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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헌법 개정 가능성…'핵보유국' 문구 삭제 여부가 관건

중앙일보

입력

북한이 헌법을 바꿀 가능성이 제기됨에 따라 헌법의 ‘핵보유국’표현 유지가 북ㆍ미 관계의 관심사로 떠오를 전망이다. 북한의 개헌 가능성을 공개적으로 밝힌 사람은 태영호 전 영국주재 북한 대사다. 그는 18일 자신의 블로그에 “북한이 내달 초 진행되는 제14기 최고인민회의 1차 회의를 계기로 김정은의 직위와 관련한 헌법 수정을 준비하고 있는 것을 추측된다”며 “김정은(국무위원장이)이 북한의 국가수반임을 명백하게 헌법에 반영하는 방향에서 개정하려 할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태영호 전 공사 "북한 헌법 개정 염두" #"주석제 부활, 김정은 국가수반 될 것" #"종전선언, 평화협정 서명 의식 가능성"

태영호 전 영국주재 북한 대사관 공사 [사진 연합뉴스]

태영호 전 영국주재 북한 대사관 공사 [사진 연합뉴스]

현재 북한 헌법에 따르면 “국무위원장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최고령도자”(100조)다. 하지만 대외적인 국가수반은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맡도록 헌법에 규정돼(117조) 있다. 이때문에 김 위원장이 북한 내부의 당ㆍ군ㆍ정을 모두 이끌고, 한국이나 미국과의 정상회담에도 참석하는 등 명실상부한 ‘최고존엄’이지만, 국가를 대표하고 외국 대사의 신임장이나 소환장 등 외교 활동에서의 명목상 국가수반은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다. 이런 헌법 조항을 바꿔 김 위원장을 국가수반으로 내세우는 개헌을 할 거라는 게 태 전 공사의 전망이다.

이같은 주장을 내놓는 데는 김 위원장이 지난 10일 진행된 최고인민회의 대의원(국회의원 격) 명단에서 빠져 있기 때문이다. 북한 최고지도자가 대의원에서 제외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이같은 조치는 헌법 개정을 통해 김 위원장의 위상 변화를 염두에 뒀기 때문이라는 게 태 전 공사의 분석이다. 태 전 공사는 “김정은을 헌법적으로 북한의 국가수반임을 명백하게 명기하는 것은 향후 다국적 합의로 체결될 종전선언이나 평화협정에 서명할 김정은의 헌법적 직위를 명백히 하기 위해서도 필요한 공정”이라며“이렇게 되면 결국 70년대 김일성의 주석제를 다시 도입하는 격이 된다”고 설명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10일 열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선거에 참가해 투표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10일 열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선거에 참가해 투표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그런데 북한이 헌법을 바꿀 경우 실제 관심사는 국가수반 여부가 아니라 ‘핵보유국’ 문구의 존치 여부라고 복수의 당국자들이 지적했다. 북한은 2012년 4월 김 위원장의 집권 후 첫 헌법 수정 작업을 하며 헌법 서문에 “핵보유국”을 명시했다. 이를 삭제할 경우 미국 측에 비핵화 의지를 보여주는 지표가 될 수 있다는 얘기다. 북한은 2012년 당시 핵보유국을 넣으면서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업적이라는 내용을 담았다. 익명을 요구한 정부 당국자는 “미국과 북한이 1.5 트랙으로 비핵화 문제를 협의하는 과정에서 미국 측은 북측 참석자들에게 ‘북한이 헌법에 핵보유국이라고 명시했는데 비핵화 의지가 있는 게 맞냐’고 반문하곤 했다”며 “북한이 헌법상 핵보유국 표현을 삭제한다면 미국 측에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알리는 게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북한이 헌법을 고칠 경우 미국 측의 기대에 맞춰 이같은 선(先) 조치에 나설지는 불투명하다. 진희관 인제대 통일학부 교수는 “비핵화와 상응조치에 대한 진전이 없고, 2차 북ㆍ미 정상회담이 결렬된 이후 양측이 팽팽히 맞붙은 상황에서 북한이 먼저 움직일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말했다. 북한은 미국으로부터 제재 완화 등의 보상을 얻어낸 이후에나 헌법의 ‘핵보유국’ 삭제 여부를 검토할 것이라는 게 대북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지적이다. 그럼에도 북한이 선제적으로 핵보유국 표현을 없앨 경우 2차 북ㆍ미 정상회담 이후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는 북ㆍ미 관계를 반전시켜 협상 재개의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기대도 나온다.

정용수 기자 nkys@joongang.co.kr

태영호 전 영국주재 북한 대사관 공사. [사진 연합뉴스]

태영호 전 영국주재 북한 대사관 공사. [사진 연합뉴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 10일 오전 제14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후보인 홍서헌 김책공업종합대학 총장에게 투표하기 위해 이 대학에 마련된 투표장에서 투표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 10일 오전 제14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후보인 홍서헌 김책공업종합대학 총장에게 투표하기 위해 이 대학에 마련된 투표장에서 투표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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