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책읽기] '바보 이반의 산 이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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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 이반의 산 이야기/최성현 글, 이우만 그림, 도솔, 9천5백원

'논어'의 '학이'편에서 공자는 이렇게 말한다. "배우고 그것을 때때로 익히면 기쁘지 않겠는가." 또한 공자는 이렇게 말한다. "동지가 먼 곳에서 찾아온다면 즐겁지 않겠는가." 독서삼매라고 했다. 거기에 더불어 좋은 책을 읽는 일 또한 얼마나 즐거운 것이랴.

일을 보러 서울에 갔을 때 새로 나온 책이 소개되어 있는 지면을 보았다. 한달음에 서점으로 가 책을 샀다. 그렇게 빨리 책을 사다니, 서울을 떠나는 버스 안에서 책을 펼쳐 들었다.

거기 '바보 이반의 산 이야기'에는 단순히 도시를 떠난 사람의 모습이 아닌, 살아가는 삶이, 자연 속에 깃들인 이의 마음이 고스란히 배어 있었다. 그래 옳아. 그렇지 그렇지.

추분이 지났다. 해가 많이 짧아졌다. 가을 풀벌레 우는 소리가 산중 적막을 더한다. 얼마 전 나는 그간 10여년 넘게 살아온 전주 근교 모악산 자락의 외딴집을 떠나 지리산 자락 악양으로 이사했다.

도시는 이제 멀어졌으며 산은 더욱 깊은 곳으로 왔으나 사람들의 마을이 바로 코앞으로 가까워졌다. 이웃들이 가까워져 여러 가지 문명의 이기로 생활은 편해졌지만 그만큼 자유롭고 한가로운 시간을 잃어버리기도 했다.

옷을 벗고 마당을 돌아다니거나 바로 집 옆으로 흐르는 개울가로도 나갈 수 없는 일이 그것이다. 몇번, 이전의 버릇대로 거의 옷을 벗은 채 마당에 나가 풀을 뽑거나 소변을 보러 갔다가 깜짝 놀라 집 주인인 내가 오히려 방안으로 쫓겨 들어온 적이 있다. 마을 사람들이 산으로 올라가기 위해 아무런 기척도 없이 마당을 가로질러 가기 때문이다.

'바보 이반의 산 이야기'. 왜 나는 이 책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고 장황한 서두를 늘어놓는가. 책을 쓴 이의 삶이, 그가 바라보며 머물고자 하는 시선이 바로 나 또한 가고자 하는 길 위에, 살아온 길 위에 놓여 있었기 때문이다. 이 책에는 나무.풀.새.곤충.짐승.물고기 등 산과 그 산에 흐르는 개울물에 자라는 온갖 생명에 관한 그림과 내용이 들어 있어 언뜻 보면 생물도감이라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책을 몇장 넘기다 보면 이내 알아차릴 것이다. 이 책이 단순히 생물에 관한 지식만을 늘어놓고 전달하려는 사전이나 도감이 아니라는 사실을 말이다. 거기엔 오래 들여다보고 귀 기울여 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지혜로운 이야기가 담겨 있다.

예를 들어 한 뿌리의 냉이를 대하는 데 있어서도 그는 냉이를 뽑아서 뿌리를 알아보고 꽃은 어떤 색이며 꽃잎은 몇 장이고 잎은 어떤 모양을 하고 있다는 사전적이고 단순한 지식으로 다가가는 태도보다는 그 냉이를 가만히 관조함으로써 냉이만이 아닌 그 주변과 자신을 포함한 전체의 관계를 알 수 있고, 그때 비로소 온전히 한 뿌리의 냉이 또한 알게 된다고 말한다.

이 얼마나 놀라운 말씀이냐. 냉이 한 뿌리에도 우주가 담겨 있다니. 그래, 세상에 연기(緣起)되어지지 않는 생명이 어디 있으랴. 한 포기의 풀에 다가서기 위해 한 마리의 나비, 한 마리의 새에게 그의 곁을 주기 위해 내가 너와 다르지 않은 생명임을 끊임없이 말하며 스스로의 허리를 낮추고 무릎을 꿇는 일이란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경험을 해본 사람은 알 것이다. 지루하도록 인내심을 동반한 그 기다림이라니. 얼마나 어리석은 짓이냐. 그는 이제 어리석음을 넘어 크게 어리석은 자가 되어가는가 보다. 그에 비하면 우리는 얼마나 매사에 어리석지 않으려 애쓰는 것인가.

책의 곳곳에 인용된 경전과도 같은 인디언들의 자연관이나 동서양을 막론하고 삶에서 우러나온 지혜로운 이야기들도 책을 읽는 데 한층 감동의 탄식을 자아내게 한다. 아쉬운 점도 없지 않다. 산 속에 사는 수많은 생명을 소개하려니 어떤 부분들은 너무 보편 간단한 내용으로만 썼다는 느낌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그러나 그러한 것들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이 책은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생물도감이 아니기 때문이다. 학교 교육의 최종 교육기관까지 마친 한 지식인이 어느날 문득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오지의 산 속으로 들어가 한 그루의 나무를 닮아가며 뿌리를 내리고 그늘을 드리우기까지, 그의 생명에 대한 깊고 올바른 근원에 대한 응시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시인 박남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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