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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 흐름"이라더니...국민연금 구조 알고 보니 한국만 거꾸로

중앙일보

입력

문재인 대통령이 23일 청와대 본관 집현실에서 열린 공정경제 추진전략회의에 참석해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이 23일 청와대 본관 집현실에서 열린 공정경제 추진전략회의에 참석해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를 적극 행사해 국민이 맡긴 주주의 소임을 충실하게 이행하겠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월 공정경제 추진전략 회의에서 이같이 말하며 "대기업 대주주의 탈법과 위법에 반드시 책임을 묻겠다"고 선언했다. 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었던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이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일가의 논란을 계기로 가속화했다.

문 대통령뿐만이 아니다. 정부가 스튜어드십 코드가 '글로벌 스탠더드'라며 앞장서 추진 중이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인 2017년 12월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 회의에서 "스튜어드십 코드는 해외 20여개 선진국에서 도입하고 있는 세계적 흐름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국민연금 기금운용 방안이 세계적 추세에 역행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국민연금의 비독립적인 지배구조가 유지되는 상황에서 스튜어드십 코드의 무리한 도입은 정부의 과도한 개입을 초래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경제연구원이 19일 자산 규모 기준 세계 5대 국가 연기금의 운용실태를 조사한 결과 기금운용 이사회가 정부 소속인 사례는 한국이 유일했다. 해외 연기금은 정부로부터 기금운용의 독립성과 전문성이 보장되는 지배구조를 갖추고 있었다.

일본 공적연금 GPIF는 에이지 히라노 메트라이프 재팬 부회장이 경영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다. 히라노 위원장은 도요타파이낸셜 출신 재무 전문가다. 캐나다연금투자위원회(CPPIB)도 헤더 먼로블럼 전 맥길대 총장이 이사회 위원장을 맡고 있다. 미국 캘퍼스(CalPERS)와 네덜란드 공적연금 ABP 역시 기업·학계 출신 전문가가 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보건복지부 장관이 임명과 함께 당연직으로 기금운용위원회 위원장이 되는 국민연금과 다른 구조다.

1일 오전 서울 중구 플라자 호텔에서 열린 2019년도 제2차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 [연합뉴스]

1일 오전 서울 중구 플라자 호텔에서 열린 2019년도 제2차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 [연합뉴스]

해외에서는 기금운용이사회도 정부인사를 배제하고 연기금 전문가를 중심으로 꾸린다.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는 기획재정부 차관·농림축산식품부 차관 등을 포함해 위원 20명 중 5명이 현직 장·차관이다. 정부의 입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기금 운용이나 의결권 행사도 해외에서는 외부 전문 기관에 맡긴다. 국민연금과 자산 규모가 비슷한 ABP는 기금운용공사 APG를 통해 기금을 운용한다. 해외 연기금들은 세계 최대 의결권 자문사 ISS(Institutional Shareholder Services) 등에 의결권 행사를 맡기는 등 독립성과 전문성을 확보하고 있다.

유정주 한경연 기업혁신팀장은 "국민연금은 정부가 운용하고 의결권까지 행사할 수 있는 구조로 돼 있어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 논의 이전에 연금의 독립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오원석 기자 oh.wons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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