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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청와대, “다 졌어야 겸손해질 것”이란 여당 우려 새겨들어야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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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선거 민심은 언제나 절묘하다. 이번 4·3 국회의원 보궐선거는 단 두 곳에서 치러졌을 뿐이지만 국민의 메시지는 간단치 않았다. 청와대와 민주당에는 오만에 대한 경고 메시지를 보냈다. 더 이상의 독선적 국정운영을 허락하지 않겠다는 경고였다. 야당의 착각도 불허했다. 2대0 완승을 노렸던 자유한국당엔 1대1이란 결과를 통해 여권의 실정에 기대 반사이익을 얻는 것만으론 제1당이 될 수 없다는 교훈을 보냈다.

‘탈원전 직격탄’ 창원서 투표율 50% 넘는 이상 열기 #선거 민심은 경제실정 심판 … 독선적 국정 쇄신해야

더 아프게 받아들여야 할 쪽은 물론 경고장을 받아든 여권이다. 4·3 보궐선거는 결과만큼 눈여겨봐야 할 게 투표율이다. 지금까지 재·보선 투표율은 보통 30%대였다. 총 15곳에서 국회의원을 뽑아 ‘미니총선’의 정국 분수령이라고 했던 2014년 7·30 재·보선 투표율이 32.9%였다.

그런데 창원 성산, 경남 통영·고성의 투표율은 공교롭게 똑같이 51.2%였다. 총선이나 전국 지방선거와 함께 재·보선을 치른 경우를 제외하곤 역대 최고였다.

보궐선거 투표율이 50%를 넘긴, 이상 투표 열기(熱氣)가 무엇을 의미하는가. 역대로 유권자들이 ‘심판’하러 나올 때 투표율은 급격히 올라갔다. 누구에 대한 심판인지는 자명하다.

불과 9개월 전 6·13 지방선거 때는 창원 성산에서 민주당 김경수 후보가 한국당 김태호 후보를 61.3%대 33.8%로, 민주당 허성무 후보가 한국당 조진래 후보를 54.8%대 23.9%로 압도했다. 그런 곳에서 여영국 민주-정의당 단일후보는 개표율 99.98% 상황까지 뒤지다 막판에 극적으로 역전, 504표 차(0.54%포인트 차)로 간신히 이겼다.

창원지역은 탈원전 정책의 직격탄을 맞은 곳이다. 두산중공업 같은 대기업에서 무급 및 유급 순환 휴직이 이어지고 있다. 탈원전에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으로 삶은 더욱 어려워진 데다 북한 비핵화 문제는 여전히 교착이라 안보는 불안하니 ‘진보정치 1번지’라 불리는 곳의 민심까지 9개월 만에 급변한 것 아니겠는가. 그나마 진보정권이 내세워 왔던 도덕성도 김의겸 전 청와대 대변인이나 몇몇 장관 후보자들의 부동산 투기 의혹으로 땅에 떨어진 상황이다. 어찌 보면 창원 성산에서 신승한 것 자체가 이변일지 모른다.

통영·고성도 마찬가지다. 한국당 강세 지역이라고는 해도 지난 지방선거 때 민주당이 통영시장과 고성군수를 배출한 곳이다. 이번에는 한국당 후보가 민주당 후보에게 24%포인트 차 대승을 거뒀다. 창원 성산에서 민심의 기류가 뒤바뀐 이유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민주당 안에선 “차라리 한국당에 다 줘야 당이 겸손해질 텐데…”라는 반응이 나온다고 한다. 민심이 왜 돌아섰는지 알고 있다면 독선적 국정 운영을 전면적으로 바꿔 나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경남지역 2곳에서 나타난 심판 기류가 내년 총선엔 전국으로 확산할 수도 있다.

한국당은 자신들이 잘해서 창원 성산에서 선전하고, 통영·고성에서 크게 이겼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반대를 위한 반대 체질을 털어내고 대안 정당으로 거듭나지 않으면 언제든 다시 한국당이 심판 대상이 될 수 있다. 내년 4월 총선 결과는 이번 4·3  보궐선거 민심을 어느 쪽이 제대로 읽고 자기 쇄신에 성공하는지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