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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복돼야 할 감상주의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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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5월의 아슬아슬한 고비들을 간신히 넘기고 나니 대학가에 이른바 「평양바람」이 등장, 국민들을 아연케 하고 있다. 7월에 평양에서 열릴 「청년축전」을 앞두고 일부 대학에서는 교내축제를 마치 평양축전의 예행 연습처럼 진행시키고 있다. 『평양축전의 노래』를 교내축제의 공식 노래로 채택하는 학교가 있는가하면 교내 건물을 축제기간 중 평양건물들의 이름을 따 마치 캠퍼스가 평양시가인 것처럼 꾸미기도 했다.
북한의 대표적 노래극인 『꽃 파는 처녀』가 공연되기도 하고, 북한식 월츠를 배우며 일부에서는 북한 젊은이들의 옷과 말씨까지 모방하고 있다.
이와 같은 움직임들은 대학축제에 으레 가미되는 호기심과 객기의 표현일 수도 있다. 북한이 너무 오래, 너무 멀리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젊은이들 사이에 강하게 일고 있는 민족주의 성향이 그와 같은 동질성에의 갈망으로 표출되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
그러나 그와 같은 호기심이나 갈망은 국제사회에서의 북한의 특이성과 남북한 관계의 냉엄한 현실에비추어 볼 때 가볍게 다루어져서는 안 된다.
이미 여러 차례 지적했듯이 우리는 남북한 관계가 지금 자칫 잘못하면 돌이킬 수 없는 수렁에 빠져들 위험을 안고 있다는 점을 학생들은 신중히 받아들여야 될 것이다.
남북한 관계의 개선은 학생들만이 갈망하는 목표가 아닌 온 겨레의 소망이다. 그러나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엄격한 절차와 국민적 합의가 있어야 된다.
그 까닭은 남북한이 비록 단일민족으로서 오랜 역사 및 운명공동체로 존재해 왔다 하더라도 지난 40여년 동안 상극된 이념과 체제 속에서 존재해 왔기 때문이다. 불행히도 그와 같은 과거는 감상적 동질성에로의 접근 방식만으로는 정상화될 수 없는 요소를 안고 있다.
특히 북한 지도층이 지금까지 남한에 대해 일관되게 추진해온 정책은 통일을 공존과 화합의 바탕이 아닌 자신들의 체제에 남한을 흡수하는 형태로 이루려는 의도를 강하게 담고 있다. 그런 의도는 최근 중국 천안문 광장에서 거세게 일어난 민주화 운동이나 소련 및 동구권에서 일고 있는 개혁의 큰 흐름에 역행하는 시대착오적 발상임은 말할 것도 없다.
대학가에서 일고 있는 「평양바람」은 북한 당국자들로 하여금 남한의 분위기가 그들의 의도대로 성숙되고 있다는 중대한 誤判을 하게 만들 위험을 안고 있는 것이다. 이 점을 학생들은 냉철히 인식해야 된다.
왜냐하면 북한 당국자들의 그와 같은 오판은 남북한 관계의 순조로운 호전을 위해 필수적인 당국 대 당국의 정지작업을 어렵게 만들 가능성이 크고, 동시에 우리 정부가 시도하고 있는 대북 접근정책을 반전시킬 위험마저 안고 있기 때문이다.
40년 동안 굳어져 온 남북한의 체제는 어느 일방의 감상주의만으로 융화될 수 없는, 체제내부의 논리를 내포하고 있다. 「평양바람」에 들떠 있는 일부 학생들은 이 점을 가볍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또 정부는 정부대로 당초 허용하려 했던 학생들의 평양청년축전 참가를 국민의 합의 위에서 검토함으로써 이 문제가 또 다른 쟁점으로 확대되지 않도록 노력하기를 당부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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