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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남원고사」 현장 |영리한 춘향…기생신분서 벗어났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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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지난 5월11일부터 l5일까지 전라도 남원에서 제59회 춘향제가 열렸다. 시내 곳곳에 선전탑을 세우고, 청사초롱을 달았으며, 갖가지 놀이가 벌어지는 광한루 일대에 수많은 구경꾼이 모여 흥겨워하고 있었다. 「열녀춘향가」라고 한 사당에 화상으로 그려놓은 춘향의 모습을 보고, 춘향과 이도령의 복색을 하고 광한루 앞에서 사진을 찍느라고 부산했다. 판소리와 소설의 주인공에 지나지 않는 춘향을 실제로 있었던 인물인 듯이 여겨 그렇게 크게 기념하는 것은 국내외 어디서도 비슷한 예를 찾기 어려운 특이한, 일이다.
『춘향전』은 비슷한 내용을 다르게 구체화한 이본이 1백가지도 넘어 일률적으로 논할 수 없으나 무대는 항상 남원이다. 분량이 많고 사설이 다채로워 특히 힘써 연구할만하다는 이본은 제목부터 『남원고사』여서 남원의 옛이야기라고 자처한다. 남원부사의 아들 이도령이 광한루에 나갔다가 기생의 딸 춘향을 만나 사건이 시작되는 것이 불변요소다.
광한루가 또한 그렇게 중요하기에 판소리를 한시로 번역한 작품은 『광한루악부』 라고 했다. 남원의 광한루야말로 남녀가 만나 사랑하게 되는 장소로 가장 적합하다 하고서, 상상을 마음껏 펼쳐 보였다.
『남원고사』 본문을 다시 보면, 남원부사가 나이 16세인 자기 아들을 데리고 부임해와서는 색에 상할까 염려해 기생을 멀리하고 공부에만 전념하게 했다 한다. 그런데 만물이 번식하는 봄날이 되자 마음이 들떠 시중드는 방자더러 구경갈 곳을 대라고 했다.
방자가 천하 명승지를 차례로 들먹이다가 남원의 광한루 또한 경치가 빼어나다고 하자, 그리로 나가자고 졸랐다. 사또 분부를 내세워 난색을 보이는 방자에게 단둘이 하는 일을 누가 알겠느냐고 했다. 광한루에 이르러 그 앞 숲 속에서 그네를 뛰고 있던 춘향을 보고 마침내 탈선이 실현되었는데, 춘향을 불러오게 하느라고 방자에게 간청한 수작이 걸작이다.
방자가 춘향은 기생의 딸이지만 성격이 매몰차고, 돌하고, 교만해 어떻게 할 수 없다고 하자, 「이 애 방자야, 우리 둘이 의형제하자」하고 방자를 동생이라 부르고, 다시 형이라고 부르면서 「날 살려라」고 했다. 공부만 하라는 구속에서 스스로 벗어난 사춘기 소년이 동감의 처녀를 감격스럽게 만나 둘의 몸이 한 몸 되는 탈선을 봄날의 상상에 걸맞은 들뜬 수작으로만 구체화하지 않고 냉혹한 현실의 인간관계를 동시에 문제삼았다. 상대가 되는 처녀는 기생의 딸이라야 필요한 요건이 충족되었다.

<회피할 수 없는 결연>
방자가 가서, 만약 말을 듣지 않으면 「네 어미 월매까지 생 급살을 먹일 것이니」 되지 못한 수작 그만두고 「어서 가자」고 했다.
춘향은 이도령과의 절연을 회피할 수 없었다. 타고난 신분 탓에, 자기 장래를 전혀 의심스럽게 하는 청을 받아들여야만 했다. 그렇지만 춘향은 영리했다. 철없이 구는 이도령을 잘 구슬러 영원히 잊지 않겠다는 불망기를 받아내고 잠시동안의 오입이 청산하지 못할 사랑으로 변하게 하는데 성공했다.
그런 과정을 거쳐 비로소 서로 대등한 관계를 성취했다. 춘향은 자기 생각대로 이도령을 변모시켰기에 기생 신분에서 벗어날 수 있었으며 갖가지 고난을 이기고 복된 결말에 이르렀다.
신관 사또의 수청들라는 요구를 물리치고 정절을 지킨 것은 기생의 처지로 되돌아가지 않으려 한 투쟁이었다.
춘향제에 모여든 사람들이 춘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궁금하게 여기면서 춘향사당 앞에 잠시 머물러 눈앞의 광경을 살펴보았다. 남녀노소 어느 쪽도 빠지지 않고 동시대에 공존하는 갖가지 차림을 각기 대표하는 사람들이 춘향의 모습을 다투어 살피면서, 저 모습이 최고의 미인인가 의아하게 생각하는 것 같았다. 김은호 화백이 그린 춘향의 화상은 연약하고 앳된 미모를 지니고 있기만 하고, 거듭 닥친 시련을 휘어잡아 뜻대로 돌릴만한 능란한 거동은 보여주지 않는다.

<다면적인 행동 보여>
춘향의 아름다움과 정절을 단순화해서 칭송하는 것이야말로 작품의 실상과 크게 어긋난다.
춘향은 한가지 모습으로 거의 예측불허에 가까운 다면적인 행동을 해서 자기 운명을 돌려놓았는데, 모여들어 구경하는 사람들은 서로 너무 다른 차림을 하고서 단순하게 평면화 되어 있기만 한 화상을 보며 공인된 상식을 재확인한다.
광한루 앞에는 춘향과 이도령의 복 색을 빌려주고 사진을 찍게 하는 영업을 하는 이들이 있다. 낫살이나 든 중년 남녀도 그 복 색을 하고 사진기 앞에 서면 작품 속의 두 인물과 다름이 없어 보인다. 거기다가 방자·사또 등의 복 색을 갖춘 다른 배역까지 .곁들이면 금방 영화가 한편 이루어질 것 같다. 『춘향전』영화는 거푸 만들어도 관객을 모을 수 있었고, 작품을 널리 알리는데 큰 기여를 했다.
춘향과 이도령의 복 색을 하고 기념촬영을 하는 사람들은 판소리도, 소설도 아닌 영화의 장면을 흉내내고 있다. 그러면서 소설도 영화와 같으려니 생각하고있다.
그러나 소설은 풍물구경거리가 아니며 사람이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진지하게 제기했다. 춘향의 어미 월매는 밤중에 찾아온 이도령에게 춘향 이와 잠깐 놀다 가라고 했다. 뒷기약 같은 것은 생각할 수 없었다. 춘향이 신관 사또 수청을 거부하자 자기는 젊어서 각 읍 수령 무수히 겪으면서 돈 많이 준 이나 잊지 못했다고 했다. 이도령이 걸인 차림을 하고 찾아가자 춘향이 옥바라지하느라고 집도 팔고 없다면서 자기 집에서 자지 못하게 내몰았다. 그렇게 사는 것이 춘향에게도 주어진 기생의 일생이었는데, 비상한 각오를 하고 거역했다. 거역할 수 있었던 이유를 상투적인 개념의 미모와 정절에서 찾을 수 없다. 그래서 상식과 진실이 크게 어긋난다.
춘향은 품성이 훌륭하기보다 오히려 불량했다. 매몰하고, 당돌하고, 교만하다고 한 방자의 말이 거짓이 아니다. 신관 사또가 춘향을 잡아 오라 하자, 군노 사령들이 펄쩍 뛰고 좋아하면서 춘향 이가 이도령과 함께 지낼 때 자기네를 「개 방귀로 알고」 거만을 떨더니 잘 되었다고 했다. 그런데 춘향이 「분길 같은 고운 손으로 북두갈고리 같은 저의 손을 잡고」 다정하게 굴며 안부를 묻고 술을 권하자 잡으러 간 패들이 마음이 달라져서 그냥 돌아갔다.

<단순화한 영화장면>
그 과정을 묘사한 『남원고사』의 본문은 재기가 넘치고 빛이 난다. 춘향이 그런 방책으로 위기를 모면할 수 없어 마침내 잡혀가 신관 사또와 대결하는 장면도 영화에서 마구 단순화해버린 것과 딴판이다.
사또가 기생에게 수절이 당치않다고 한 말은 반박하기 어려웠다. 어여쁘지도 않은 기생들이「궁둥이 흔들면서 장마 개구리호박잎에 뛰어오르듯」하는 세태인데, 「제법 반반한 계집」 춘향이 몸을 잘 지키니 칭찬할 만 하다면서 어르는 수작은 단수가 높다.
보좌관 격인 이도령이 듣고만 있지 않고 대꾸를 해야하므로, 그렇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다는 양시양비론으로 쟁점을 모호하게 하는 것은 오랜 경험에서 얻은 처세의 요령이다. 그런 판국에 말로써 자기 주장을 관철할 수 없어 춘향은 죽기를 각오하고 완강히 항거했다. 그러자 사태가 일변해 남원고을 한량들이며, 농부들이며 모두들 춘향을 지지하고 나섰다. 춘향이 설사 매에 맞아 죽어도 승리했다 할 수 있게 되었을 때 암행어사가 출또 했다.
춘향제 행사에서 판소리가 가장 인기가 있었다. 넋을 잃고 흥에 겨워 판소리를 듣는 청중이 그득해 춘향의 이야기가 함부로 변질되지 않고 제대로 전하는 방도가 있는 듯했다. 그러나 지금의 판소리꾼들은 판소리를 국악이라고만 일컬으며 창을 다듬는 데나 힘쓰고 사실은 대단치 않게 여긴다. 음악으로서의 판소리는 이어져도 문학으로서의 판소리는 생기를 잃고 있다. 판소리가 확성기를 타고 크게 울릴수록 더욱 공허하게 느껴졌다.
춘향의 화상이 모셔진 「열녀 춘향가」 . 춘향의 모습을 보려는 관객들의 발길이 분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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