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내각제 개헌」 일정 구체화 한 셈|박준규 민정 대표 「오타와 발언」 왜 나왔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서 의원 밀입북 사건으로 정치권은 물론 사회 전체에 「공 안바람」이 불고 있는 가운데 민정당의 박준규 대표 위원이 「정계 개편론」을 들고 나와 관심을 모으고 있다.
캐나다를 방문중인 박 대표가 6일 오타와에서 밝힌 개편론은 ▲현 상황을 김일성 주의의 도전이 심각한 국가적 위기 상황으로 규정하고 ▲이에 대처하기 위해선 자유 민주주의 체제를 신봉하는 정당끼리 어깨를 같이하는 정계 개편이 필요하다는 것이 그 요지로 되어 있다.
박 대표는 『여야 4당이 색깔을 분명히 하면 내년 말까지 정계 개편이 가능할 것』이라며 스케줄까지 제시했고 정책 연합→정치 연합→연정 및 정당 통합이라는 3단계 수준까지 내놓았다.
박 대표의 「오타와 발언」이 나오자마자 이종찬 사무총장은 『우리 정당도 이제는 노선을 분명히 드러내야 할 때』라며 『박 대표 발언은 시의 적절한 것』이라고 뒷받침해 개편론이 야권에 대한 여권의 통일된 메시지임을 증명했다.
일사불란한 움직임으로 보아 박 대표의 오타와 발언은 사전에 긴밀한 협의로 마련된 대야카드로 보여진다. 다만 현시점에서 「자극적인」 개편론을 제시한 속셈이 무엇인지가 궁금하다.
일단 개편론 공세는 단기와 장기의 두가지 포석을 감추고 있는 것으로 진단된다. 단기적으로는 6공 정권의 입지 확보 전략의 일환으로 여겨진다.
다시 말해 이념 문제로 고전을 겪고 있는 평민당의 기세를 꺾어 5공 청산의 굴레를 벗어나 노 대통령의 집권 2단계에 유리한 주변 환경을 만들어보겠다는 구상이다.
이는 평민당의 분명한 「채색」을 요구하며 의회 민주주의 부정 세력에 대한 숙당 작업을 촉구했던 이 총장의 「안성 발언」과 맥을 같이하는 것이다.
개편이 이루어진다면 제일 타격을 받을 대상은 민정당의 표현대로 「문제 있는 색깔」을 가지고 있는 평민당일 것이고 따라서 평민당에 대한 보수 세력의 포위 공격을 선도함으로써 5공 청산과 광주 문제라는 걸림돌을 넘겨보자는 속셈이 깔린 것 같다.
개편론에 담고 있는 민정당의 장기적 포석은 보혁 대결수를 가시화 시키고 강조함으로써 범 보수 세력의 결집을 도모하고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정계 권력 구조를 만들어 내겠다는 구도인 것 같다.
결집되어야할 보수 세력에는 민주당과 공화당이 포함되는 것은 물론이고 경우에 따라선 급진 이념과 결별을 원하는 평민당내 일부 그룹들도 「같이 할수」있다는 속셈이고 이 같은 개편을 실현하는 장치는 말할 것도 없이 내각제 개헌이라는 생각이다.
4·26 총선거 후 여소 야대에 시달려온 민정당은 탈출구로서 정책 연합을 천명했고 야당인사들의 내각 참여 등 연정도 조심스럽게 꺼내놓곤 했었으며 근래 들어선 내각제 개헌 추진 의사를 공공연히 밝히고 있는 상황이다.
「이념」으로 뿐만 아니라 민정당 자신의 정치적 수지타산으로 보더라도 내각제 개헌은 필요하며 이를 위한 이념적 공감대로서 보혁 대립 구도를 중심으로 한 정계 개편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총장 등 당 관계자들은 향후 정계 구도와 관련, 『이제는 전민련 등 혁신 세력도 정당의 형태를 갖추어 의회 민주주의 체제 내로 들어와야 하며 이를 거부하는 세력은 분명 고립되어야 한다』는 소신을 피력해오고 있다.
박 대표가 언급한 내년 말까지라는 시한도 당이 내년 상반기로 구상하는 내각제 개헌론의 스케줄과 일치하는 것이어서 정계 개편에 매달리려하는 민정당의 기대를 짐작케 한다.
「오타와 발언」에 대해 야 3당의 반응은 각기 다른 색깔을 보일 것으로 생각된다.
「안성 발언」에 자극 받았던 평민당은 자신들에게 죄어오는 여권의 합작에 정면 대응한다는 방침이나 「보수」이기를 부인하지 않는 민주당과 공화당은 알레르기식의 반발은 자제하고 있는 듯하다.
박 대표 등 민정당이나 여권 지도부가 노리는 대로 정계 개편이 실현될 가능성은 속단키 어렵다.
그것은 우리 정치권의 구호가 보수-혁신의 이념 부분 뿐만 아니라 지역 감정 등의 「감정적 변수」도 얽혀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 동안 여야가 보여주었던 정책 연합을 뛰어넘어 정치 연합, 나아가 정당 연합이 실현되기 위해선 이러한 변수를 뛰어넘는 이념적 공감대가 형성되어야할 것 같다.
이런 측면에서 「오타와 발언」은 단기적 전략보다는 장기적인 정계 구도를 밝힌 것으로 해석되며 이를 4당이 어떻게 수용해 발전시켜 나갈지 주목된다. <김진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