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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분석] 징용 배상 얼어붙는 한·일 경제협력…사드 보복 닮아가나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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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신년회견하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 신년회견하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   (이세 [일본 미에현] 교도=연합뉴스) 아베 일본 총리가 4일 미에현 이세시 이세신궁을 참배한 뒤 현지에서 신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19.1.4    bkkim@yna.co.kr/2019-01-04 15:51:43/ <저작권자 ⓒ 1980-2019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신년회견하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 신년회견하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 (이세 [일본 미에현] 교도=연합뉴스) 아베 일본 총리가 4일 미에현 이세시 이세신궁을 참배한 뒤 현지에서 신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19.1.4 bkkim@yna.co.kr/2019-01-04 15:51:43/ <저작권자 ⓒ 1980-2019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 3・1운동 100주년을 맞은 지난 1일. 한국과 일본에 각각 본부를 둔 한일경제협회 대표가 일본 도쿄에서 만났다. 나흘 뒤 한국 내 한일경제협회는 올해 5월로 잡혀있던 한-일 경제인 회의 개최 연기를 홈페이지를 통해 공지했다. 한국 내 한일경제협회는 행사장을 마련할 호텔까지 미리 잡아둔 터였다. 협회는 “협의를 통해 연기했다”고 했지만 일본이 회의 연기를 통보한 것이란 해석이 많다.

외교 이슈가 경제 갈등으로 확산 #한·일 경제인회의 연기에 이어 #반도체 부품 수출 지연 꺼낼 우려 #한국 재계 “경제 발목 잡힐 가능성”

# 지난해 11월. 대한상의는 부산에서 개최하려던 제12회 한-일 상공회의소 회장단 회의를 연기해야 했다. 회의 개최를 며칠 앞두고 일본상의가 ‘강제징용 판결’을 언급하겠다는 입장을 대한상의에 전달한 것이다. 대한상의는 “경제계 행사에 대법원 판결 언급은 적절치 않다”고 만류했지만, 회의는 취소됐고 아직 대체 일정을 잡지 못하고 있다.

한국과 일본 정부 간 외교 난맥에서 촉발된 파장이 경제 친선 행사로 확산하는 모양새다. 이를 두고 재계에선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배치 갈등으로 시작된 한-중 경제 갈등 전철을 밟을 수도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이런 목소리가 들리는 배경으론 한-일 경제 갈등이 중국의 사드 보복 사태와 비슷한 패턴으로 전개되고 있어서다. 우선 대체 일정을 잡지 못한 채 일정을 무기한 연기한 게 두 갈등에서 공통으로 읽힌다. 중국 정부는 중-한 국제여객선 취항을 무기 연기한 것을 시작으로 한국 여행을 금지했다. 이는 롯데 등 유통 업체 철수로 이어졌다. 출발과 도착점이 각각 정치・외교 이슈와 경제 보복이라는 점에서도 닮았다.

그렇다면 정치권에서 촉발된 이슈에 일본 경제단체가 대응하는 이유는 뭘까. 김영근 고려대 글로벌일본연구원 교수는 “정치와 경제 이슈는 서로 분리해서 대응하는 게 맞지만 경제 정책을 맡은 경제산업성까지 나선 게 문제의 핵심”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판결 이후 그동안 차분했던 일본 관료들까지 감정적인 대응에 나서고 있는 모양새”라고 말했다.

중국의 부당한 사드보복을 중단케하고, 우리의 경쟁력으로 중국 시장을 개척하는 일이 우리나라 대 중국 정책의 근간이 되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중앙포토]

중국의 부당한 사드보복을 중단케하고, 우리의 경쟁력으로 중국 시장을 개척하는 일이 우리나라 대 중국 정책의 근간이 되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중앙포토]

이런 상황 인식 때문인지 재계에선 구체적인 보복 시나리오도 거론되고 있다. 관세와 소재·부품 수출 지연이 그것이다. 이에 앞서 일본 지지통신은 지난 9일 일본 정부 관계자 인용해 "일본 정부가 보복 관세, 일본 제품의 공급 정지 등 구체적인 보복 조처에 대한 목록 작성을 마쳤다"고 보도했다. 이에 대해 익명을 요구한 한 경제단체 연구소 관계자는 “일본이 한국을 상대로 쓸 수 있는 카드는 덤핑관세나 세이프가드 관세 등이 있지만 이를 사용할 명분이 없고 세계무역기구(WTO) 협정에도 위반되기 때문에 (실제로 사용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말했다.

보복 관세보다 소재·부품 수출 지연은 가능성이 더 높은 시나리오다. 한 민간 경제연구소 연구원은 “소재·부품 수입품 중 일본에서 들여오는 건 전체의 15~16%에 해당한다”며 “일본 정부가 수출 물량 통관 등을 지연시킬 경우 한국 경제에도 어느 정도 타격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2017년 기준으로 일본에서 수입한 반도체 제조용 장비는 53억 8000만 달러(6조1000억원)에 달한다.

다만 일본 정부가 이런 방식으로 경제 보복에 나선다고 하더라도 한국 산업계가 입는 내상은 제한적일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 판단이다. 가장 큰 이유는 중국보다 일본과의 교역 규모가 상대적으로 작기 때문이다. 관세청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은 일본을 상대로 305억 달러를 수출했지만 수입은 546억 달러를 기록했다. 이와 비교해 중국을 상대로 한 수출액과 수입액은 각각 1621억 달러, 1064억 달러다.

또 다른 이유는 매년 200억 달러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대일무역수지 적자다. 대일 무역적자 규모는 2013년 253억 달러를 기록했고 2017년에는 283억 달러로 늘었다. 그만큼 일본을 상대로 한 수출보다 수입이 많다는 얘기다. 일본 정부가 한국을 상대로 경제 보복에 나설 경우 일본 기업 역시 불가피하게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일본 정부가 경제 보복을 감행할 경우 피해 업종으로 거론되는 업종은 조선업이다. 일본 정부는 대법원의 강제징용 판결 직후인 지난해 11월 “한국 정부가 조선산업을 지원해 독자 생존이 어려운 대우조선해양을 지원했고 이로 인해 일본 조선업체가 피해를 봤다”며 WTO에 제소한 바가 있다. 이는 현대중공업의 대우조선해양 인수 작업에서 복병으로 떠오르고 있다. 일본과 유럽연합 등 각국 정부 기업결합 심사를 앞둔 상황이기 때문이다. 재계 일각에서 “일본이 중국처럼 한국 경제 몸통은 잡지 못해도 발목은 잡을 수 있다”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과거사 해법을 놓고 국가 간 마찰을 막을 수 없지만, 정치와 경제는 각각의 논리로 접근하고 풀어가야 한다”며 “한국 정부도 정치와 경제 분야에서 서로 다른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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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기헌・윤상언 기자 emck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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