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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후남의 영화몽상

타노스의 핑거스냅이 나오기까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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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이후남 기자 중앙일보 문화선임기자
이후남 대중문화팀장

이후남 대중문화팀장

지난해 개봉한 ‘어벤져스’ 3편의 결말은 충격이었다. 우주 최강의 힘을 얻은 악당 타노스의 핑거스냅, 즉 손가락을 튕기는 동작 한 번에 세상의 절반이 사라진다. 지금껏 활약해온 수퍼 히어로들도 마찬가지. 속편을 앞두고 대담하게도 주인공의 절반쯤을 없애버린 것이다.

지난달 개봉한 4편 ‘어벤져스:엔드게임’은 그 뒷감당에 그치지 않았다. 2008년 ‘아이언맨’부터 미국 영화사 마블이 내놓은 20여편 영화와 캐릭터를 고루 되새겼다. 마블 영화를 지켜본 11년 세월에 대한 보상, 뭉클한 피날레였다. 한국은 물론 전 세계 흥행 시장에서 신기록을 쏟아냈다.

‘어벤져스:엔드게임’에 나오는 타노스의 갑옷. [사진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어벤져스:엔드게임’에 나오는 타노스의 갑옷. [사진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어쩌면 11년 만이 아니다. 아이언맨·토르·헐크 등은 원작 만화에선 1960년대, 캡틴 아메리카는 40년대 탄생했다. 하지만 마블 만화는 성공으로 점철된 역사가 아니다. 최근 번역 출간된 『더 마블 맨』에서 마블 캐릭터 원작자 스탠 리의 창의성보다 더 눈길을 끄는 것이 이런 대목이다. 과거 경영진은 다른 회사 인기 만화를 모방하라고 다그치기 일쑤였고, 한국처럼 미국에서도 만화 전반이 유해하다며 불태워지는 일이 벌어졌다. 마블이 직접 영화를 만들어 ‘제2의 디즈니’가 될 거란 말은 80년대에도 나왔지만, 인수합병 과정의 수사에 그쳤다.

지금의 성공은 그래서 더 돋보인다. 원작의 힘에만 기대는 대신 새로운 상상력과 재능을 결합했다. 만화와 달리 아이언맨이 영화 1편부터 스스로 정체를 드러냈는가 하면, 루소 형제처럼 블록버스터가 처음인 감독들을 과감하게 기용했다. 무엇보다 한 편 한 편 영화 속 세계를, 영화 밖 팬을 넓혀 갔다. 관객이 이 세계와 함께 성장했다.

4편에도 나오는 핑거스냅의 위력은 이런 세월 덕분에 설득력을 갖는다. 10년에 한 번 기회가 올까 말까 한 카드를 쓴 셈이니, 이후 마블 영화가 어떻게 이어질지 궁금하다.

이후남 대중문화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