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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漢字, 세상을 말하다] 六韜<육도>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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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3호 29면

한자 2/16

한자 2/16

전국시대 오(吳)와 월(越)은 경쟁자였다. 장강(長江) 하류를 다퉜다. 월왕 구천(句踐)이 오왕 합려(閤閭)를 먼저 쓰러뜨렸다. 합려의 아들 부차(夫差)는 땔나무 위에서 잠을 자며(臥薪·와신) 복수를 별렀다. 2년 뒤 부차가 이겼다. 패한 구천은 쓸개를 핥으며(嘗膽·상담) 훗날을 도모했다.

와신상담의 오·월은 명검의 땅이었다. 1965년 ‘월왕 구천이 직접 만들어 사용했다’고 새겨진 동검(銅劍)이 출토됐다. 합려가 칼로 돌을 가른 시검석(試劍石)이 쑤저우(蘇州) 호구(虎丘)에 전한다. 합려가 묘에 명검 3000자루를 묻었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칼의 노래는 김용(金鏞)의 『신조협려(神鳥俠侶)』가 으뜸이다. 상대가 없었다는 검마(劍魔) 독고구패(獨孤求敗)는 칼무덤(劍塚)을 남겼다. 첫째 이름 없는 날카로운 칼: 예리해 베지 못함이 없었다. 스무 살 전에 황하 이북의 군웅과 다퉜다. 둘째 자미연검(紫薇軟劍): 서른 전에 썼다. 불길하게 의로운 무사를 실수로 해쳤다. 후회하며 골짜기에 버렸다. 셋째 현철중검(玄鐵重劍): 무거운 칼의 날이 무디듯 뛰어난 기교는 솜씨가 없어 보이는 법. 마흔 전에 이 칼로 천하를 주름잡았다. 마흔을 넘기자 무엇도 휴대하지 않았다. 풀과 나무, 대나무와 돌을 모두 검으로 삼았다. 마지막 경계가 압권이다. “여기서 수양을 정진하면 점차 칼 없이도(無劍) 칼을 쥔 자(有劍)를 이기는 경지에 들어섰다.” 칼 없이 칼을 이기는 무검승유검(無劍勝有劍)의 단계다.

신조어 ‘샤프 파워(Sharp power)’는 중국의 수치다. 전투 없이 이기는 경지를 꿈꿔 왔던 중국이어서다. 무검과 유검의 경계에 칼주머니 ‘도(韜)’의 병법을 만들었다. 한자 ‘감출 도’는 칼의 옷(劍衣)이요, 감출 장(藏)이라고 옛 자전이 풀이했다. 칼집은 초(鞘)라는 한자가 따로 있다. 도는 칼집을 싸서 감추는 칼주머니다.

도의 철학은 『육도(六韜)』에 전한다. 주(周)나라 개국공신 강태공과 문·무왕(文·武王)의 대화를 엮었다. 문·무·용·호·표·견(文·武·龍·虎·豹·犬) 여섯 장으로 나눴다. “온전한 승리는 싸우지 않고 이기며, 큰 군대는 상처를 입지도 입히지도 않는다(全勝不鬪 大兵無創)”며 전투 없이 이기는 비결을 전한다. “성인이 행동에 나설 때는 반드시 어리석은 모습을 보인다(聖人將動 必有愚色)”고 했다. 우색(愚色)은 유비가 조조를 상대했던 의뭉스러운 도회지계(韜晦之計)요, 덩샤오핑(鄧小平)의 도광양회(韜光養晦)다.

곧 미·중 무역 전쟁 90일 시한이다. 중국에선 도광양회 회귀론과 칼주머니에 숨기에는 늦었다는 불가피론이 맞선다. 강태공은 “참호를 파고 벽을 높이고 식량을 비축함은 지구전 준비(深溝高壘糧多者所以持久也)”라고 했다. 지구전은 마오쩌둥의 병법이었다. 시진핑(習近平)은 새로운 지구전을 막 시작했다.

신경진 베이징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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