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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레나DJ 등 ‘해피벌룬’ 상습 흡입자 적발

중앙일보

입력

김모(34)씨는 2017년 베트남의 한 클럽에서 환각물질인 해피벌룬이 유행하는 것을 본 뒤 '한국에서 유통하면 돈이 되겠다'고 생각했다. 김씨는 한국으로 돌아와 '○○유통' 등의 이름으로 정식 사업자등록을 하고 휘핑크림 제조 명목으로 해외 아산화질소 수입업체에서 아산화질소 캡슐을 대규모로 수입했다.

10대도 구입·흡입…혼자 3만캡슐 흡입한 여성도 #마약 극대화 효과, 불법화 이후엔 주로 주택가서 유통

김씨가 흡입자를 물색하는 방법은 간단했다. 강남의 유명 클럽 MD(영업사원)나 유흥업소 마담에게 접근해 고객 명단을 받은 것이다. 김씨는 이들에게 "아산화질소를 휘핑크림 제조 외 목적으로 사용하면 처벌받을 수 있다"는 일종의 '낚시문자'를 발송했다. 이후 문의 전화가 오면 이들을 대상으로 아산화질소를 판매했다. 주로 직접 배달하거나 택시를 이용해 전달하는 방법을 썼다.

김씨는 아산화질소 캡슐(약 8g)을 1개당 약 300원에 수입해 개당 600~800원에 판매했다. 주로 한 번에 100개 단위(8만~10만원)로 팔았다. 수입이 짭짤해지자 김씨는 지인 등 12명을 끌어들여 총 6개의 사업체를 설립해 해피벌룬 유통을 확대했다. 김씨는 이같은 방식으로 지난 2017년 8월부터 2019년 3월까지 총 25억원 규모의 거래를 통해 약 13억원의 부당이득을 챙겼다. 이들은 이 돈으로 고급 외제차를 사거나 해외여행을 다니는 등 호화생활을 누렸다.

서울지방경찰청은 강남 일대 주택가에서 해피벌룬을 불법으로 판매한 혐의(화학물질관리법 위반)로 김씨 등 유통업자 12명과 이를 구입해 상습흡입한 83명 등 95명을 검거했다고 17일 밝혔다. 김씨 등 핵심유통업자 3명은 구속됐다. 이는 2017년 화학물질관리법 개정으로 아산화질소 흡입이 불법으로 규정된 뒤 최대 규모다.

서울지방경찰청이 강남 주택가에서 25억 규모의 해피벌룬을 유통한 김모(34)씨 일당으로부터 압수한 증거물. 사진=김다영 기자

서울지방경찰청이 강남 주택가에서 25억 규모의 해피벌룬을 유통한 김모(34)씨 일당으로부터 압수한 증거물. 사진=김다영 기자

김씨로부터 아산화질소를 사들인 흡입자 가운데는 강남 최대규모 클럽이었던 ‘아레나’의 DJ 장모(29)씨도 포함돼 있었다. 장씨는 20회에 걸쳐 아산화질소를 구매해 흡입했다. 검거자 가운데는 고등학교를 막 졸업한 뒤 클럽에서 해피벌룬을 구매해 흡입한 10대도 있었다.

또 유흥업소 종사자 박모(24·여)씨는 2018년 11월부터 2019년 4월까지 204회(1990만원 상당)에 걸쳐 아산화질소를 구입했다. 캡슐 수로 따지면 3만2300여개를 혼자 흡입했다. 특히 박씨는 아산화질소 상습흡입으로 인한 순환·호흡계 이상 증상(길랭-바레 증후군)이 나타나 4개월동안 요양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아야 할 만큼 심각한 후유증에 시달렸다.

박씨가 경험한 ‘길랭-바레 증후군’은 대표적인 해피벌룬 부작용이다. 중추신경의 마비로 척수가 손상돼 근력이 약해지고 걸음걸이가 부자연스러워진다. 경찰 관계자도 "해피벌룬 상습흡입 조사자 83명 중 4명이 길랭-바레 증후군 관련 진단서를 냈으며, 조사를 받으러 경찰서에 온 20~30대의 젊은이들 대부분이 뒤뚱뒤뚱한 걸음걸이에 어눌한 말투를 보이는 등 해피벌룬이 신경계통에 해악을 미친다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고 말했다.

경찰에 따르면 2017년 8월 1일 이후 아산화질소가 환각 물질로 규정되면서 흡입 양태가 달라졌다. 경찰 관계자는 "불법화 이전에는 클럽이나 유흥업소에 가면 해피벌룬을 하는 사람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며 "그러나 최근에는 마약과 같이 집에서 몰래 흡입하면서 주택가에 직접 배달해주는 형태로 유통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서울경찰청은 김씨로부터 아산화질소를 구입한 흡입자 약 50여명의 명단을 추가로 확보하고 이들에 대한 수사를 확대할 예정이다.

김다영 기자 kim.dayou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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