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하! 김두우가 본 정치 세상] 민주 '숨은 브레인' 황태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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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민주당 분당사태 직후 정치권에선 내각제 개헌론이 수시로 등장하고 있다. 황태연(黃台淵.49.동국대)교수는 이런 상황을 즐기는 사람 중 하나다. 그는 내각제론자는 아니지만, 내각제의 사촌쯤 되는 '분권형 대통령제' 도입을 주장해왔고, 최근엔 '분권형 대통령제 연구'라는 책을 냈다. 이 용어는 黃교수의 전매특허처럼 돼 있다.

*** '分權 대통령'제안

내각제나 이원집정부제는 과거 정권들이 장기집권 방편으로 제기해온 탓에 부정적 이미지가 따라붙어 있다. 지난해 대선 국면에서 대통령에게 권력이 지나치게 집중된 '제왕적 대통령제'에 대해 비판 여론이 거세지자, 黃교수는 이원집정부제를 '분권(分權)'이란 말로 재포장해 내놓은 것이다.

지난해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직후 노무현 후보의 지지도가 급락하기 시작하자 '반 노무현'입장에 섰던 박상천 최고위원(현 대표).정균환 총무(현 총무).이인제 의원(현 자민련 총재권한대행)과 정몽준 후보, 민주당을 탈당해 鄭후보 쪽에 합류한 김민석 전 의원도 같은 주장을 했다. 약속이나 한듯이.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바로 이론 제공자가 동일인이었기 때문이다.

黃교수는 1995년 '지역연합론'을 DJ에 제공했고, 이는 97년 대선에서 DJP연합의 이론적 기반으로 작동했다. "영남패권주의를 극복하기 위해 타 지역 민중이 광범위한 연대블록을 형성해야 한다"는 영남 고립 전략이었다.

DJ정권에서 그는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 제2건국위 기획위원, 민주당 국가경영전략연구소 부소장, 한반도 정경연구소 부소장(이사장 정균환) 등을 지냈다.

'중도개혁'이란 개념도 그의 것이다. 2000년 총선을 앞둔 99년 DJ에게 "중도개혁을 기치로 개혁세력의 외연을 확대해야 한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냈다. 그후 민주당 내 DJ 친위세력으로 자리잡은 '중도개혁포럼'(의장 정균환)이 생겨났다.

97년 대선에서 DJP연합을 지지했던 두 학자의 2002년 엇갈린 행보는 흥미롭다. 지난해 10월 黃교수는 "평화개혁세력의 승리를 위해 후보를 단일화해야 한다"고 했고, 강준만 교수는 "단일화 논리는 승리 지상주의"라고 반대했다. 결국 黃교수의 주장대로 단일화는 됐지만, 그 수혜자는 黃교수의 기대와 달리 盧후보였다.

대선 후에도 黃교수는 민주당 구주류의 숨은 브레인 역할을 했으니 신당파로선 눈엣가시였다. 그가 지난 5월 민주당 몫 인권위 신임위원에 추천됐지만 이례적으로 국회 표결에서 부결된 것엔 이런 배경이 있다.

지역연합.중도개혁.평화개혁세력 대단결.후보단일화.분권형 대통령제 등은 黃교수가 민주당을 통해 정치권에 등장시킨 이론이다. 그는 서울대 재학 시절부터 운동권의 이론가로 자처했다. 그렇지만 그는 이론가로 머물기엔 너무 깊숙이 정치에 개입했다. 민주당에선 내년 총선 그의 전국구 공천설이 번지고 있다.

*** 전국구 공천설

이런 그의 행적은 지식인의 현실 참여 한계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그의 개헌론도 현실정치에서 타당성을 가질지 의문이다. 또 그가 구주류의 숨은 지략가 역할을 한 것이 내년 총선에서 어떤 판정을 내려줄지도 지켜봐야 할 대목이다.

민주당과 신당의 분열이 수도권에서의 참패로 나타날 가능성도 있고, 지역감정 격화로 이어질 수도 있다. 이 경우 그는 '평화개혁세력 대단결론'과의 논리적 상충을 어떻게 설명할지 궁금하다.

김두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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