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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자 잡겠다는데 "안된다"···美도시 '안면인식' 거부 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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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해 10월 31일 미국 아마존 본사 앞에서 시위대 중 한 명이 아마존의 안면인식 프로그램 '레코그니션'에 반대하는 의미로 얼굴을 하얗게 칠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지난 해 10월 31일 미국 아마존 본사 앞에서 시위대 중 한 명이 아마존의 안면인식 프로그램 '레코그니션'에 반대하는 의미로 얼굴을 하얗게 칠하고 있다. [AP=연합뉴스]

폐쇄회로(CC) TV 등에 찍힌 얼굴의 윤곽을 트래킹해 인물을 특정해내는 기술. 빅데이터 프로그램과 카메라 기능의 발달로 전 세계에서 범죄자 추적 등에 널리 쓰이는 안면인식(facial recognition) 기술이 미국에서 논란에 휩싸였다.

뉴욕타임스(NYT) 등 미국 언론들은 14일(현지시간) 미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시(市) 의회가 경찰 등 시 정부 기관이 행정 업무를 위해 안면인식 기술을 사용하는 것을 금지하는 조례안을 통과시켰다고 보도했다. 미 연방 정부는 물론 세계 각국이 안면인식 기술을 행정 시스템에 도입하고 있는 가운데, 의회 차원에서 제동을 건 첫 사례다.

조례안에 따르면 샌프란시스코시 정부는 앞으로 경찰 수사 등 행정 업무를 위해 안면인식 기술을 사용할 수 없다. 시 정부가 기존에 이용하고 있는 기타 감시 기술도 지속적으로 공개적인 감사를 받아야 한다.

조례안을 발의한 애런 페스킨 의원은 “샌프란시스코가 모든 기술(테크)의 중심이기에 ‘과도한 기술(the excesses of technology)’ 역시 통제해야 하는 막중한 책임을 갖고 있다”면서 “기술로 형성된 도시에서 나온 이번 메시지는 미국 전체에 전하는 바가 크다”고 말했다. 캘리포니아주 오클랜드와 매사추세츠주 서머빌 등에서도 비슷한 법안을 준비하고 있어 샌프란시스코시의 이번 조례가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고 미 언론들은 전했다.

미국 정부는 지난 해 6월 메릴랜드주 애나폴리스의 신문사 총격 사건 당시 범인을 특정하기 위해 안면인식 기술을 사용했다. 총기 난사와 같은 중범죄는 물론 경범죄 용의자 수색이나 공항이나 항구의 입출국자 통제에도 안면인식 기술이 광범위하게 쓰이고 있다. 미국 팝스타 테일러 스위프트는 공연에 입장하는 스토커를 차단하기 위해 안면인식 기술을 이용하기도 했다.

여성, 피부색 검은 사람은 오인 가능성 높아 

그러나 안면인식 기술이 과도한 사생활 침해와 인종 차별의 수단으로 쓰일 수 있다는 비판도 이어지고 있다. 미국시민자유연맹(ACLU) 북캘리포니아 지부 맷 케이글은 NYT에 “안면인식 기술은 정부로 하여금 사람들의 일상을 추적할 수 있는 전례 없는 권한을 갖게 했다”면서 “이는 건전한 민주주의와 양립할 수 없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지난 2월 13일 MIT 연구팀의 조이 부오라뮈니가 안면인식 프로그램이 특정 성별과 인종을 오인할 가능성이 높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하며 흰 가면을 들고 서 있다. [AP=연합뉴스]

지난 2월 13일 MIT 연구팀의 조이 부오라뮈니가 안면인식 프로그램이 특정 성별과 인종을 오인할 가능성이 높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하며 흰 가면을 들고 서 있다. [AP=연합뉴스]

자신이 안면인식 기술에 어느 정도 노출되고 있는 지를 사람들이 스스로 알 수 없다는 것도 문제로 꼽힌다. 조지타운대 연구에 따르면 미국인 성인의 50% 이상이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 이미 법 집행기관의 안면인식 데이터베이스에 올라 있다.

미 메사추세츠공과대(MIT) 연구팀은 지난 2월 아마존의 안면인식 기술 ‘레코그니션(Rekognition)’이 여성 혹은 피부색이 어두운 사람들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연구진의 테스트 결과 레코그니션은 여성의 19%를 남성으로 잘못 판단했고, 흑인 등 피부색이 어두운 여성의 경우에는 오인 확률이 31%에 이르렀다.

이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3월 인공지능(AI) 분야의 전문가 25명이 레코그니션이 경찰을 비롯한 사법 당국에 판매되는 것을 금지해 달라는 내용의 청원에 서명했다. 이들은 청원서에서 “사법당국이 레코그니션을 맹신해 무고한 사람을 체포하거나 유색인종, 이민자 등을 추적·통제하는데 활용할 가능성이 높다”며 “이는 인권과 직결된 문제”라고 주장했다.

4월에는 미국 뉴욕의 18세 소년이 애플스토어의 안면인식 소프트웨어가 자신을 절도범으로 오인해 고통을 겪었다며 애플에 10억 달러의 배상을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아직은 완벽하지 않은 기술이지만 이를 전면 금지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범죄예방단체인 ‘스톱 크라임 SF’는 샌프란시스코시의 이번 조치에 대해 “경찰이나 검사 등이 공공 이익을 위해 안면인식 기술을 사용하는 것은 금지의 예외로 둬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영희 기자 misquic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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