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혜걸객원의학전문기자의우리집주치의] 건강 가이드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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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가이드라인'이란 것이 있습니다. 전문가들이 모여 합의한 일종의 지침입니다.

예컨대 위암 검진의 경우 '40세 이상 성인은 2년에 한번 위 내시경이나 조영술을 받읍시다'가 공식 가이드라인입니다. 또 대장암 검진의 경우 50세 이상 성인은 5년에 한번 대장 내시경이나 조영술을 받도록 권유하고 있습니다. 가이드라인이 필요한 이유는 의사마다 들쭉날쭉한 처방이나 불필요한 검사를 줄여 의료의 사회경제적 낭비를 막자는 데 있습니다.

그러나 가이드라인이 곧 최선은 아닙니다. 가이드라인대로라면 30세 성인이 위암에 걸릴 경우 억울하기 짝이 없는 일입니다. 3년에 한 번씩 받았으면 조기발견할 수 있었던 대장암도 5년마다 받느라 놓치는 경우도 있을 수 있습니다. 가이드라인은 개인보다 집단의 이익을 위주로 제정되기 때문입니다. 이 경우 평균적인 사람이 아닌 극단적인 사람들이 피해자가 됩니다. 예컨대 암이 이례적으로 이른 연령에 발생하거나 증식속도가 빠른 사람은 가이드라인대로 지킬 경우 낭패를 겪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가이드라인은 다분히 사회경제적 여건을 반영합니다. 위암 유발요인인 헬리코박터가 대표적 사례입니다. 유럽 등 서구에선 부모에게 위암 환자가 있거나 위축성 위염처럼 위암을 일으킬 수 있는 질환이 있는 경우도 치료 대상에 포함합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궤양 등 내시경으로 위장질환이 확인되어야만 치료합니다. 무증상 감염자는 치료하지 않습니다. 전체 성인의 절반 가량이 감염자일 정도로 흔한 것이 이유입니다. 우리나라가 유럽식 가이드라인을 적용할 경우 수백만 명에 대해 추가로 막대한 치료비를 감당해야 하기 때문이죠. 물론 이 세균이 있다고 해서 모두 위암에 걸리는 것은 아닙니다. 균이 있어도 한평생 큰 탈 없이 지내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러나 감염자는 비감염자보다 두세 배 이상 높은 위암 발생률을 감수해야 합니다.

심지어 50만원에 달하는 두경부 MRI(자기공명 영상 촬영)를 찍는 분들이 있습니다. 머리에 생기는 암이나 뇌혈관질환을 조기발견하기 위해서입니다. 이 검사는 낭비적 요소가 강합니다. 수천 명 찍으면 고작 한두 명에게서 질병을 찾아낼 정도입니다. 검진 가이드라인에도 없는 검사입니다. 그러나 누구도 이들을 비난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건강에 관심이 많아서 술값을 아껴서라도 검사를 받겠다는데 누가 말릴 수 있겠습니까. 암 검진 역시 일찍, 자주 받아 나쁠 이유가 없습니다. 헬리코박터 치료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이드라인은 참고용일 뿐입니다. 선택은 각자의 처지를 감안해 내리는 본인의 몫입니다.

홍혜걸 객원 의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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