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거 우즈 마스터스 우승...22세에 기적, 44세에 더 큰 기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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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거 우즈. [로이터=연합뉴스]

타이거 우즈. [로이터=연합뉴스]

오거스타 내셔널의 모든 관객들이 일어나 "타이거"를 연호하며 기립 박수를 쳤다. 많은 사람들이 "이건 믿을 수 없다"고 했고, 몇 몇은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22년 전인 1997년, 22세의 겁없는 골퍼 타이거 우즈는 마스터스에서 12타 차로 우승하면서 전설을 만들었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이 보수적인 골프장에 들어오지도 못하던 흑인이 우승하면서 골프 세상이 달라졌다.

2019년 아이 둘에 일곱차례 수술을 한 44세의 우즈가 오거스타에서 다시 우승했다. 2위와 차이는 1타에 불과하지만 22년 전 보다 더 큰 전설을 이뤘다.

타이거 우즈가 15일(한국시간) 미국 조지아 주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 클럽에서 벌어진 마스터스에서 우승했다. 선두 프란체스코 몰리나리에 2타 차 공동 2위로 경기를 시작한 우즈는 2언더파 70타를 기록, 합계 13언더파로 역전 우승했다.

우즈는 메이저 15승, PGA 투어 81승째를 기록했다. 잭 니클라우스의 메이저 최다승(18승)에는 3승 차, 샘 스니드의 PGA 투어 최다승(82승)에는 1승 차로 다가섰다. 우즈는 마지막 마스터스 우승(2005년)을 한지 14년만에 우승했다.

특이한 것은 역전승이라는 점이다. 이전까지 우즈는 메이저에서 역전승을 한 번도 못 했다. 이전까지 14번의 메이저 우승을 모두 선두로 시작해 지켜냈다. 그러나 우즈는 허리 부상이라는 거대한 암초를 만나 암울한 시간을 이겨낸 후 이전에 못하던 메이저 역전승을 기록했다.

우즈는 1997년과 2001년, 2002년, 2005년 마스터스에서 우승했다. 우즈가 마지막 메이저 우승을 한 것은 11년 전인 2008년 US오픈이다. 무릎 수술로 한 쪽 다리를 절뚝거리면서 역대 메이저 최장 코스에서 연장 19홀을 포함 91홀 돌면서 따낸 우승이었다.

그러나 2009년 PGA 챔피언십에서 양용은에게 역전패하면서 불패의 이미지가 사라졌다. 그 해 추수감사절에는 교통사고 후 섹스 스캔들이 터지면서 정상적인 경기를 못했다. 우즈는 2013년 세계랭킹 1위에 복귀하기는 했지만 이상하게도 메이저대회 우승 경쟁에 들어가면 힘을 쓰지 못했다.

프란체스코 몰리나리(왼쪽)와 타이거 우즈. 우즈는 지난해 디 오픈과 라이더컵에서 몰리나리에 패한 빚을 갚았다. [AFP=연합뉴스]

프란체스코 몰리나리(왼쪽)와 타이거 우즈. 우즈는 지난해 디 오픈과 라이더컵에서 몰리나리에 패한 빚을 갚았다. [AFP=연합뉴스]

이후엔 허리 부상이 다시 도졌다. 제대로 일어나지도 못했고 2017년 마스터스에서 그는 “더 이상 선수생활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고백했다. 그러나 다시 일어섰다.

몸이 아파 누워 있는 동안 우즈는 많이 변했다. 상대를 밟고 짓이겨 승리를 거두던 과거와 다르다. 팬들에게 사인도 많이 해주고 동반자에게도 친절하다. 상대가 아니라 자신을 이기려 한다. 버전 2.0 타이거 우즈는 과거보다 인내심이 더 강했고, 바로 그 우즈가 골프 최고의 훈장을 받았다.

그는 지난해 초 투어에 복귀했고 플레이오프 최종전인 투어 챔피언십에서 우승하면서 자신감을 찾았다. 우즈는 3라운드 후 “지난해 우승했기 때문에 내가 다시 우승할 수 있다는 것을 안다”고 말했다.

마스터스 우승으로 가는 길이 쉬운 것만은 아니었다. 우즈는 지난해 디 오픈과 PGA 챔피언십에서 우승 경쟁을 했다 실패했다. 당시 우승자가 몰리나리(디 오픈), 켑카(PGA 챔피언십)다. 우즈는 그들과 다시 경쟁해야 했다. 몰리나리는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어려운 위기에서도 냉철하게 파세이브를 성공하면서 선두를 지켰다.

그러나 마스터스는 후반 9홀이 되어야 진정한 시작이라고 한다.

모자를 벗으면 타이거 우즈의 고뇌를 느낄 수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모자를 벗으면 타이거 우즈의 고뇌를 느낄 수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아멘코너의 한 가운데인 158야드 12번 홀에서 리더보드가 요동쳤다. 선두를 추격하던 브룩스 켑카와 이언 폴터가 구석에 꽂힌 핀을 보고 샷을 하다가 물에 빠졌고, 모두 더블보기로 이 홀을 떠났다.

13언더파로 2타 차 선두를 달리던 몰리나리는 바람에 흔들리는 층층나무와 소나무를 쳐다본 후 핀을 향해 질렀다. 역시 물에 빠졌다. 우즈는 안전한 쪽으로 그린에 올린 후 파를 했다.

버디를 잡아야 하는 파 5, 15번에 왔을 때 우즈, 몰리나리, 켑카, 더스틴 존슨, 젠더 셰플리 다섯 명이 12언더파 공동 선두였다. 한 타 한 타에 살얼음이었다.

우즈는 2온에 성공해 버디를 잡았다. 그러나 몰리나리는 티샷이 오른쪽 숲으로 갔고 세번째 샷이 나무에 맞고 물에 빠져 더블보기로 홀아웃했다. 4라운드 6번 홀까지 보기를 하나 밖에 하지 않았던 얼음 심장 같던 몰리나리는 후반 들어 더블보기를 2개나 하면서 녹아내렸다.

우즈는 16번 홀에서 그린 경사를 이용한 티샷으로 핀 1.2m에 붙여 다시 버디를 잡고 2타 차 선두로 도망갔다. 더 이상 아무도 그를 따라오지 못했다.

오거스타=성호준 기자

sung.ho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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