껄렁패 의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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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그때 서경원 의원이 기자들에게 한 말이 생각난다.
『나야 원래 껄렁패 아니오. 지난 2월 김대중 총재를 따라 유럽 순방길에 올랐을 때 그는 비행기 안에서 맨발로 다닌 것이 흉잡혔었다. 한쪽· 바지 가랑이를 걷어 올리고 신발도 신지 않은 그의 모습을 보고 『어디에 모 심고 오느냐』는 놀림에 그는 그런 말로 응답한 것이다.
「껄렁패」란 사전 풀이를 보면 말이나 행동이 미덥지 않고 제멋대로 헐렁하게 구는 사람을 말한다. 자신을 껄렁패로 보았으면 제대로 알기는 안 셈이다.
바로 그 「껄렁패」의원이 이번엔 진짜 껄렁패 같은 일을 했다.
아무도 모르게 북한에 잠행해 김일성을 만나고 누구와 회담을 하고 돌아온 일이 뒤늦게 밝혀졌다. 문제는 국회 의원 쯤 되는 공인이 다른 곳도 아닌 북한을 밀행하고 그 사실을 1년 가까이 감추어 두고 있었다는데 있다.
국회의원이 그만한 사리 분별도 없었다면 결국 정치인의 자질을 생각하게 된다. 우리 나라의 선거는 후보 개개인의 됨됨이 보다는 「바람」에 좌우된다. 서경원 의원도 그 덕에 당선된 사람이다.
미국만 해도 국회의원 후보가 되면 그 가족들까지 유권자들 앞에 총출연해 선을 보여야 한다.
그 자리에선 가혹한 구두 시험도 치른다. 동네 공회당이나 학교 강당 같은 곳에서 유권자들은 질문 공세를 편다. 그때 후보의 인품이나 실력이 드러난다. 그런 과정을 거치지 않거나, 그때 점수가 시원치 않은 사람이 정치를 계속하기는 어렵다.
미국의 지방 TV에선 후보들을 모아놓고 토론도 벌이는데 이 자리에서 질문자들은 그들의 분석력, 추리력, 표현력, 증거 제시 능력, 조직력 등을 본다. 물론 정직성이나 사생활도 문제가 된다.
일본에서도 국회의원 자격 요건은 몹시 엄격하다. 요즘 수상이 된 「우노」도 결국 사생활이 문제가 돼 지금 곤혹을 치르고 있다. 지난 80년대 초 일본에선 정치인도 변호사나 의사들처럼 자격시험을 보게 해야 한다는 논의가 제기된 일이 있었다. 『오죽하면…』하는 생각도 든다.
남의 나라 일이 아니고 바로 우리 나라도 무슨 수를 내야 할 것 같다. 정치인의 자질은 정치의 수준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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