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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고액 입시 컨설팅 단속한다더니…정부가 나서서 ‘쓰앵님’ 양성?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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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초 방영된 드라마 '스카이캐슬'에서 입시 코디 김주영 역할을 맡은 배우 김서형. [사진 JTBC]

올해 초 방영된 드라마 '스카이캐슬'에서 입시 코디 김주영 역할을 맡은 배우 김서형. [사진 JTBC]

“정부가 지금 드라마 ‘스카이캐슬’의 김주영 ‘쓰앵님’(선생님)을 양성하겠다는 건가요?”

고3 자녀를 둔 김모(48·서울 송파구)씨는 최근 입시 정보를 얻기 위해 참여했던 SNS에서 당황스런 경험을 했다. 한 학부모가 공유한 ‘학생부종합전형(학종) 컨설턴트 양성과정’ 모집 공고 때문이다. 송파여성인력개발센터에서 주관하고 ‘여성가족부 2019년 취업성공디딤돌교육사업’의 하나로 진행하는 프로그램이었다. 김씨는 “학생부종합전형에서 사교육 유발 요소를 줄이고, 고액 입시 컨설팅을 단속한다던 정부가 입시 코디와 컨설턴트 양성에 나선 게 말이 되냐”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지금도 학종 관련해 사교육이 기승을 부리는데, 정부에서 사교육을 줄일 생각은 않고 입시컨설턴트를 양성하겠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고 했다.

18일 송파여성인력개발센터(센터)에 따르면 해당 프로그램은 5월 22일부터 6월 12일까지 총 10회 이뤄지며 무료로 운영된다. 수강 대상은 학종 코디네이터 및 컨설턴트 취업을 희망하는 여성이다. 커리큘럼은 ▶학생부종합전형 이해 및 준비전략 ▶합격자 학교생활기록부 사례분석 ▶자기소개서 대학별 문항 및 사례 분석 ▶학교생활기록부 및 자기소개서 작성법·평가·컨설팅 ▶대학별 면접 기출문제 분석으로 구성됐다. 센터는 서울시에서 지정한 여성전문교육기관으로 여성가족부·고용노동부 등에서 사업을 위탁받아 운영한다.

하지만 ‘깜깜이’ ‘금수저’ 전형으로 불리는 학종이 사교육을 유발한다는 비판을 받는 상황에서 정부사업으로 입시 코디를 양성하는 게 옳으냐는 지적이 나온다. 박소영 정시확대추진전국학부모회장은 “학종이 학생 스스로 준비할 수 없는 전형이라는 걸 정부가 스스로 인정한 것”이라며 “사교육 도움 없이 학종을 준비했던 학생·학부모만 바보로 만들었다”고 비판했다. 고2 자녀를 둔 이모(50·서울 영등포구)씨는 “대입을 복잡하게 만들어서 컨설팅을 필수로 만든 것도 모자라 이제는 국민 세금으로 컨설턴트까지 양성하냐”며 “이 나라의 교육정책은 정말 말이 안 된다”고 했다.

실제로 드라마 ‘스카이캐슬’처럼 입시 코디와 컨설턴트에 대한 관심은 매우 높아진 상황이다. 교육부에 따르면 2018년 사교육비 총액은 19조5000억원이었다. 이중 입시컨설팅 및 코디네이팅 비용이 총 616억원에 달했다. 진로 진학 상담비는 이번에 처음 조사했는데, 전체의 3.6%가 입시 컨설팅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간 평균 2.6회 상담하고 회당 평균 11만8000만원을 썼다. 고1 자녀를 둔 이모(46·서울 은평구)는 “대입에서 수시가 확대되면서 대학별 전형이 제각각이라 대입 컨설팅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다”며 “실제 법적으로는 컨설팅비용이 1시간 기준으로 30만원을 넘을 수 없는데 이보다 비싼 곳이 많다”고 전했다.

교육부는 고액 입시 컨설팅이 기승을 부릴 것을 우려해 지난 1월 보건복지부·국세청·경찰청 등과 합동 단속에 나서기도 했다. 사교육 수요가 증가하는 신학기(1~3월), 여름·겨울방학, 대입 전형 기간 등에 맞춰 점검하겠다는 건데, 인터넷 홈페이지·블로그·카페 등의 광고를 살펴보는 수준이라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이 나왔다. 실제로 교육부가 지난 3개월 동안 단속을 통해 적발한 불법 컨설팅 사례는 4건에 불과했다.

프로그램이 논란이 되자 여가부는 “우리가 진행하는 사업이 아니다”고 해명했다. 이수림 여가부 경력단절여성지원과장은 “평소 해당 센터가 여가부 사업을 위탁받아 진행하긴 하지만 이번 프로그램은 정부 방침과 맞지 않아 사업을 검토·승인하는 서울시에 폐지 조치를 요청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센터 관계자는 “여가부 사업으로 진행하지 않을 뿐 폐지된 것은 아니다”며 “여가부 위탁사업으로 추진하다 상황이 달라져 자체예산으로 운영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컨설턴트들은 교육 후 방과후학교 등에 배치할 예정이라 사교육과는 무관하다”고 덧붙였다.

전민희 기자 jeon.mi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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