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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몸이 어때서? ‘나나랜드’ 소비 뜬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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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특정한 체형은 아름다움과 무관하고 모두 멋질 수 있다는 인식이 하나의 패션 트렌드로도 자리 잡고 있다. 다양한 모델이 등장한 영국판 보그 5월호. [사진 보그]

특정한 체형은 아름다움과 무관하고 모두 멋질 수 있다는 인식이 하나의 패션 트렌드로도 자리 잡고 있다. 다양한 모델이 등장한 영국판 보그 5월호. [사진 보그]

#서울 중구에서 사는 20대 김혜련씨는 지난해 친한 친구 생일을 맞아 ‘브라렛’을 선물했다. 브라렛은 와이어가 없고 패드를 최소화한 브래지어다. 김씨는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내가 이렇게 갑갑했던 브래지어를 입어왔구나 하는 생각에 이 편안함을 친구에게도 선물해주고 싶었다”고 했다.

체중·체형 상관없이 자기 몸 사랑 #볼륨업 브라, 키높이 깔창과 결별 #노와이어 속옷, 낮은 굽 단화 인기 #체격 큰 사람, 노인도 화보 모델로

#20대 직장인 조 모 씨는 평소 레깅스를 즐겨 입는다. 몇 년 전만 해도 몸매가 드러나는 옷에는 거부감이 있었다. 조씨는 “예전엔 날씬한 사람만 소화할 수 있는 옷이라고 생각했지만 최근 있는 그대로의 나의 모습을 사랑하자는 생각이 들면서 편안한 레깅스를 자주 찾게 됐다”고 말했다.

이 같은 ‘자기 몸 긍정주의’ ‘나나랜드’가 소비 시장 새 키워드로 뜨고 있다. 자기 몸 긍정주의는 몸무게나 체형과 관계없이 자신의 몸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것을 뜻한다. 나나랜드는 영화 라라랜드에서 따와 내가 중심인 세상에 살아야 한다는 신조어다.

자기 몸 긍정주의가 사회 전반에 확산하면서 패션계에서도 이를 반영한 아이템이 인기다. 특히 의류의 기본인 속옷에서 이 현상이 두드러진다. 최근 여성 속옷의 경우 몸매를 강조하고 화려한 디자인의 제품보다는 속옷의 기본 기능에 충실하면서 사용자의 체형에 맞게 편안한 착용감을 주는 속옷이 인기다.

자기 몸 긍정주의가 반영된 패션 아이템

자기 몸 긍정주의가 반영된 패션 아이템

쇼핑사이트 G9에 따르면 최근 한 달간 ‘브라탑’ 제품류 판매량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86%나 늘었다. 브라탑 제품군엔 브라렛이 포함된다. 또 ‘노와이어 브라’ 제품 판매량도 20% 늘었다. 이에 반해 가슴을 보정해주는 ‘볼륨업 브라’는 같은 기간 판매량이 32% 줄었다. 착용감이 좋은 브라렛 제품 인지도가 상승하면서 다양한 제품이 속속 출시되고 있다.

신발도 자기 몸 긍정주의 영향을 받는 제품군으로 분류된다. 키높이 깔창과 높은 굽 신발의 매출은 줄어드는 반면 굽이 낮은 단화 수요가 늘고 있다.

G9 사이트에선 최근 한 달간 대표적인 단화 제품인 ‘로퍼’ 판매량은 여성의 경우 141%, 남성은 100% 각각 증가했다. 낮은 굽으로 편안함을 강조한 ‘컴포트화’ 제품도 여성은 350%, 남성은 50% 판매량이 늘었다. 반면 남성 정장 구두의 판매량은 46% 줄었으며, 굽이 높은 여성용 ‘펌프스’ 제품도 53% 감소했다.

내 몸에 대한 긍정은 여성에 국한된 트렌드는 아니다. 남자는 ‘180㎝ 이상이어야 된다’ ‘노인은 아름답지 않다’는 각종 미의 규격에서 스스로를 해방시키려는 시도가 늘고 있다.

G9 사이트에서 최근 한 달간 한때 유행한 키높이 깔창의 판매량은 59% 줄었다. 키가 작지만 멋질 수 있다고 스스로 여기는 남자를 위한 패션 사이트 ‘키 작은 남자’ ‘바이슬림’ 등이 성업 중이다. 키작은 남자의 지난해 매출은 100억원을 넘어서 전년보다 10% 올랐다.

취준생 임모(28·서울 송파구)씨는 “고등학생 이후 계속 깔창을 껴오다가 문득 ‘그렇게 커진 내 모습을 좋아하는 사람이 나에게 무슨 의미가 있나’란 생각이 들었다”며 “내 모습 자체를 사랑해주는 사람에게 더 잘해야겠다는 마음을 먹고 깔창과 이별했다”고 말했다

키 크고 젊은 모델 대신 평범한 일반인 모델이 이제 TV광고에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플러스 사이즈 모델 , 노인 모델도 패션 화보를 채우고 있다. 아름다움에 지친 대중이 ‘어글리 시크’에 열광하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서울대 소비 트렌드 분석센터 최지혜 연구위원은 “2년 전부터 자존감과 관련한 서적이 베스트셀러에 오르는 등 사람들이 자신을 돌아보는 것에 관심이 커졌다”며 “‘나’에 대한 고민이 많아지면서 자연스럽게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같은 흐름은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의 기준이 ‘나’로부터 나온다는 점에서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과도 연결되는 소비 트렌드”라고 덧붙였다.

최연수 기자 choi.yeonsu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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