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오후 4시45분(현지 시간). 카자흐스탄 알마티에 있는 고려극장에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가 도착했다. 한쪽에서는 환호성이, 다른 쪽에서는 문 대통령을 환영하는 북 연주가 시작됐다.
카자흐스탄 정부의 지원으로 설립된 고려극장의 극장장과 카자흐스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의 영접을 받은 문 대통령의 시선은 금세 환호성이 나오는 쪽으로 옮겨졌다. 그리고는 그쪽으로 가보겠다는 신호를 보냈다. 예정에 없던 동선 변경에 경호처 직원들이 분주히 움직였다.
문 대통령이 간 곳에는 1시간 전부터 태극기와 카자흐스탄 국기를 든 교민과 주재원 가족 등 40여명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들 중 한명은 기자에게 “문 대통령 얼굴이라도 보러 나왔다. 이쪽으로 와서 셀카도 찍을 수 있으면 좋겠다”며 기대감을 보였다. 이날 행사는 카자흐스탄에 정착한 고려인들을 대상으로 했기 때문에 교민들은 대상이 아니었다.
문 대통령이 실제로 교민들에게 웃으며 다가서자 “대통령님 사랑합니다”라는 환호성을 더욱 커졌다. 문 대통령은 교민들과 일일이 악수를 했다. 한 여자 아이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정상회담을 보도한 현지 언론 기사를 들고 서 있자 문 대통령이 웃으며 관심있게 지켜보기도 했다. 교민 중 한 여성은 악수를 하며 “대통령님! 정말 우리 남편 다음으로 사랑합니다”라며 밝은 표정을 짓기도 했다.
교민들과 악수를 마친 문 대통령은 “같이 사진을 찍을까요?”라며 즉석 제안을 했다. 그러면서 교민들이 모여 들고 있던 환영 현수막 뒤로 들어가 무릎을 굽혀 포즈를 취해 촬영에 응했다. 김정숙 여사는 단체 사진을 찍을 때 오른쪽 바깥쪽에 섰다.
문 대통령은 고려극장에서는 고려인들의 강제 이주와 홍범도 장군의 활약 등을 담은 단막극을 관람했다. 김정숙 여사는 고려인이 강제 이주 기차를 타고 낯선 곳에 내던져지자 카자흐스탄인들이 좌절한 고려인을 품어주는 모습과 고려인이 낳은 갓난아기가 울자 현지인이 젖을 대신 물리는 장면 등을 보며 고개를 끄덕거리기도 했다.
공연 관람을 마친 문 대통령은 기념사진 촬영을 마친뒤 고려인 극장장에게 다가가 “유해봉환 행사에 가야해서 (일찍) 떠나야 한다”며 “고려극장을 오랜 세월 운영하고 후원해 주셔서 감사하다. 우리 정부도 열심히 돕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홍범도 장군 기념사업회 이사장을 맡고 있는 더불어민주당 우원식 의원에게 “국회에서도 많이 돕게끔 예산도 많이 해달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문 대통령은 해외 방문 때 종종 예정에 없이 교민들과의 직접 접촉을 해왔다. 대표적인 예가 2017년 7월 독일에서 앙겔라 메르켈 총리와 정상회담을 마친 뒤 담장 너머에 모여 있던 교민들에게 걸어가 악수를 하며 격려했던 일이다. 당시 메르켈 총리는 문 대통령이 교민들과 예정에 없던 악수를 나누자 문 대통령을 뒤따라가 함께 악수를 나눴다. 독일 총리실에서는 “메르켈 총리가 이러한 돌발 동선을 한 것을 처음”이라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고 한다.
그해 9월 뉴욕에서 열린 유엔총회에 참석했던 문 대통령은 뉴욕 시내를 걸어서 이동하기도 했다. 도보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만난 교민들과도 서스름 없이 악수를 나누기도 했다.
정상의 동선은 극도의 보안이 필요한 사안이다. 통상 행사장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소지품에 대한 검사는 물론 몸 수색 등이 이뤄진다. 아무런 조치를 받지 않은 군중속으로 예고 없이 가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누르술탄(카자흐스탄)=강태화 기자 thkang@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