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대통령 "…" 미사일 해법 고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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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이 침묵하고 있다. 북한 미사일 발사 조짐이 보이기 시작한 5월 중순 이후 미사일과 관련한 말을 아끼고 있다. 정확히 말하면 침묵은 아니다. 미사일이 발사된 5일 오전에도 노 대통령은 직접 안보관계장관회의를 주재했다. 다만 회의 발언이 공개되지 않았다. 정태호 청와대 대변인은 "안보관계장관회의를 주재한 자체가 메시지"라고만 했다. 다른 관계자는 침묵도 대응의 일환이라고 했다.

이 침묵의 정체를 청와대 사람들은 "고뇌"라고 말한다. 청와대의 한 핵심관계자는 "그만큼 상황을 위중하게 보고 있다는 의미"라고 했다. 남.북, 한.미, 북.미, 한.일 관계 등을 위협하는 미사일 위기 앞에서 상황 타개를 위해 고뇌하고 있다고 했다.

노 대통령의 고뇌에는 뿌리가 있다. 바로 한반도와 동북아의 정세를 보는 시선이다.

미사일 위기 국면 이후 이 시선은 6월 16일 한 번 내보여졌다. 계룡대에서 열린 군 주요 지휘관회의 때였다. 노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미사일을 직접 언급하진 않았다. 하지만 한반도 상황을 보는 인식과 철학을 내보였다.

노 대통령은 당시 "대통령의 책임 중에 제일 무거운 건 국가를 보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 국민 중에 북한의 도발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나 저는 가능성이 있을 수 있다는 쪽에 서 있다"고 토로했다.

이런 위기감은 노 대통령의 정세관에서 비롯된다. 노 대통령은 "미.일.중.러 4개국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데 전통적으로 미.일 같은 해양세력이 한 편이고, 중.러와 같은 대륙세력이 한 편이 돼 한반도를 경계선으로 놓고 대립해 왔던 역사가 있다"며 "이 대립 전선이 존재하는 한 우리가 원치 않는 불안이 존재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동북아가 한.미.일, 북.중.러 이렇게 대치하는 상황이 되면 우리의 미래에 대단히 불안한 요소가 되므로 (이런) 분열적 상황을 가급적 극복해야 한다"고 진단했다. 남북관계를 잘못 관리하면 이 분열적 요소에 도화선이 될 수 있다고도 했다. 그래서 남북관계에서 고려할 우선순위를 첫째 안전, 둘째 평화, 셋째 통일이라고 꼽았다.

'북한에 더 많은 양보를 하려 한다'는 5월 9일의 몽골 발언, 북한 핵 문제와 미사일 문제 등의 해법으로 6자라는 다자(多者) 틀을 깨지 않으려는 정부의 대북 정책은 이런 상황 인식을 깔고 있다.

하지만 지금 노 대통령의 동북아 정세관은 위협받고 있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는 노 대통령이 국내외의 견제를 무릅쓰고 북한에 내민 손을 머쓱하게 했다. 노 대통령의 손을 외면하고 미국과의 치킨게임(어느 한쪽이 양보하지 않으면 양쪽 모두 파국으로 치닫는 극단적인 방식) 국면으로 몰고간 셈이다. 대북 관계에서의 지렛대 역할을 기대했던 중국도 북한에 뒤통수를 맞았다. 때맞춰 대북제재에 보조를 맞추고 있는 미.일은 노 대통령의 선택을 강요하고 있다.

북한 미사일 발사로 전개된 이런 상황은 정부의 운신 폭을 좁히고 있다. 그렇다고 미.일과 대북 제재에 보조를 맞출 순 없다. 청와대 관계자는 "노 대통령이 이 시점에서 어떻게 하면 상황을 잘 관리해 국가 안보에 위협적 요소를 걷어낼 수 있을지 매 순간 고심하고 있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이 6일 아침 부시 미국 대통령과 전화통화를 한 것도 이런 고뇌의 소산이다. 두 정상은 '한.미 양국이 긴밀히 협의해 외교 노력으로 해결해 나가자'는 데 뜻을 같이했다. 방미 중인 송민순 청와대 안보정책실장은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과 만나 6자회담의 틀 안에서 해법을 찾자는 데 합의했다. 사태에 대한 인식과 해법에서 일단은 한.미 공조의 끈을 조이는 모양새다.

하지만 상황은 아직 유동적이다. 북한이 미사일 추가 발사 등으로 긴장을 높일 경우 외교적 해결이라는 물꼬는 위협받을 수 있다. 노 대통령의 고뇌는 그래서 깊어지고 있다.

박승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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