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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위 ‘의붓아버지 딸 살해 사건’관련, 경찰 상대 조사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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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의붓아버지에게 성추행을 당했다”며 경찰에 신고한 여중생이 신고 18일 만에 살해당한 사건과 관련해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가 직권조사에 나선다.

13세 딸 피살 전 경찰 두번 찾아 #“계부가 성추행했다” 신고 #경찰은 “원칙따라 대응” 해명

인권위는 ‘의붓아버지 딸 살해 사건’과 관련해 피해자인 A양(13)의 성추행 사건을 담당했던 전남 목포경찰서와 광주지방경찰청 등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다고 2일 밝혔다. 경찰이 피해자 보호조치를 제대로 했는지, 수사 과정에서 소홀함은 없었는지 등을 조사하기 위해서다.

의붓아버지 딸 살해 사건은 지난달 27일 계부 김모(31)씨가 친모인 유모(39·여)씨와 공모해 의붓딸인 A양을 살해하고 시신을 유기한 사건이다. A양은 다음날 광주광역시 동구 저수지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은 김씨가 A양이 자신을 성범죄 가해자로 신고한 사실을 알고 보복하기 위해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보고 있다. 경찰에 따르면 A양은 사건이 일어나기 전 두 번이나 경찰에 성범죄 피해 사실을 알렸다. 지난 9일 친아버지와 함께 목포경찰서를 찾아 성추행 사실을 신고했고, 사흘 뒤인 12일 목포경찰서를 언니와 함께 방문해 계부의 성폭행 시도를 진술했다.

인권위는 A양의 유족이 경찰의 늑장수사에 대한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고, 2차 피해 예방 등 경찰의 대응방식에 대해 의혹이 제기되는 만큼 경찰이 범죄 피해자에 대한 보호 조치에 미흡했다고 볼 근거가 있다고 판단했다. 특히 여성, 아동 등 특별한 보호가 필요한 사회적 약자를 대상으로 한 일인 데다가 성폭력·가정폭력에 대한 문제라는 점에서 사안의 중대성이 크다고 봤다. 인권위는 “성범죄 피해자의 보호 및 지원시스템이 보다 실질적으로 운영될 수 있도록  살펴볼 예정”이라고 밝혔다.

경찰은 ‘원칙과 매뉴얼에 따라 수사를 했다’는 입장이다. 전남경찰청 관계자는 “나이와 범죄 장소 등을 감안해 원칙에 따라 수사가 진행됐다”고 말했다.

경찰은 친모인 유모(39·여)씨의 계획범죄 여부나 공모가담 정도 등을 수사 중이다. 공범인 친모가 “남편이 무서워서 가담한 우발적 범행”이라고 주장하고 있어서다. 유씨는 당초 남편의 단독범행을 주장하다 이날 범행을 공모한 사실을 털어놨다. “딸이 살해될 당시 차량에 타고 있지 않았다”던 진술을 바꾼 것이다. 아울러 유씨는 “나도 남편에게 해코지를 당할 것 같았다”고 했다. 숨진 딸에 대해서는 “말리지 못해서 미안하다”는 진술도 했다. 경찰은 유씨가 심경의 변화를 일으킨 것은 ‘더 이상 사실을 숨길 수 없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장조사와 폐쇄회로TV(CCTV) 분석 등을 통해 수사망을 좁혀온 데 대한 심리적 압박감이 컸다는 분석이다. 일각에서는 이튿날로 예정된 영장실질심사를 앞두고 정상참작을 받기 위해 마음을 바꿨다는 말도 나온다.

경찰은 유씨가 범행 직전에 남편과 자리를 맞바꾼 부분에 주목하고 있다. 지난 27일 오후 5시께 딸이 살해될 당시 이를 방관한 증거가 되기 때문이다. 당시 유씨는 “딸을 죽이겠다”며 자리 옮길 것을 요구한 남편의 말을 따라 뒷자리에서 운전석 쪽으로 옮겼다.

경찰 관계자는 “딸이 죽을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를 방관한 것 자체가 계획범죄에 가담한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경찰은 유씨가 휴대전화가 아닌 공중전화를 이용해 A양을 불러낸 점과 시신을 유기한 저수지를 3차례나 방문했다는 점 등에서 계획범죄 쪽에 무게를 두고 수사하고 있다.

광주광역시=최경호 기자, 권유진 기자 choi.kyeong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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