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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부 블랙리스트 의혹 수사가 주목받는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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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이가영
이가영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이가영 사회팀 차장

이가영 사회팀 차장

요즘 서울동부지검이 ‘핫’하다. 근 2년을 서초동에 머물던 세간의 시선이 문정동(동부지검 소재지)으로 옮겨가고 있다. 이른바‘환경부 블랙리스트 의혹’사건 때문이다. 환경부 산하기관의 임원 교체 과정에 청와대가 개입했다는 의혹까지 불거지며 문정동 주변은 더욱 뜨거워졌다.

이 사건은 청와대 등과 10여건의 고소·고발전을 치르는 김태우 전 청와대 특별감찰반원의 폭로에서 비롯됐다. 그가 내놓은 문건에는 환경부 산하 8개 기관 임원 24명의 임기와 사표 제출 여부 등이 담겼다. 환경부는“장·차관까지 보고되지 않았다”고 주장했고, 청와대는 “문재인 정부 DNA에는 민간인 사찰이 존재하지 않는다”며 의혹을 부인했다.

그러나 동부지검이 올들어 환경부와 김은경 전 장관을 압수수색하고 박천규 차관과 김 전 장관을 잇따라 소환조사하는 등 속도를 낸 결과는 달랐다. 환경부 감사관실 컴퓨터 내 ‘장관 보고용 폴더’에서 ‘산하기관 임원 조치 사항’ 문건이 발견됐다. 김 전 장관은 출국금지됐고, “청와대가 원한 인사가 환경공단 감사 선발에서 떨어지자 공모 자체가 취소됐다”는 관계자 진술도 확보됐다.

이 사건이 주목받는 건 두 가지 측면에서다. 먼저 박근혜 정부 고위 공직자 여러 명을 감옥에 보낸 이유에 ‘문화계 블랙리스트’가 포함됐던 점이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20일 “블랙리스트란 ‘먹칠’을 삼가해 달라”며 “현 정부의 인사정책은 과거 정부와 명백히 다르다”고 불만을 나타냈다. 그러나 리스트를 만들고, 반응에 따라 고발 등의 조치를 취하기로 하고 사표를 종용한 의혹이 검찰 조사에서 드러났다. 어떤 대목이 ‘명백히 다른지’ 모르겠다. 직전 정부를 단죄한 주요 죄목을 새 정부가 출범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답습했다면 심각한 도덕적 해이다.

둘째는 이 사건이 문재인 정부 출범 2년도 되지 않은 때 불거진 점이다. 그간 검찰(주로 서울중앙지검)은 적폐 수사에 힘을 쏟았다. 전직 대통령과 전직 사법부 수장을 구속시켰다는 점에서 검찰 역사에 남을 것이다. 하지만 사실상 ‘끈떨어진’ 권력에 대한 수사였다. 증거를 모으거나 수사 협조를 받기가 그리 어렵지 않았을 거다. 그러나 이번 사건은 현 정권 들어 사실상 처음 진행되는 현 정부와 관련된 사건이다. 문 대통령의 지지율이 50%에 육박하는 상황에서 청와대 연루 여부를 밝히는 건 과거 권력에 대한 수사와는 차원이 다르다. 어려움이 예견되는 만큼 결과에 따라 임기 중반을 맞는 정권에 미칠 영향도 클 수 있다. 바로 서울동부지검의 ‘환경부 블랙리스트 의혹’ 사건 수사가 여론의 주목을 받는 이유다. “검찰은 살아 있는 권력에 약하다”는 세평을 극복할 수 있을런지가 역시 관건이 될 듯싶다.

이가영 사회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