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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 시험 놓고...1m 코앞서 충돌한 법조 선후배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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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시 합격자수 축소를 주장하는 이찬희 변협 회장(왼쪽)과 변시 합격자수 증가를 요구하는 로스쿨생 양필모씨. (오른쪽 두번째) [뉴시스]

변시 합격자수 축소를 주장하는 이찬희 변협 회장(왼쪽)과 변시 합격자수 증가를 요구하는 로스쿨생 양필모씨. (오른쪽 두번째) [뉴시스]

“변호사 선배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직접 와서 보세요. 지금 당장 합격보다 로스쿨이 바로 살려면 어떻게 해야할지 생각해야 합니다.” (이찬희 대한변협 회장)
“국민들의 이익이 아닌 당신들의 이익을 위해서 하는 말 아닙니까. 학생들은 죽어가고 있습니다.”(로스쿨 측)

"눈앞에 합격만 보냐" "밥그릇 챙기기 그만"

오는 26일 변호사시험(8회) 합격자 발표를 앞두고 변호사들과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학생 사이의 갈등이 최고조에 달했다. 변호사들은 변시 합격자 수를 늘리기 전에 유사직역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반면 로스쿨생들은 변시를 자격시험화해야 한다며 맞섰다.

변협 “변리사 등 치고 들어오는데 변호사 무턱대고 늘리면…”

22일 오전 대한변호사협회(변협)는 서초동 변호사회관 앞에서 유사직역 문제 해결을 요구하는 집회를 열었다. 이찬희 회장을 비롯한 60여명의 변호사들이 참석했다. ‘유사직역’이란 변리사ㆍ세무사 등 법조인들과 비슷한 업무를 수행하는 직군을 통틀어 이르는 말로 이들이 변호사의 고유업무를 빼앗아가고 있다는 게 변협 측 주장이다.

변협은 집회에서 “변호사 숫자만을 늘리는 것은 로스쿨 제도의 존립을 흔들 뿐 아니라 변호사뿐와 법조유사직역 자격사 제도의 근간을 위협한다"며 “유사직역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예년 수준 이상으로 법조인 배출 수를 증가시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밝혔다. 변호사들은 ”유사직역 통합하라“, ”법조인력 바로잡자“, ”무분별한 변호사직 반대한다“ 등의 구호를 외쳤다.

삭발식 감행한 로스쿨생들 “법조계 기득권의 밥그릇 챙기기“

22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지방변호사회 앞에서 맞불 집회가 열린 가운데 전남대 로스쿨 7기 양필모 씨가 삭발을 하고 있다. [뉴시스]

22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지방변호사회 앞에서 맞불 집회가 열린 가운데 전남대 로스쿨 7기 양필모 씨가 삭발을 하고 있다. [뉴시스]

변협의 이런 주장은 낮아진 변시 합격률로 허덕이는 로스쿨생들에겐  ‘불난 데 기름 부은 격’이 됐다. 이날 불과 1m 떨어진 곳에서는 변협 집회를 규탄하는 맞불 집회가 열렸다. 로스쿨 재학생과 졸업생들로 구성된 법학전문대학원원우협의회(회장 최상원, 이하 법원협)와 법조문턱낮추기실천연대(공동대표 이경수, 이하 법실련)가 공동주최한 이 집회에는 20여명이 참가했다.

참가자들은 “변협 주장의 핵심은 변시 합격자수를 절대 늘리면 안 된다는데 방점이 있는 것"이라며 “변호사들이 기존의 밥그릇을 지키기 위해 만든 허구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법무부는 약속대로 변호사시험을 자격시험으로 운영하라’ ‘로스쿨 개혁이 사법 개혁이다’ 등이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 구호를 외쳤다. 자유발언에 나선 강원대 로스쿨 8기 한상균(29)씨는 매년 변시 합격자 커트라인 점수가 높아지고 있다며 “변협이 로스쿨생들의 실력을 운운하는데, 지금 시험 보면 우리보다 시험 점수도 낮게 나올 사람들이 실력 프레임으로 밥그릇을 지키려고 한다”고 주장했다.

삭발식도 함께 진행됐다. 삭발을 진행한 전남대 로스쿨 7기 양필구(34) 씨는 “결연한 의지를 보여주고 불합리한 제도로 인해 고통받는 선·후배들의 목소리를 알리겠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삭발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변협이 주장하는 ‘유사직역 정리를 통한 법률시장 정상화’에 대해서는 “터무니없는 얘기”라며 “변시를 원래 취지대로 자격시험화하고 특성화 교육이 이뤄지는 것이 진정한 정상화”라고 강조했다.

당황한 변협, 후배들에 “상대방 말 들을 줄 알아야지”

변협은 맞불 집회에 당황한 모습을 보였다. 이찬희 변협회장은 “상대방의 말을 잘 듣는 게 변호사로서 가장 중요한 덕목”이라며 “돌아가면서 말하자”고 직접 학생들을 설득했다. 발언 도중 학생들이 삭발식을 진행하자 “지금처럼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법조인으로서의 신뢰를 상실하는 것”이라며 꾸짖기도 했다.

 이찬희 변협 회장은 맞불 집회에 참가한 로스쿨생들에 "상대방의 말도 잘 들어야 한다"며 직접 설득에 나섰다. [뉴시스]

이찬희 변협 회장은 맞불 집회에 참가한 로스쿨생들에 "상대방의 말도 잘 들어야 한다"며 직접 설득에 나섰다. [뉴시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도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로스쿨 측 주장에 동참했다. 민변은 “변시 낭인의 증가, 법조인의 다양성ㆍ전문성 약화 등 로스쿨 도입을 통해 극복하려 했던 기존 사법시험의 폐단이 재현되고 있다”며 “이를 막기 위해서는 변호사로서의 최소한의 자격을 확인하는 자격시험으로 운영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와 함께 변시의 자격 시험화 등의 내용을 담은 의견서를 법무부와 교육부에 제출했다.

로스쿨 제도를 둘러싼 주장들은 헌법재판소에서도 가려질 전망이다. 법실련 측은 변시 합격 등을 규정한 변호사시험법 제10조 등에 대한 헌법소원심판 청구서를 다음주 안에 헌재에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박사라ㆍ백희연 기자 park.sar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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