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을 한국 불우이웃 곁에 … 캐나다인 '천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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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강원도민이 돼 영광이지만 상당히 쑥스러운 것도 사실입니다."

캐나다 출신으로 한 평생 소외된 한국인을 위해 헌신해 온 파란 눈의 서미혜(68.마거릿 진 스토리)씨가 명예 강원도민이 된다. 서씨는 7일 춘천문화예술회관에서 열리는 '강원도민의 날' 행사에서 명예 강원도민증을 받는다. 30년 넘게 나환자와 장애인을 돌보는 등 강원도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서다.

강원도 원주시 장애인복지관 관장을 맡고 있는 서씨가 한국과 인연을 맺은 것은 그의 나이 스물한 살 때로 대학(매니토바)을 졸업한 직후인 1960년이다.

캐나다 선교사협회 소속 선교사로 한국땅을 처음 밟은 서씨는 '더 큰 봉사'를 하기로 마음먹고 63년 본국으로 돌아가 간호학을 공부했다. 서씨는 다시 한국땅을 밟은 뒤 광주기독병원에서 결핵환자를 돌보며 지역간호사업을 펼쳤다.

원주기독병원에서 초청을 받은 서씨는 74년 근무처를 원주로 옮기고 경천원 등 지역 나환자촌을 돌면서 봉사활동을 벌였다.

서씨가 장애인 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은 81년. 오랫동안 알고 지내던 나환자의 딸 한 명이 학교에 가야 하는데 뇌성마비 장애인이란 이유로 아무 곳에서도 입학을 허가하지 않자 직접 가르치기로 한 것이다.

이 같은 사실이 알려지면서 장애인 세 명이 그를 찾아왔다. 이에 서씨는 배우고자 하는 장애인을 모집한다는 신문광고를 내고 10명의 학생으로 아예 원주기독병원 부설 장애인재활학교를 설립한다. 85년에는 학생들의 자립을 위해 교내에 간단한 작업장을 마련했고, 89년에는 장애인 공동 거주 시설까지 조성했다.

이 같은 시설이 요즘엔 보편화됐지만 당시에는 생소한 것으로, 그녀는 한국 장애인을 위한 새로운 개념의 장애인 복지시설을 개척하는 데 큰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서씨는 "30년 전만 해도 사람들이 장애인을 같은 시민으로 인정하지 않아 봉사활동조차 힘들었다"며 "이제는 복지관 등에서 봉사하는 시민이 점차 늘고 있어 너무 기쁘다"고 말했다.

서씨는 장애인을 돌보면서 틈틈이 공부를 계속, 연세대에서 간호학 석사(74)와 이학박사(84)를 받고 88년부터 2004년까지 연세대 간호대학 교수도 지냈다.

처음부터 안 하려고 한 것은 아니지만 어쩌다보니 결혼을 못했다는 서씨는 광주에 근무할 때 홀트아동복지회를 통해 장애아 2명을 딸로 입양했다.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 키웠던 이들은 현재 미국과 캐나다에 각각 살고 있다.

서씨는 "내가 선택한 일을 했을 뿐인데 주변의 칭찬이 쑥스럽다"며 "지금 하고 있는 일을 계속하라는 격려로 받아들이겠다"고 말했다.

이찬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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