 안타까웠다. 시간은 분 단위로 쪼개서 일했다. 매사가 급할 수밖에 없었다. 성격도 다급해지고 여유라는 단어는 이미 사라진 지 오래였다.

조금이라도 늦어지면 곧 세상이 끝나는 것처럼 안절부절못했다. 한 치의 실수도 없이 뭐든지 완벽하게 해내려고 했다. 더 좋은 성과를 내려고 끊임없이 노력했다. 잠도 편히 자보질 못했다. 꿈속에서도 일했다. 편두통은 매일 나를 괴롭혔다. 목 디스크로 병원 신세도 여러 번 졌다. 속 쓰림은 일상화가 되었다. 반드시 해내야 한다는 책임감으로 무장한채 휴가도 즐기지 못했다.

그러다 문득 ‘나 이러다 죽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현직 마지막 무렵 새롭게 주어지는 업무는 내 목을 휘감는 듯했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가 쓰러졌다. 브레이크 없이 질주하는 나를 멈추게 했다. 다른 취업 기회도 접어둔채 엄마 병간호에 매달렸다. 덕분에 나는 퇴직했다. 병이 회복된 엄마는 내가 당신을 살렸다고 하지만, 실은 엄마가 나를 다시 살렸다.

이제 좀 쉬고 싶다는 말에 크게 공감했지만, 한편으로 걱정이 되었다. 열심히 일 한 사람일수록 그리 오래 쉬지를 못한다. 회사를 그만둘 때 다들 지긋지긋한 일에서 벗어나 이제 좀 쉬겠다고, 그동안 해보지 못했던 일들을 해보겠다고 한다. 대부분 제일 먼저 여행을 떠난다. 취미 활동을 시작하지만, 이 또한 6개월을 넘기지 못한다.

직장을 떠나기 전에 생각해볼 것이 있다. 열심히 일한 사람일수록 무료함을 느껴 오래 쉬지 못한다는 점이다. 나 같은 경우에도 퇴직 후에도 엄마를 돌보는 '일'을 계속했다. [일러스트 강경남]

직장을 떠나기 전에 생각해볼 것이 있다. 열심히 일한 사람일수록 무료함을 느껴 오래 쉬지 못한다는 점이다. 나 같은 경우에도 퇴직 후에도 엄마를 돌보는 '일'을 계속했다. [일러스트 강경남]

나도 따지고 보면 퇴직 후에도 일을 계속했다. 직장이 회사에서 집으로 바뀐 것뿐이다. 집이 바로 직장이고, 집에서 직장생활을 한 것이다. 거기에 엄마 병간호라는 일을 더 했다. 그동안 나는 철저하게 간병인, 그리고 집안일을 도맡아 하는 엄마와 아내 역할을 충실히 했다. 엄마가 병상에서 일상생활로 돌아오자 그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것은 일에 대한 보람이었고, 그 보람에서 주는 행복을 누린 것이다.

지금은 지인의 추천으로 인재개발원에서 취업을 준비하는 학생들과 퇴직을 준비하는 직장인들을 위한 일을 하고 있다. 많은 학생과 직장인들을 만나 경험과 그동안 깨달은 지혜를 나누고 있다. 예전과 달리 행복을 느끼며 감사하면서 즐겁게 해가고 있다. 얼굴이 환해졌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아마도 일을 하기 때문일 것이다.

향후 미래 계획이 있는지를 물어봤다. 아직 계획은 없었다. 쉬면서 본인을 돌이켜보며 본인만의 시간을 가져보겠다고 했다. 그동안 못해본 일도 해 보겠다고 했다. 역시 대부분이 그러하듯 이분 또한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몇 달 후 연락이 왔다.

“바쁠 때 여행이지, 쉬니까 고행입니다. 여행도 한두 번이죠. 오히려 여행하면서 나 자신이 괴로워집니다. 무료해요. 계속 일하면 죽을 것 같아 그만뒀더니, 지금이 더 힘듭니다. 돈 더 받고 잘 그만둔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할 일이 없으니 저 자신이 바보가 된 기분입니다. 전에 그리 잘 나갔는데…….”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라는 문구에 현혹되기 전에 내게 반드시 묻고 답할 부분이 있다. 쉬고 싶은 이유, 쉬고 난 후에 할 것, 하고 싶은 것에 대한 준비 정도와 경제적 여유, 보람을 찾을 부분에 답할 수 있어야 한다. [일러스트 강경남]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라는 문구에 현혹되기 전에 내게 반드시 묻고 답할 부분이 있다. 쉬고 싶은 이유, 쉬고 난 후에 할 것, 하고 싶은 것에 대한 준비 정도와 경제적 여유, 보람을 찾을 부분에 답할 수 있어야 한다. [일러스트 강경남]

‘내 일’이 있어야 ‘내일’이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여성이 오래 사는 이유가 남성보다 일을 계속해서 하기 때문이라는 보도도 있다. 그렇게 하기 싫은 일이고 일 때문에 죽을 것 같아도, 지나고 보면 일은 나를 살게 하는 이유가 된다. 물론 사람마다 어떤 일을 하느냐가 중요하겠지만, 결국 일이다.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는 광고 문구가 있다. 이 말에 현혹돼서는 안 된다. 쉬고 싶어 떠나기 전에, 사표 던지기 전에 반드시 아래 질문을 본인에게 묻고 또 물어봐야 한다.

1. 왜 쉬고 싶은지
2. 쉬고 난 후에 무엇을 할 것인지
3. 그것에 대한 준비가 되어 있는지
4. 준비가 안 되었다면 계속 쉴 만큼 경제적 여유가 있는지
5. 하는 일 없이 어디에서 보람을 찾을 것인지

열심히 일한 사람일수록 일에서 보람과 행복을 느낀다. 그래서 더 열심히 일한다. 경제적 여유가 있어도 할 일이 없으면 불행해 한다. 자연인으로 돌아가 살겠다는 사람도 요즈음 많아졌다. 퇴직한 사람들이 선택하는 길 중의 하나가 됐다. 결국 자연 속의 일을 찾아 떠나는 것이다. 이 또한 준비 없이 해내기 힘들다. 얼마 버티지 못하고 돌아오는 이들이 태반이다.

다행히 영업력이 뛰어난 금융인은 재취업도 가능하다. 중소기업에서는 영업력과 자금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금융을 잘 알고 거기에 영업력까지 갖추면 그 경험이 필요한 중소기업이 손을 내민다. 하지만 화려한 경력의 금융인일수록 예전 같은 대우와 환경 속에서 일하고 싶어한다. 퇴직하는 순간 그런 곳은 없다. 새롭게 신입의 자세로 시작한다면 거기에서 새로운 보람을 느끼며 일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강명주 WAA인재개발원 대표원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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