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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김학의 수사단’이 풀어야 할 네 가지 숙제

중앙일보

입력

검찰이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의 각종 의혹을 수사할 대규모 수사관 인선 작업을 마치고 1일 본격 수사에 착수했다. 여환섭(청주지검장)단장이 1일 서울동부지검 청사에 들어서고 있다. 오종택 기자

검찰이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의 각종 의혹을 수사할 대규모 수사관 인선 작업을 마치고 1일 본격 수사에 착수했다. 여환섭(청주지검장)단장이 1일 서울동부지검 청사에 들어서고 있다. 오종택 기자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의 '성접대·성폭력' 의혹을 수사할 검찰 수사단이 1일 공식 출범했다. 출근길에 기자들과 만난 여환섭(51‧사법연수원 24기·검사장) 수사단장은 "원칙대로 하겠다"며 수사에 임하는 각오를 밝혔다.

하지만 앞선 두 차례 검찰 수사에서 김 전 차관의 혐의에 대해 모두 무혐의 처분이 나온 데다, 특수강간 및 뇌물 혐의 역시 공소시효 문제가 걸려 있어 벌써 수사가 난항을 겪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검찰 수사에 대한 국민적 기대가 큰 상황에서 적어도 수사단이 직접 풀어야 할 과제 네 가지를 꼽아봤다.

김학의의 문란한 사생활…그리고 거짓말

‘별장 성폭력·성접대’ 의혹을 받는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원 안)이 22일 오후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태국으로 출국하려다 항공기 탑승 직전 긴급출국금지 조치가 내려져 출국을 제지당했다. 공항에 5시간가량 대기하던 김 전 차관이 23일 새벽 공항을 빠져나가고 있다. [JTBC 캡처]

‘별장 성폭력·성접대’ 의혹을 받는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원 안)이 22일 오후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태국으로 출국하려다 항공기 탑승 직전 긴급출국금지 조치가 내려져 출국을 제지당했다. 공항에 5시간가량 대기하던 김 전 차관이 23일 새벽 공항을 빠져나가고 있다. [JTBC 캡처]

2013년 '별장 성접대 동영상'의 등장, 그 속에 나온 남성이 '김학의 전 차관'과 닮았다는 의혹. 김 전 차관에 대한 '별장 성접대·성폭력' 의혹은 이렇게 시작됐다.

당시 검·경 수사팀에 따르면 동영상에 등장하는 남성이 김 전 차관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지난달 14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에 출석한 민갑룡 경찰청장도 "영상에서 김 전 차관의 얼굴을 육안으로 식별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김 전 차관은 사건이 불거진 이후 여태껏 '동영상 속 남성이 자신'이라고 인정한 적이 없다. 김 전 차관은 최근 법무부의 긴급출국금지 조치 등에 대해 6년 만에 첫 해명을 내놓긴 했지만, 역시 해당 의혹에 대해선 어떤 언급도 하지 않았다.

검사장 출신의 한 변호사는 "국민의 의혹이 큰 상황에서 검찰의 세 번째 수사가 시작됐다"며 "검찰이 국민의 신뢰를 얻기 위해선 모든 사실을 부인해 온 김 전 차관의 거짓말을 밝혀내는 게 1차 수사 목표가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학의를 김학의라고 부르지 못한 검찰…외압 있었나?"

태국으로 떠나려다 출국이 제지된 김학의 전 차관이 지난 23일 새벽 인천공항을 빠져나와 귀가하고 있다. [JTBC 캡처]

태국으로 떠나려다 출국이 제지된 김학의 전 차관이 지난 23일 새벽 인천공항을 빠져나와 귀가하고 있다. [JTBC 캡처]

"김학의 전 차관이 맞습니다. 구속해야 합니다."

2013년 7월, '김학의 사건'을 수사하던 경찰이 김 전 차관과 건설업자 윤중천씨 등에 대해 기소의견으로 송치하자 사건을 넘겨받은 검찰 수사팀이 보인 반응이다. 당시 수사팀의 한 검사는 '별장 동영상' 속 남성이 "김 전 차관이 맞다"며 "빨리 신병을 확보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하지만 검찰 1차 수사팀은 물론이고 2차 수사팀 역시 김 전 차관의 성폭력 등 혐의에 대해서 모두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당시 검찰 수사팀에 따르면 김 전 차관의 성폭력 관련 혐의에 대해선 동영상의 촬영 일자와 영상 속 여성의 신원이 특정되지 않았다. 피해를 주장한 일부 여성의 경우 수사 당시 김 전 차관에 대한 '무고' 가능성이 포착돼 진술의 신빙성에도 의심을 샀다.

하지만 김 전 차관에 대한 압수수색과 계좌 추적을 하지 않았던 점 등에 비춰 검찰이 '제 식구 감싸기'에 나선 것 아니냐는 논란이 일었다. 또 경찰 내사 과정에서 청와대가 외압을 행사했다는 당시 경찰 수사팀의 증언이 잇따르며 외압 논란까지 일고 있다. 이 부분 역시 새로 출범한 수사단이 우선적으로 밝혀야 할 부분으로 꼽힌다.

"김학의가 끝이 아니다"…'윤중천 리스트' 존재하나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이 대검 과거사 진상조사단 소환에 불응한 지난달 15일 오후 서울 송파구 문정동 서울동부지방검찰청에 취재진이 모여 있다. 김 전 차관은 지난 2013년 건설업자 윤중천씨로부터 강원 원주의 한 별장에서 성접대를 받았다는 의혹을 받아왔다. [뉴스1]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이 대검 과거사 진상조사단 소환에 불응한 지난달 15일 오후 서울 송파구 문정동 서울동부지방검찰청에 취재진이 모여 있다. 김 전 차관은 지난 2013년 건설업자 윤중천씨로부터 강원 원주의 한 별장에서 성접대를 받았다는 의혹을 받아왔다. [뉴스1]

'김학의 사건'을 1년 가까이 살펴온 대검찰청 산하 과거사 진상조사단은 최근 김 전 차관에 대해 성접대를 한 것으로 알려진 건설업자 윤중천씨로부터 유의미한 진술을 여럿 확보했다.

중앙일보 취재 결과를 종합하면 윤씨는 진상조사단과의 면담에서 김 전 차관을 자신에게 소개해 준 인물로 검찰 고위급 간부 출신인 A변호사를 지목한 것으로 확인됐다. 윤씨는 "확실하게 기억나진 않지만 부부동반 모임을 하던 A변호사를 통해 김 전 차관을 알게 된 것 같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진상조사단은 윤씨가 수도권 지역의 유명 병원장을 통해 김 전 차관에 대한 검사장 승진을 부탁했다는 진술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윤씨 지인 등에 따르면 해당 병원장은 당시 여권인 노무현 정부 유력 인사들과 친분이 두터웠다고 한다. 김 전 차관은 2007년 2월 검사장급인 법무연수원 기획부장으로 승진했다.

법조계에선 검찰 수사를 앞둔 윤씨가 입을 열 경우 자칫 '윤중천 리스트'로 비화할 가능성도 높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윤씨가 사업이 기울기 시작한 2008년부터 유명 인사들과의 교류가 줄어든 것으로 전해졌다. 연루 인사들에 대한 혐의가 확인되더라도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을지는 별개의 문제다.

'수사단'을 둘러싼 오해도 풀어야 할 숙제

자유한국당 이만희 원내대변인(오른쪽)과 강효상 원내부대표가 1일 오전 '김학의의 뇌물수수 등 사건의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 임명 등에 대한 법률안'을 국회 의원과에 제출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자유한국당 이만희 원내대변인(오른쪽)과 강효상 원내부대표가 1일 오전 '김학의의 뇌물수수 등 사건의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 임명 등에 대한 법률안'을 국회 의원과에 제출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수사단을 둘러싼 검찰 내·외부의 우려 섞인 목소리도 수사단이 직접 풀어야 할 숙제다.

자유한국당은 "여환섭 단장은 채동욱 전 검찰총장이 발탁한 인사"라며 "수사단에 공정한 수사를 기대할 수 없다"는 논평을 냈다. 자유한국당은 이날 '김학의 사건' 특검법안도 발의했다. 임은정 부장검사는 지난달 29일 자신의 SNS에 "검찰의 면죄부 수사 또는 꼬리 자르기 수사로 치닫는 불행한 결말이 예상되어 참혹하다"고 적었다.

성폭력 공인전문검사 출신인 이승혜 변호사는 "국민의 법 감정과 법적인 책임 문제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며 "검찰이 정말 쉽지 않은 수사를 맡게 됐다"고 평가했다. 수도권 지역에 근무하는 한 검찰 간부는 "이런 사건의 경우 대개 어떤 결과가 나와도 한쪽에선 욕을 먹기 마련"이라며 "무리하지 말고 사실을 있는 그대로 밝혀내는 걸 목표로 삼아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김기정·남궁민 기자 kim.ki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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