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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만에 만나 30년 또 생이별…남매 찾아준 경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4면

큰오빠 김동일씨가 수서경찰서에 보낸 감사편지.

큰오빠 김동일씨가 수서경찰서에 보낸 감사편지.

“오래전 잃어버린 가족을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형편 어려워 스웨덴 입양 여동생 #서울 상봉 뒤 결혼 직전 연락 끊겨 #한국학 전공 딸이 대사관에 호소

지난달 20일 서울 수서경찰서에 한 통의 편지가 도착했다. 강원도 속초에서 온 편지에는 “50여년 전 스웨덴으로 입양을 간 막내 동생과 다시 연락이 닿았다”며 “보고 싶은 동생을 만날 수 있게 도와준 경찰에 감사하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편지를 받은 사람은 수서서 여성청소년과 강종구(58) 경감.

강 경감에게 편지를 쓴 사람은 50여년 전 막내 여동생 김순옥(55)씨를 타지로 보내야 했던 큰오빠 김동일(64)씨다. 동일씨가 12살이 되던 1967년, 동일씨의 어머니는 막내를 입양 보내기로 결정했다. 일찍 세상을 떠난 아버지 탓에, 어려운 경제 상황에서 4남매를 홀로 키우던 어머니의 가슴 찢어지는 결심이었다. 동일씨는 “어렸을 때라 동생 입양 보낼 당시 상황을 잘 알지는 못했다”며 “하지만 어머니께서 아주 가끔 막내 이야기를 하셨다”고 말했다.

1989년 스웨덴에 살던 순옥씨와 한국의 가족들이 서울에서 다시 만날 기회가 주어졌다. 입양기관의 주선으로 상봉한 4남매와 어머니는 눈물을 흘리며 그동안의 회한을 씻었다. 약혼자와 함께 한국에 날아온 순옥씨는 “곧 스웨덴에서 결혼식을 올릴 것”이라고 알렸고, 가족들은 “꼭 가겠다”고 답했다. 그러나 갑작스럽게 가세가 기울어 한국에 있는 가족들은 스웨덴에 가지 못했고, 어머니가 모아 뒀던 결혼 패물만 보내게 됐다.

동일씨는 “어머니께서는 지난 2015년 돌아가실 때까지 ‘순옥이 결혼식에도 못 가고 패물도 못 줘서 오해가 생긴 것 같다’며 연락이 끊긴 데에 대해 아쉬워하셨다”고 회상했다. 당시 순옥씨에게 전하려던 결혼 패물은 결국 스웨덴에 배달되지 못하고 두 달 만에 김씨 가족에게 되돌아갔다. 금붙이들이 세관을 통과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결혼식에 가지도 못했는데 패물까지 주지 못한 것을 뒤늦게 안 가족들은 순옥씨에게 연락을 시도했으나 닿지 않았다. 그 뒤 어려운 가계에 생업에 매달리다 보니 소중한 가족의 연락처를 잃어버리게 됐다고 한다.

연락이 끊어진 지 30년이 지난 올 2월, 스톡홀름대학교 한국학과에 재학 중인 순옥씨의 둘째 딸 미카엘라(19)가 “한국에 있는 엄마의 가족들을 찾고 있다”며 주스웨덴 한국대사관에 연락을 해왔다. 어머니의 나라에 관심이 많던 미카엘라는 스톡홀름대 한국학과에 격려차 방문한 주스웨덴 한국대사관 직원들을 통해 순옥씨의 사연을 전달했고, 대사관 직원들이 한국 연락을 도운 것이다. 대한사회복지회는 대사관을 통해 순옥씨가 기억하는 가족들의 인적사항을 받았고, 이를 경찰에 전달했다.

그러나 순옥씨는 오랜 세월이 흐른 탓에 어머니와 오빠들의 이름조차 명확하게 기억하고 있지 못했다. 경찰이 넘겨받은 것은 과거 순옥씨에게 도움을 줬다는 먼 친척의 이름과 연령대 뿐이다. 실종자 수사와 ‘헤어진 가족찾기’ 등을 전문으로 해온 강 경감은 우선 넘겨받은 이름을 통해 인적사항을 조회해 약 70여명의 명단을 추려냈다. 이후 주소지와 연령대를 비교해 가장 가능성이 큰 10여명을 선정했다. 이들에게 일일이 전화를 걸어 확인한 결과, 순옥씨를 기억하는 친척을 찾을 수 있었다. 강 경감은 “안타깝게도 순옥씨의 어머니는 이미 돌아가신 뒤였고, 순옥씨의 오빠의 연락처를 받을 수 있었다”며 “최종적으로 당사자에게 확인한 결과 순옥씨의 가족이란 사실이 확인됐다”고 설명했다.

미카엘라는 오는 4월 한국행 비행기를 탈 계획이다. 순옥씨도 6월에 한국으로 와 가족들을 다시 만나기로 약속했다. 동일씨의 아들 진호(44)씨는 “최근 사촌동생과 영상 통화를 했다”며 “없었던 사촌동생이 생기고, 처음 만나게 돼서 좋다”고 기뻐했다. 진호씨는 또 “결혼식을 가지 못해 오해가 생겼을 거라는 가족들의 걱정은 여름에 직접 만나 이야기하며 풀 것”이라고 전했다.

임성빈·김다영 기자 im.soungb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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