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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새워 일하고도 불평 없는 그 직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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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박태희
박태희 기자 중앙일보 팀장
박태희 산업2팀 기자

박태희 산업2팀 기자

“(그 직원은) 지각하는 적이 없어요. 휴가 간다고 자리를 비우지도 않죠. 고객들에게 항상 예의 바르고 심지어 비싼 상품을 사도록 유도합니다”. 미국 패스트푸드 체인 하디스의 모기업 CKE의 앤드루 퍼즈더 전 최고경영자는 2017년 미국 경제지와 인터뷰에서 한 직원을 이렇게 극찬했다. 어떤 CEO라도 탐낼 만한 이 직원은 바로 매장 입구에 비치된 키오스크였다. 퍼즈더는 한걸음 더 나아가 “(사람) 직원을 고용하지 않는(Employee-free) 매장을 꿈꾼다”는 구상도 공개했다.

인간이 기계에 일자리를 내주는 곳은 하디스 같은 소규모 매장뿐이 아니다. 산업용 로봇은 제조라인에서 대규모 노동력을 공장 밖으로 내몬다. 국제로봇연맹(IFR)의 ‘세계 로보틱스 보고서’에 따르면 2017년 한 해에만 전 세계에서 산업용 로봇이 38만1000대 팔렸다. 휴대전화 부품을 만드는 중국의 창잉 정밀기술은 최근 650명이 할 일을 로봇 60대로 대체했다. 그러자 연간 8000대의 생산량이 2만1000대로 늘었고 불량률은 25%에서 5%로 크게 줄었다. 창잉의 경우처럼 로봇 한대가 약 열 명의 일을 대신한다고 가정하면 지난해에만 전 세계에서 381만 명의 일자리가 로봇으로 대체됐다는 결론이 나온다.

고용 유연성이 떨어져 골머리를 앓는 한국 CEO들은 어떤 선택을 하고 있을까. 노동자 1만 명당 로봇 대수에서 한국은 631대로 압도적 세계 1위다. 세계 평균의 8배를 웃돈다. 제조 강국 독일(309대), 일본(303대)도 로봇 고용에선 한국에 상대가 안 된다. 24시간 돌려도 불평 없고, 파업하겠다고 뛰쳐나가는 법 없고, 담배 피우려 자리 비우는 일조차 없는 로봇 직원을 CEO들은 사랑할 수밖에 없다.

일자리 정부를 자임한 이 정부에서 최근 주목할 만한 일이 두 가지 벌어졌다. 현대차가 연 1만명 가까이 뽑던 공채를 폐지했다. 정부는 강의실에 불을 끄거나 재래시장에서 전단지 떼는 일을 하는 대학생들에게 월 80여만원을 주는 정책을 추진 중이다. 공채 폐지와 허름한 알바라는 두 가지 일은 별개로 보이지만 사실 이란성 쌍둥이다. 로봇이 ‘열일’하고 만인이 백수가 되는 시대, 자동화에 밀려난 인간에게 번듯한 일이 주어지지 않는 시대가 왔다는 관점으로 이 문제를 봐야 한다.

약 100년 전 2차산업혁명은 대량생산 혁명이었다. 대량생산은 대량 고용으로 가능했다. 공채로 수천·수만 명을 뽑아 교육시킨 후 생산라인에 일제 투입하는 일은 그래서 그간 유효했다. 대규모로 일자리를 제공했던 제조업은 자동화 시대, 산업 전환의 시대를 맞아 더는 과거처럼 고용할 수 없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다. 창의적인 젊은이들에게 새 일자리의 보고가 될 4차산업혁명은 그래서 더 절실하다. 늘어가는 로봇, 규제에 발목 잡힌 신사업들을 보다 보면 마음이 다급해진다.

박태희 산업2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