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격차 어떻게 극복하나] 국내 현실과 외국 사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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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9면

#1. 지난달 중순 미국 샌프란시스코 다운타운 인근 노인복지시설인 도로시데이 센터. PC 6대가 놓인 15평 규모의 '시니어넷 러닝센터'에서 전직 건축가 레니 라이터(67)가 같은 60대 노인들에게 컴퓨터사용법을 가르치고 있었다. 그는 "주정부가 운용하는 IT교육센터에서 자원봉사하고 있다"며 "참가 노인들이 대부분 주정부가 제공하는 교육내용에 만족한다"고 말했다.

#2. 2000년부터 국내 55세 이상을 대상으로 컴퓨터 교육을 실시해온 '실버넷 운동본부'. 초창기 1년에 네번 실시하던 교육을 올해는 2회로 줄였다. 한 차례 교육에 1억원 가까운 비용이 소요되지만 기업 후원이 자취를 감추면서 정보통신부에서 지원하는 2억원이 예산의 전부가 됐기 때문이다.

?심각한 세대 간 정보격차=한국의 10~30대는 인터넷 세계를 움직이는 실질적 주류이자 오피니언 리더로 활약하고 있다. 이전 세대보다 압도적인 컴퓨터 활용률을 무기로 이들의 정치.사회.경제적 의견이 인터넷 세계를 지배하고 있으며 인터넷 기업들도 이들만 쳐다보고 있는 상황이다.

반면 40~50세 이상 장년층은 오프라인에 이어 온라인에서도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소외층으로 전락하고 있다. 국민대 행정학과 홍성걸 교수는 "20, 30대와 고학력자의 과도한 대표성이 이른바 '인터넷 여론'의 문제"라며 "최근 인터넷을 통한 여론 수렴과 인사 추천 등을 실제 정책에 반영하는 상황에서 인터넷 여론이 정보 접근성이 높은 집단의 이해를 지나치게 고려하는 것은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IT산업까지 왜곡돼=현대백화점은 2000년 고품격 온라인 쇼핑몰인 'Hmall'을 열면서 중장년층의 참여가 많을 것으로 기대했다. 백화점을 통해 다져온 다양한 상품 기획력과 고급 이미지를 온라인에서 활용한다면 중장년층이 많이 접속할 것으로 봤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과는 기대치 이하였다. Hmall의 이용자는 20대가 44.4%로 압도적이고 다음으로 30대가 34.5%를 차지하고 있다. 이에 반해 40대는 14.7%, 50대는 불과 4.7%다. 현대백화점 관계자는 "막강한 구매력을 갖춰 백화점에서는 고급 고객으로 분류되는 40~50대가 인터넷 쇼핑몰에서는 거의 실종되다시피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인터넷에서 장년.노년층이 소외되고 있다. SK텔레콤 등 이동통신 3사가 제공하는 수천개의 무선인터넷 서비스도 노인 대상 콘텐츠는 손을 꼽고 찾아야 할 정도다. 업체들이 인터넷 이용률이 높은 10, 20대 대상 콘텐츠만을 개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인터넷기업협회 신재정 사무국장은 "이같이 특수 연령층의 구매력에만 의존하는 현상이 지속될 경우 장기적으로 인터넷 기업의 지속적 성장을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민간.기업이 나서야 한다=미 최대의 노인 포털 사이트이자 교육프로그램 운영기관인 시니어넷은 현재 미국은 물론 호주.일본 등에 노인층을 위한 2백40여개 컴퓨터 교육센터를 두고 연간 60만~70만명의 장년.노년층을 교육시킨다. 분기별로 각종 자료를 정기적으로 제공하고 컴퓨터 관련 제품을 할인된 가격으로 팔기도 한다. 현재 교육센터 회원들에게서 연간 40달러 정도의 회비를 받고 있으나 운영비의 대부분은 기업들의 후원으로 충당하고 운영은 자원봉사자들이 담당한다.

시니어넷 마시 슈워르츠 교육국장은 "IBM 등 IT기업 퇴직자 등도 상당수 자원봉사자로 참여한다"며 "민간 후원으로도 운영에 문제가 없어 창립 이후 정부 지원도 일절 받지 않았다"고 말했다.

기업들도 정보격차 해소를 사회봉사뿐 아니라 신시장 개척의 기회로 보고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인터넷 경매업체인 이베이는 3년째 시니어넷에 1백만달러를 기부하고 있으며 노바티스 등 제약사들도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이베이는 2년여 전부터 미 전역의 중소도시를 돌며 2주에 한번씩 이틀간 컴퓨터.인터넷 사용법을 쉽게 가르치는 'e-베이유니버시티'도 운영 중이다. 마이크로소프트(MS)도 학교와 도서관에 후원금.장비 등을 지원한다. hp는 실리콘 밸리의 빈민촌인 이스토팰러앨토 지역의 정보화를 지원하는 '디지터마을사업'에 지난 3년간 5백만달러를 지원했다.

샌프란시스코.런던.스톡홀름=염태정.조민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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