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냐 두 야생마 마라톤史 바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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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자마라톤에서 마(魔)의 2시간 5분 벽이 깨졌다. 폴 터갓(케냐·34)이 28일(한국시간)독일 베를린에서 벌어진 베를린마라톤에서 2시간4분55초로 우승했다.종전 기록(2시간5분38초·지난해 4월 런던마라톤에서 미국의 할리드 하누치가 수립)을 43초나 단축한 세계 최고기록이다. 폴 터갓이 두 손을 번쩍 든 채 결승선을 통과하고 있다. [베를린 AP=연합]

마의 2시간5분 벽이 깨졌다.

이봉주와 동갑인 폴 터갓(케냐.34)이 28일(한국시간) 베를린 마라톤에서 2시간4분55초로 우승했다. 할리드 하누치(미국)가 지난해 4월 런던마라톤에서 세운 종전 최고기록(2시간5분38초)을 43초나 앞당긴 것이다. 페이스 메이커로 나섰다가 순위 경쟁에 뛰어든 새미 코리르(케냐)가 2시간4분56초로 2위를 차지했다. 한국의 형재형은 2시간14분21초로 처졌다.

터갓은 지금까지 '가장 불행한 마라토너'로 알려져왔다. 그가 1만m에서 세운 세계최고기록(26분27초)이 혜성같이 나타난 '트랙의 신화' 하일레 게브르셀라시에게 깨지고 올림픽에서도 두차례나 은메달에 머물렀다. 크로스컨트리 5연속 우승과 하프마라톤 공인(59분17초), 비공인(59분6초) 세계 최고기록을 세운 뒤 2001년 마라톤에 데뷔해서도 불운은 계속됐다.

나이 서른둘에 처음 도전한 풀코스 런던마라톤에서 2위에 올랐으나 그해 시카고 마라톤에서는 페이스 메이커에 1위를 빼앗기는 황당한 일을 당했다. 지난해 런던 마라톤에서도 세계기록에 불과 10초 뒤진 2시간5분48초의 호기록으로 역주했으나 하필 그 세계기록이 함께 뛴 하누치가 세우는 바람에 역시 2위에 머물렀다. 지난해 시카고 마라톤에서도 2시간6분18초라는 뛰어난 기록을 세우고도 1위를 놓쳤다. 터갓은 이번 우승으로 온갖 불운을 말끔히 씻었다.

30주년을 맞는 베를린 마라톤의 조직위는 런던.시카고 마라톤에 밀리고 있는 위상 회복을 위해 이번 대회에서 세계 최고기록이 수립될 수 있도록 코스를 평탄하게 재조정했다. 덕분에 터갓은 반환점을 1시간3분1초에 주파하고 후반에도 계획한 대로 1㎞를 정확히 2분55초에 뛰는 페이스를 끝까지 유지할 수 있었다. 날씨도 완벽했다. 15도에 바람이 없고 구름도 약간 끼었다. 1999년 하누치가 6분벽을 깬 이후 한동안 불가능할 것 같던 마라톤의 5분 벽은 불과 4년 만에 깨졌다.

삼성전자 오인환 감독은 "선수들의 스피드가 좋아지고 마라톤 대회 간의 경쟁으로 코스가 평탄해져 2시간3분대 기록도 조만간 나올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성호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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