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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석탄발전 끄고, 대중교통 타면 미세먼지 피할 수 있나요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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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6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미세먼지 청원. 일주일여 만에 9만3000여명이 참여했다. [국민청원 게시판 캡처]

지난달 26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미세먼지 청원. 일주일여 만에 9만3000여명이 참여했다. [국민청원 게시판 캡처]

미세먼지는 어디서 왔나. 의견이 분분하지만 국민 절반은 중국을 ‘제1 원인’이라고 보고 있다. 환경부가 지난해 10월 전국 성인 1091명을 설문한 결과 52%가 미세먼지 원인으로 ‘중국’을 꼽았다. ‘공장 등 국내에서 발생하는 미세먼지’가 주요 원인이라고 답한 경우는 30%였다. 지난달 26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오른 ‘미세먼지 중국에 대한 항의 청원합니다’란 제목의 청원엔 7일까지 9만명 넘는 국민이 동참했다.

국민의 ‘믿음’이 아니라 실제로 미세먼지 원인으로 중국을 꼽는 연구 결과가 많다. 국립환경과학원이 지난달 11~15일 발생한 국내 초미세먼지의 발생 원인을 분석한 결과 ‘국외’ 영향이 75% 수준이었다. 2016년 미국 항공우주국(NASA)과 우리 정부가 진행한 공동 연구에서도 한반도 상공 미세먼지의 48%가 외부에서 날아온 것으로 분석됐다.

그런데 정부의 최근 미세먼지 대책은 ‘내부 단속’에만 집중한 듯하다. 산업통상자원부는 노후 석탄화력발전소의 운행을 중단하고 나머지 석탄 발전소도 최대 출력을 80%까지 제한했다. 2.5t 이상 차량 운행을 제한하고, 공공기관 운행 차량에 2부제를 적용하고, 국민에겐 “야외활동을 삼가라” “대중교통을 이용하라”고 주문한다. 미세먼지와 관련한 내부 단속 노력도 중요하지만 정작 중국이란 핵심에서 빗겨나간 대책이란 점에서 국민 공감을 얻지 못하고 있다.

문제는 정부에게 중국과 미세먼지 문제를 풀어나갈 ‘의지’나 ‘무기’가 있느냐다. 먼저 현 정부 출범 후 2년 가까이 될 동안 의지가 부족했다. 중국 정부가 지난해 12월 “서울의 미세먼지는 서울에서 배출된 것”이라고 공식 논평한 데 대해 한국 정부는 침묵하는 저자세로 일관하다 지적을 받았다. 최근 미세먼지가 기승을 부리자 지난 6일에서야 문재인 대통령이 “중국 정부와 협의해 긴급대책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그마저도 즉각 중국 정부가 “협조하겠다만, 미세먼지가 중국에서 왔다는 증거가 있느냐”는 식으로 나왔지만 여기 대한 정부 반응은 감감무소식이다. 일본에 대한 우리 외교를 생각해보면 ‘저자세’란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무엇보다 미세먼지를 다루려면 ‘데이터’란 무기가 있어야 하는데 중국과 제대로 된 합동 조사 한 번 했다는 소식을 듣지 못했다. “미세먼지 협력을 한ㆍ중 정상급 의제로 격상시켜 양자 간 공동 연구에 속도를 내겠다”던 문 대통령의 대선 후보 시절 공약이 공염불로 그치지 않을까 우려된다. 비협조적으로 나오는 중국 탓만 할 게 아니다. “근거가 있느냐”고 묻는데 떡하니 내놓을 만한 근거를 내기 위해서라도 국내 연구부터 과감히 투자해야 한다. 필요하다면 국제 사회 도움을 받아서라도 중국과 사실 확인에 나서야 한다.

1960~70년대 영국ㆍ서독의 경제 발전 과정에서 내린 산성비가 스웨덴ㆍ노르웨이 같은 북유럽 국의 산림을 황폐하게 해 문제가 됐다. 북유럽 국은 72년 유엔인간환경회의(UNCHE)에서 이 문제를 제기했다. 이후로도 책임을 부인하는 영국ㆍ서독을 끈질기게 설득했다. 결국 85년 산성비의 주요 원인 물질인 황산화물의 공동 감축 목표를 명시한 ‘헬싱키의정서’를 채택하는 성과를 거뒀다.

정부 대책엔 ‘명분’이 있어야 한다. 국민에게 이래라저래라 하려면 정부부터 할 도리를 다 해야 한다는 얘기다. 심지어 외교적으로 상대하기 버거운 중국이라 하더라도 국민의 건강ㆍ생명이 달린 일이라면 할 일은 해야 한다. 그게 나라다.

김기환 경제정책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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