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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영화로 보다] 어벤저스 아이언맨의 아크발전기, 현실에서 가능할까

중앙일보

입력

 영화 '어벤져스: 엔드게임'의 포스터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제공]

영화 '어벤져스: 엔드게임'의 포스터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제공]

 영화 속 초인(超人)들은 엄청난 힘의 소유자다. 슈퍼맨ㆍ스파이더맨은 옷을 입는 것만으로 괴력이 나온다. 헐크는 화가 나면 덩치가 커지고 힘이 세지는 괴물로 변한다. 그런데, 어디서 어떻게 해서 이런 힘이 나오는지 제대로 된 설명이 없다. 흔히 이런 종류의 영화를 뭉뚱그려 ‘Science Fiction’의 약자인 ‘SF’로 분류하기도 한다. 하지만, 사실 영어단어의 뜻 그대로 ‘과학소설’ 영화라 번역하지 않고 굳이 ‘공상과학’ 영화라 흔히 부르는 이유는 허황하고 근거가 없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그래비티’나  ‘인터스텔라’쯤 돼야 ‘과학소설 영화’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

2008년 처음 등장한 21세기형 초인 ‘아이언맨’은 그래도 상당한 과학적 상상력을 가미하고 있다. 주인공 토니 스타크는 ‘아크 리액터’라는 에너지 발생 장치를 가슴팍에 넣어 강력한 힘의 원천으로 삼는다. 여기에 특수합금으로 만든 슈트를 입고 역대 최고 수준의 초인으로 변신한다. 나름 초인의 근거를 설명하는 셈이다.

영화는 아크 리액터(Arc Reactor)가 정확하게 어떤 것인지를 설명해주지 않는다. 국내에서는 ‘아크 원자로’ 정도로 번역되고 있지만, 그 역시 정확히 무엇인지 알기 어렵다. 어차피 진짜 과학소설 수준의 과학적 근거를 가진 영화는 아니니, 너무 진지하게 생각할 필요도 없지만 그래도 과학적 추론을 통해 원작자의 생각을 하나씩 살펴보는 재미까지 포기할 이유는 없다.

아이언맨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아이언맨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우선 아크 리액터는 실현 가능성을 논외로 하자면 ‘초소형 핵융합 발전기’쯤으로 보면 된다는 게 과학자들의 말이다. 아크(arc)는 ‘플라스마’의 다른 말이며, 리액터(reactor)는 ‘원자로’로 번역할 수 있다. 플라스마를 이용한 핵(核) 발전은 곧 핵융합발전이다. 수소 원자가 1억도 이상의 초고온 플라스마 상태에서 융합반응을 일으켜 헬륨으로 변할 때 생기는 열에너지를 이용해 전기를 생산하는 것이 핵융합발전이다,

정용훈 KAIST 원자력양자공학과 교수는 “아이언맨 첫 편을 보면 주인공 토니 스타크의 아버지 하워드 스타크가 남긴 아크 리액터 원형이 나오는데, 토카막형 핵융합로의 모습을 본뜬 것” 이라며 “아크 리액터는 핵융합로를 영화에 걸맞게 좀 더 색다르게 작명한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토니는 아버지가 남긴 핵융합로를 모델로, 초소형 핵융합 발전기를 만들었다는 얘기다.

프랑스 남부 카다라슈의 국제핵융합실험로(ITER) 공사 현장의 낮. 토카막이 들어갈 원통형 건물 뒤로 서 있는 곳이 부품 조립동이다. [사진 ITER]

프랑스 남부 카다라슈의 국제핵융합실험로(ITER) 공사 현장의 낮. 토카막이 들어갈 원통형 건물 뒤로 서 있는 곳이 부품 조립동이다. [사진 ITER]

핵융합로는 실제로 프랑스 남부 카다라슈에서 ‘국제핵융합실험로(ITER)’라는 이름으로 구현 중이다. 과학자들은 오는 2050년쯤이면, 실제로 핵융합을 통해 전기를 생산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한다. 핵융합발전은 수소를 연료로 하고, 방사선 피해도 극히 적으면서도, 기존 핵분열식 원자력발전에 맞먹는 에너지를 생산할 수 있기 때문에  ‘꿈의 청정 에너지원’으로 불린다.

권재민 국가핵융합연구소 선행물리연구부 박사는 “영화 시나리오를 쓴 작가가 굳이 왜 핵융합로를 아이언맨의 동력으로 썼을까 상상을 해봤다”며 “원리상 가능하다고 생각되는 미래 에너지원 중 고용량이며 지속적으로 강한 출력을 낼 수 있는 것은 핵융합 빼고는 없기 때문일 것이라는 추측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가슴팍에 심을 정도로 작은 핵융합 발전기가 가능한 일일까. 정용훈 교수는 “원리상 플라스마라는 것은 규모가 클 때 잘 가둬둘 수 있어 클수록 만들기 쉽다”며 “영화에서처럼 핵융합로를 작게 만드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잘라 말했다. 다만 핵분열 방식의 원자로라면, 아크 리액터 크기는 아니지만 이미 지금도 의자 크기 수준까지는 구현돼 있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이 화성에 보낸 탐사로버 큐리오시티 등이 원자력배터리를 에너지원으로 하고 있다.

대덕연구단지 내 국가핵융합연구소 연구원이 한국형 초전도핵융합연구장치(KSTAR) 진공 용기 내부를 점검하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대덕연구단지 내 국가핵융합연구소 연구원이 한국형 초전도핵융합연구장치(KSTAR) 진공 용기 내부를 점검하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팔라듐을 얘기하면 더 황당무계해진다. 주인공 토니는 아크 리액터의 원료인 팔라듐 중독으로 힘들어한다. 팔라듐을 원료로 쓴다면 아크 리액터는 그냥 핵융합 발전기가 아니라 ‘상온 핵융합 발전기’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팔라듐은 상온핵융합 실험을 하는 일부 과학자들이 전극으로 쓰는 원소다. 하지만, 상온 핵융합발전은 현대 주류 물리학자들이 꼽는 대표적 ‘사이비 과학’으로 분류된다. 태양의 원리처럼 핵융합반응이 일어나려면 초고온ㆍ고압의 상태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정 교수는 “여전히 매년 상온핵융합발전 국제학회가 열릴 정도로 일부 과학자들의 주장이 식지 않고 있다”면서도 “에너지가 나오는 순간 상온이 될 수 없다는 측면에서, 상온 핵융합으로 에너지를 쓴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말했다.

사실, 위의 두 과학자 모두 ‘황당무계한’ 공상과학 영화, 어벤저스를 재미있게 봤다고 했다. 특히 권재민 박사는 스스로 ‘어벤저스 광팬’이라고까지 표현했다. 과학자들이 왜 공상과학을 사랑할까.

권 박사는 “SF영화나 소설은 ‘사실’이 10% 안쪽만 돼도 괜찮다고 생각한다”며 “상상할 수 있어야 언젠가 실현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90%의 내용이 황당하더라도 부담 없이 재미있게 SF영화를 본다”고 말했다. 그는 “1960년대 컴퓨터는 사무실 하나를 가득 채울 정도로 거대했지만,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스마트폰은 초기 컴퓨터보다 1만배 이상 빠르다”며 “영화처럼 상상하고 열심히 연구해간다면 초소형 핵융합발전이 불가능하다고만은 얘기할 수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최준호 기자 joo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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